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두 가지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에게
경험이 풍부한 아저씨가 도와드립니다
일본에서 ‘아저씨 대여 서비스’가 유행이다.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아저씨’를 시간제로 고용해 도움을 받는 서비스다. 매체의 보도로는 20~30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요리를 잘하는 아저씨에게 도움을 받는다든가, 2시간 동안 직장 경험이 많은 아저씨를 빌려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조언을 받는 것 등이다.
얼마 전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에 다니는 50대 직장인이 찾아온 적이 있다. 회사에서 명예퇴직제를 도입하는데 임금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정년 때까지 근무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지금 명예퇴직금을 추가로 받고 조기퇴직을 하는 게 좋은지 조언을 구했다. 나는 그의 재정 상황과 퇴직 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묻고 몇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며 두 가지 선택을 놓고 고민할 때가 종종 있다.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도 나오듯이 한길을 택하면 다시는 나머지 길을 갈 수 없기에 먼저 그 길을 갔던 사람의 조언을 듣고 싶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어디에서 찾고, 어떻게 조언을 구한다는 말인가. 사회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런 커뮤니티를 만들면 어떨까.
알아보니 이미 그런 곳이 있었다. 2000년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창안한 ‘휴먼 라이브러리’다. 책 대신 특정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휴먼북)을 빌려주는 신개념 서비스로 독자는 준비된 목록 중에서 읽고 싶은 사람을 골라 대출 약속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만나 자유로이 대화하며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다.
독자는 휴먼북과 마주 앉아 직접 그 사람의 경험을 얻기 때문에 종이책에서 느낄 수 없는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와 경험,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다. 궁금한 점을 바로 물어볼 수 있다는 것도 휴먼 라이브러리의 장점이다.
은퇴한 어른들이 지식을 나누기 위해 설립한 인생학교에도 휴먼북 역할을 할 사람이 꽤 있다. 오랫동안 해외자원개발에 앞장섰던 공기업 대표도 있고 대기업의 해외주재원으로 20년 이상 외국에서 근무한 경력자도 있다. 아마 관련 분야에서 창업을 꿈꾸는 사람에겐 그만한 사람도 없으리라. 심리학을 전공한 후 부모 교육 상담을 해주는 시니어도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나눌 경험만 있다면 누구든지 휴먼북이 될 수 있다. 교직에 종사했던 퇴직자가 학생들에게 진로 상담을 하는 것처럼, 자신의 사소한 경험도 타인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휴먼북을 희망하는 퇴직자들과 공동으로 휴먼 라이브러리를 결성하여 일본의 '아저씨 대여 서비스'처럼 소정의 대가를 받는 수익사업을 모색해도 좋겠다.
휴먼 라이브러리를 통해 독자만 이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휴먼북도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꿈조차 꿀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휴먼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지식·경험 등을 통해 그들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바꾸어 줄 수 있다면 휴먼 라이브러리의 탄생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런 커뮤니티가 지역 곳곳에 생겨 두 갈래의 길에서 고민하는 직장인이나 학생에게 바람직한 길을 제시하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지혜다. 서로 지식을 나누는 인생학교처럼 멘토와 멘티가 경험을 전하는 커뮤니티가 전국 곳곳에 생겨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문화가 전파되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