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의 건축 마실]
세월이 흐르면서 쓰임새도 변하는 건축
산부인과 의원의 놀라운 변신

장충단 공원에서 DDP까지 걸으며 역사와 건축 이야기를 하는 ‘장충동길 건축여행’에는 우리나라 현대건축을 이끌었던 많은 건축가가 등장한다. 국립극장을 설계한 이희태, 장충체육관의 김정수, 자유센터, 타워호텔, 경동교회를 설계한 김수근, 그리고 지금은 디자인회사 사옥으로 바뀐 서산부인과 의원을 설계한 김중업 등이다.
건축가마다 나름의 건축세계를 존중하지만, 건축가 김중업과 김수근을 우리나라 현대건축 1세대의 두 거장으로 꼽는 데 대체로 이견이 없다. 김중업은 1922년생이고 김수근은 1931년생이다. 김수근이 6·25전쟁 통에 일본으로 밀항해서 일본에서 건축 공부를 한 것처럼, 김중업도 전쟁 중에 파리로 가서 거장 르코르뷔지에 문하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두 건축가가 남긴 작품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대를 살다 간 두 건축가는 너무도 상반된 인생철학만큼이나 다른 건축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젊은 김수근은 정치적인 감각이 뛰어나고 타협적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특히 당시 실권자 김종필의 총애를 받으면서 자유센터, 타워호텔, 세운상가. 정동 MBC 사옥, 워커힐호텔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30대에 수의계약으로 설계했다.
반면 김중업은 대쪽 같은 성격에다가 타협이 어려운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1970년에 발생한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와 일련의 부당한 정부 정책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계속하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결국 1971년에 파리로 추방되고 만다. 8년 동안 타국에서 낭인 생활을 하던 김중업은 정치적인 상황이 바뀐 1979년에야 귀국하게 되는데, 그동안 김수근은 이미 국내 건축계를 좌지우지하는 입지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두 건축가의 작품을 분석하다가 성격만큼이나 디자인도 확연히 대비되는 것을 발견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대쪽 같고 직선적인 김중업의 작품은 주로 원형과 자유곡선의 디자인이고, 타협적이고 유연한 김수근의 작품은 거의 다 직선을 사용한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두 건축가 모두 자기 성격과 배치되는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더 확인한 것은 아닐까?
김수근은 1986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1981년에 내가 건축과를 졸업하면서 당시 거장 소리를 듣던 김수근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나 몇 가지 이유로 입사를 포기했다. 예정대로 입사했더라면 김수근의 마지막 작품 활동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을 것이다. 김수근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인 1988년 김중업도 66세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장충동길에는 김수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경동교회가 있다. 1980년 준공되었으니 김수근의 말년 작품이라 하겠다. 경동교회를 마주하면 과연 그의 명성에 걸맞은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교회 내부 공간에서 느끼는 공간적 감동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경동교회에서 멀지 않은 광희문 맞은편에는 김중업의 서산부인과 의원이 있다. 원장이 산부인과 업을 종료하면서 원형 그대로 보존할 기업에 매각하는 조건을 붙였던 모양이다. 결국 모 디자인 회사가 매입해서 최근까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장충동길 건축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어느 날 이곳에 도착했더니 공사용 펜스를 쳐 두었었다. 너무 낡은 부분이 많아 일부 보수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몇 개월 후에 가 봐도 공사용 펜스가 쳐져 있었다. 특별히 크게 고치는 것이 없는 것 같은데 펜스만 쳐두고 공사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 문득 공사가 마무리되었는지 궁금해서 가 보았더니 건물 외부 페인트 색이 닭살을 연상시키는 연노랑으로 칠해져 있고, 현관 위 캐노피는 멀리서도 눈에 띄도록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더 놀란 것은 캐노피에 붙은 간판이었는데 영어로 ‘케이.통닭’이라고 되어있었다.
건물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쓰임새가 달라진다. 그러나 김중업이 설계한 산부인과 의원이 통닭집으로 바뀌는 것이 처음엔 잘 수용이 안 되었다. 아쉬움에 몇 차례 더 공사 현장을 가 보다가 어느 날 문득 '아하!'하고 손뼉을 쳤다. 평면과 외관에서 자궁과 태아의 이미지, 남성과 여성의 심볼 이미지를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한 이 건물의 외관을 가만히 보다 보니 통닭을 닮아 있는 게 아닌가. 닭의 몸통도 보이고 날개와 닭 다리도 보였다.
서산부인과 의원이 준공된 해가 1967년이니 57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렇게 작고 아담한 건물이 그 자리에 원형 그대로 서 있는 것도 놀랍지만, 수십 년 후에 통닭집으로 바뀌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디자인 한 김중업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