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의 건축 마실]
청운시민아파트 가압 펌프장 자리에 지은 문학관
건축 해설 진행하면서 건축사의 사명을 생각하다

윤동주 문학관 /그림=손웅익
윤동주 문학관 /그림=손웅익

경복궁 서편 효자동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북악산 자락에 한양도성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이 있다. 창의문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인왕산 도성길이고, 동쪽으로는 한양도성 백안 구간이 이어진다. 창의문 밖은 부암동, 홍지동, 평창동인데 주로 산비탈에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다.

1968년 1월 21일 31명의 무장 공비들이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넜다. 나무꾼의 신고로 청와대 바로 뒷산에서 발각되어 29명이 사살된 소위 ‘1·21사태’다. 그들은 목적지인 청와대 인근까지 오는 동안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그 현장이 창의문 인근이다.

그때까지 창의문 밖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산지라서 무장 공비가 별 제지를 받지 않고 청와대 인근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 사실에 놀란 박정희 대통령이 주거지를 만들라고 지시한 결과 구기동, 평창동 일대 대규모 주거지가 형성되게 되었다.

창의문 건너편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아주 작고 아담한 건물이다. 지금 윤동주 문학관 인근 산비탈은 1·21사태 이전까지는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1·21사태 후 판자촌을 다 철거하고 11개 동에 11평형(36.3㎡) 577가구의 청운 시민아파트를 건설했다.

그 시절에는 수돗물 수압이 약했기 때문에 산꼭대기 아파트까지 수돗물을 공급하려면 중간에 가압 펌프장이 필요했다. 청운 시민아파트는 2005년에 철거되었고 그 청운아파트에 수돗물을 공급하던 가압 펌프장을 리모델링한 것이 윤동주 문학관이다.

지자체마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유명 인사를 선점해서 경쟁적으로 기념관, 박물관을 만들고 있는데 그 선점 이유도 다양하다. 종로구가 윤동주 시인을 선점한 이유는 시인이 연희전문 재학시절 서촌 누상동에 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하숙생 시절 ‘별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의 시를 썼으니 윤동주 문학관을 종로구에서 선점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청운아파트가 철거되고 난 후 콘크리트로 지은 작은 육면체인 이곳 가압 펌프장은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 이 볼품없는 가압 펌프장을 공공건축가인 이소진 건축사가 윤동주 문학관으로 리모델링 설계를 마치고 착공을 준비하고 있던 해 여름, 태풍으로 여기저기 산사태가 났던 모양이다. 여기 가압 펌프장 뒷산도 일부 무너져 내리면서 그동안 흙에 묻혀있던 가압 펌프장 뒤쪽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밖으로 드러났다.

윤동주 문학관 제2전시실 /그림=손웅익
윤동주 문학관 제2전시실 /그림=손웅익

공무원들과 현장을 확인하러 간 이소진 건축사는 가압 펌프장 뒤로 드러난 정체 모를 콘크리트 탱크 상부의 작은 점검구를 열고 벽에 붙어있는 사다리를 타고 6미터 깊이의 탱크로 내려갔다. 그것은 수십 년 동안 물이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했던 물탱크였다. 건축가는 어둡고 찬 콘크리트 방 안에서 윤동주 시인과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방에는 북간도의 차가운 바람과 후쿠오카 형무소 콘크리트 바닥의 차디찬 냉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으리라.

예산을 이유로 당초 설계대로 도로에 면한 가압 펌프실만 문학관으로 공사를 진행하자는 공무원들을 어렵사리 설득하고 펌프실과 두 개의 물탱크를 연계해서 재설계한 결과물이 지금의 윤동주 문학관이다. 이렇게 작고 아담한 건물의 설계비는 건축사가 투자하는 에너지와 시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건축사는 규모가 작은 건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게다가 리모델링 설계는 일이 더 많다. 건축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몇 해 전 이소진 건축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를 펌프실과 두 개의 물탱크에 녹여 낸 이야기와 설계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나누는 자리였다. 두 시간에 걸친 강의 내내 이렇게 작은 공간을 어쩌면 저렇게도 감동적인 공간으로 창의적 재해석이 가능할까 하면서 탄복했던 적이 있다. 이소진 건축사는 윤동주 문학관으로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비롯하여 주요 건축상을 여럿 수상했다.

나는 매년 몇 차례씩 윤동주 문학관 건축 해설을 진행하면서 그때 그 감동적인 강의 내용을 수강생들에게 충실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이제 나는 현업에서 조금 비켜 서 있지만 윤동주 문학관에서 건축사의 사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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