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의 건축마실]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찾아가도
추억이 남아 있는 골목이 그립다

하회마을의 골목 /그림=손웅익
하회마을의 골목 /그림=손웅익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어릴 적 살던 고향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마을 모습은 많이 변했고 이제는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으나 우리가 살던 집터와 주변 집터가 전부 밭으로 변해서 어릴 적 살던 집터를 찾기 어려웠다.

밭에 서서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니 밭과 밭 사이 좁은 길들의 형상이 보였다. 밭에는 농작물이 심겨 있었지만 길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집은 다 사라지고 밭으로 변했지만 집과 집 사이 길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잡초가 무성한 좁고 휘어진 길을 보고 있노라니 순간적으로 수십 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 듯 기억의 저장고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담장 옆으로 돌아가던 길이 명확히 보였고, 마을로 내려가던 길도 보였다. 잡초가 무성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우리 집 주변 집터들이 하나씩 보였다. 그리고 어릴 적 친구들의 얼굴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진달래 따 먹으러 뒷산으로 올라가던 길, 곰이 나온다던 솔밭으로 이어지던 무서운 길, 달려 내려가다가 넘어져서 얼굴을 크게 다쳤던 경사진 길, 깜깜한 밤에 반딧불이 꽁무니를 떼서 눈썹에 붙이고 돌아다니던 골목, 떨어진 감 주우려고 꼭두새벽마다 찾아다니던 길···.

고향 집을 찾아갔던 그날 이후 나는 서울에 남아있는 오래된 골목을 가끔 돌아다닌다.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건축과 역사 이야기를 나누는 ‘건축 여행’도 주로 서울에 남아있는 오래된 길을 걷는다.

예를 들어 강북구 삼양동, 수유리 일대 동네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동네가 많아서 고불고불한 길이 많이 남아있다. 그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아주 오래된 이발관과 사진관도 있고 목욕탕도 있다. 작은 봉제공장과 단추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집과 각종 호주머니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집도 있다. 흰 돌을 직사각형으로 깎아 만든 작은 문패를 붙여둔 집도 있다. 계단 난간이나 베란다에 각종 화초를 기르는 집이 많다. 담장 앞에 잘 가꾼 꽃 화분을 가지런히 놓아둔 집을 보면 주인의 성품도 보인다.

시니어들과 골목을 여행하다 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골목에 얽힌 어릴 적 추억 이야기를 꺼낸다.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릴 적 살았던 동네부터 다녔던 초등학교 이야기도 나오면서 서로 금방 친해진다. 추억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추억을 회상할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래전 이탈리아 몇 개 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다. 여행 내내 일행들과의 일정이 시작되기 전 새벽에 숙소 주변 뒷골목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골목에 깔린 포장석이 참 조형적이었고 골목을 따라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고색창연한 집들은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좁고 고불고불한 골목마다 흰색 가운을 입고 식재료를 옮기며 분주하게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골목에는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찾아가도 과거의 시간으로 잠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 반해 큰길과 완전히 다른 세계였던 북경이나 시카고의 뒷골목에 들어갔던 기억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어느 도시를 여행할 때 골목을 다녀보면 그 도시의 진정한 민낯을 볼 수 있다.

이화마을의 골목 /그림=손웅익
이화마을의 골목 /그림=손웅익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는 골목이 다 사라지고 있다. 곡선은 직선으로 펴고, 좁은 것은 넓게 만들고, 낮은 것은 높게 세우는 재개발이 시간의 흔적과 추억을 다 지워버린다. 개발 논리를 어쩔 수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이웃과 차단된 생활이 가능한 아파트 구조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언제부턴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골목이 불편해지기도 했으니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의 의미를 재확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익선동, 이화마을, 서촌, 북촌 등 서울에 남아있는 골목을 누비고 있는 것은 아직 골목에 남아있을 추억의 박제를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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