[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오래전 강남은 서울 외곽의 변두리였다
문명의 이기가 짐이 되기도 한다
의사들이 자주 걷기를 권하는 이유

요즘은 강남 아파트를 부의 상징처럼 여기지만 오래전 강남은 서울 외곽의 변두리에 불과했다. 동대문 근처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을 반포로 옮기자 그렇게 먼 곳으로 이전하면 시민들이 불편해 어떻게 이용하냐는 기사가 신문에 날 때다. 사실 강남은 그때만 해도 압구정동이나 반포지구에 일부 아파트가 들어섰고 벌판에 먼지만 풀풀 나는 개발지였다. 집값도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

나도 강북에 살다가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주공아파트를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구해 이사했다. 비록 연탄을 사용하는 방 두 개의 아파트였지만 전세를 살다가 내 집을 마련한 것이라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뻤다. 아마 처음으로 집을 마련한 사람이 모두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대중교통은 여의치 못해 직장 출근은 회사에서 마련한 통근 버스를 이용했다. 자동차를 사는 건 아주 돈이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당시에는 택시도 귀해 정부에서 합승을 묵인했다. 택시 기사는 가는 방향이 같으면 으레 합승을 권했다.

직장 출근은 회사에서 마련한 통근 버스를 이용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직장 출근은 회사에서 마련한 통근 버스를 이용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다 보니 운전사는 어린아이를 거느린 가족을 보면 핑계를 대고 승차를 거부하거나 태워주어도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가끔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가 계신 본가에 갈 때면 미안해 요금에 팁을 더 주었다. 물론 택시 기사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짐까지 들어주고 아이를 애써 돌봐주는 기사도 있었다.

어느 날 중고차라도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주말에 장안동에 있는 중고차 시장을 찾아갔다. 중고차 딜러의 설명을 듣다가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포니 중고차를 하나 골랐다. 난생처음 내 차를 산 것이다. 본가에 갈 때 예전처럼 택시 기사의 눈치를 보지 않으니 마음이 더없이 편했다. 돌아올 때면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며 먹고살기가 나아지자 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몇 년 후에는 거의 한 가정에 한 대씩 차를 보유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 집 마련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차를 샀는데 최근에는 집이 없어도 차는 한 대씩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출가하자 함께 차를 이용할 일이 없어졌다. 나 역시 직장에서 퇴직하여 시내에 나갈 일이 드물어졌다. 가끔 볼 일이 있어 시내에 나갈 때면 차를 갖고 갈까,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망설인다. 차를 갖고 가면 빠르긴 하지만 교통량이 많을 땐 시내에서 운전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주차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술이라도 한잔 걸칠 때면 차가 짐이 되기도 한다.

자동차는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하락하는데 자동차 주식은 반대로 가격이 상승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자동차는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하락하는데 자동차 주식은 반대로 가격이 상승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그런 부담이 없어 좋다. 책을 보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좌석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요즘에는 차를 이용하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 차가 있으면 편리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유지비가 많이 들어간다. 그러므로 차를 운영했을 때 얻는 효용과 비용을 잘 따져서 차를 소유해야겠다.

자동차를 사는 것보다 그 돈으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 자동차 회사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너드라이버가 아닌 자동차 회사의 오너가 될 수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투자회사 대표가 높은 연봉을 받고 있음에도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대중교통망이 좋아져 차가 그리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도 그 돈으로 주식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자동차는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하락하는데 자동차 주식은 반대로 가격이 상승한다.

자동차를 꼭 소유해야 한다면 중고차를 사는 것도 대안이다. 자동차는 구매하는 순간부터 가치가 하락하는 자산이다. 새 차를 사면 기분은 좋은데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출고 3년이 지나면 차량 감가가 40%를 웃돌기 때문에 새 차 가격의 절반으로 살 수 있는 자동차도 있다.

자동차를 꼭 소유해야 한다면 중고차를 사는 것도 대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자동차를 꼭 소유해야 한다면 중고차를 사는 것도 대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새 차를 사기보다 지금 사용하는 자동차를 더 오래 타는 선택도 있다. 자동차는 사고팔고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비용이 발생한다. 요즘 생산하는 자동차는 예전과 달리 고장이 나지 않아 잘만 관리하면 오래 탈 수 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지인이 있는데 그의 자동차 운행 연수는 14년이고 주행거리는 25만km나 된다. 관리를 잘해 그런지 아직도 쓸만하다.

부자도 이런 사람이 있다. 세계적인 가구 메이커 이케아 잉바르 캄프라드 회장이 바로 그런 부류이다. 하루는 기자가 인터뷰하며 볼보 자동차를 10년째 타고 있는데 차가 낡아 이제는 바꾸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회장은 아직 10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5년을 더 타고 15년이 되는 해에 새 차로 교환할 것이라 말했다.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가능하면 자동차 운전을 줄이는 것이 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약해져 관절 질환에 걸리기 쉽다. 그래서 의사들은 젊었을 때부터 자동차를 타기보다 자주 걷기를 권한다. 걷기를 습관화하면 노후 관절 질환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생활에 편리한 문명의 이기이지만 그것도 세대별로 잘 활용할 일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