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의 건축 마실]
우리의 다정한 이웃 같은
무명 건축가들의 건축 작품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황해이발관 /그림=손웅익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황해이발관 /그림=손웅익

강북구 건축 여행 가이드를 요청받았을 때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특별한 건축물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유명 연예인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만 우리 주위에 같이 살아가는 이웃의 삶은 거의 알지 못하듯이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유서 깊은 건축물이나 유명 건축가의 작품은 여기저기 자료가 많아서 그 내력을 금방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집 장사로 통칭되던 무명 건축가들이 지은 집은 그 사연을 알기 어렵다.

30년 가까이 이웃으로 살면서 가족끼리 집에도 자주 왕래하던 동네 형님을 상담한 적이 있다. 그 정도 세월을 이웃으로 살았으니 숟가락 숫자도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시간 동안의 대화 중에 한 시간을 둘이 마주 보고 울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무명 건축가가 지은 집도 사연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굳이 유명 건축물을 찾아 나설 이유가 없어졌다.

우이신설선 삼양역에서 삼양동 산 쪽으로 골목을 조금 오르다 보면 노란 간판이 집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황해이발관이 나온다. 1970년에 문을 열었으니 54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발관이다. 그 세월 이야기를 들으러 올봄에 세 번이나 찾아갔었지만 계속 임시휴업이라는 종이쪽지가 문에 붙어있었다.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팔도 방앗간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이발관 주인 어르신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대를 이어 찾아오는 서울스튜디오 /그림=손웅익
대를 이어 찾아오는 서울스튜디오 /그림=손웅익

인사를 나눈 김에 방앗간 주인장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방앗간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고 하셨다. 언젠가 젊은 여성이 아기를 데리고 가다가 인사를 하길래 누구냐고 했더니 어릴 때 엄마 따라 방앗간에 자주 왔었는데 이제 결혼하고 다른 데 살고 있고, 그날 친정집에 오는 길이라고 했단다. 참기름 들기름을 짜는 기계를 보니 2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삼양역 바로 옆에 있는 서울스튜디오도 51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고 2대째 사진관을 운영하는 집이다. 밤색 타일에 직사각 창문의 건물 외관이 그 자체로 나이를 보여준다. 백일사진, 돌 사진 전문이고 여기서 증명사진을 찍으면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대를 이어서 찾아오는 단골이 많다고 한다.

화계역 근처엔 52년이나 된 목욕탕이 지금도 영업 중이다. 아주 낡은 목욕탕 건물 위로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굴뚝이 떡 버티고 서있다. 과거엔 지하수를 수돗물과 섞어서 사용하는 목욕탕이 많았다는데, 여기는 100% 수돗물만을 사용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현관문에는 수돗물만 사용한다는 안내문을 크게 붙여놓았다. 카운터를 지키고 계시는 주인장에게 몇 마디 물어보려는데 막 소리를 지르신다. 귀가 잘 안 들려서 그러니 그냥 가라고 할머니께서 손짓하신다.

옛 모습 그대로의 삼양탕 /그림=손웅익
옛 모습 그대로의 삼양탕 /그림=손웅익

삼양탕 바로 옆에 화계맨숀이 있다. 아파트가 처음 도입되던 시절 맨손으로 들어가도 되는 집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던 그 맨숀아파트다. 계단을 통해서 옥상으로 올라가 보니 사방으로 북한산, 수유리, 번동, 삼양동 일대가 보인다. 6층짜리 아파트인데 지은 지 50년이 되었다. 30년만 되면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는 서글픈 아파트 공화국에서 참 모범이 되는 아파트다. 외관이 잘 관리되고 있는 걸 보니 집마다 내부도 잘 관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추석 명절을 며칠 앞두고 봄에 걸었던 길을 다시 걷게 되었다. 멀리서 보니 황해이발관의 붉은색과 청색으로 된 원기둥 회오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인사를 드리니 반가워하신다. 소파에서 점심을 먹고 계시는데, 노란 양은 도시락이 너무나 간소하다. 봄에 신장 수술을 하셨단다. 이발 의자는 딱 한 개다. 세월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의자 팔걸이에 작은 재떨이가 붙어있다. 하기야 고속버스와 새마을 열차 좌석 팔걸이에도 재떨이가 붙어있던 시절이 있었다. 이발하는 동안 손님들은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니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건강을 기원해 드리고 이발관을 나서면서 “길 건너 팔도방앗간은 왜 문이 닫혀있습니까?” 했더니, 장사가 안돼서 얼마 전에 문을 닫았다고 하셨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추석 대목을 앞두고 문을 닫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올봄에 만났을 때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 삼양동 편을 본 고향 친구들이 안부 전화를 했더라고 자랑하셨는데······.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