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의 Good Buy]
분위기 있는 가을 남자 코디
기본에 충실한 '트렌치코트'
진중하면서 세련된 감성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무슨 이유 때문에 가을이 남자의 계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을 남자의 이미지는 의외로 선명하다. 바람에 휘날리는 롱코트, 그 뒤로 흩날리는 낙엽. 여기에 우수에 찬 눈빛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 분위기 있는 가을 남자의 완성이다.
그래서일까? 남자라면 가을을 기대하게 된다. “나도 올가을에는 가을 남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을 남자를 꿈꾼다면, 그 시작은 좋은 코트다. Good Buy 여섯 번째, 5년째 나의 가을을 책임지고 있는 코트 한 벌을 소개한다.

산드로(Sandro)라는 프랑스 브랜드의 남색 트렌치코트다. 5년 전 판교 현대백화점에서 50만~60만원 정도에 샀던 걸로 기억한다. 5년이 지났지만 ‘기본템’으로써 여전히 잘 입고 있다. 코트 하면 떠올리는- 마치 복숭아털처럼 야들야들한 울 소재가 아닌, 면 소재 기반의 탄탄한 트윌 조직으로 짜인 옷이라 정장 위에 걸쳐 입어도 잘 어울리고 편한 티셔츠에 볼캡 모자를 쓰고 걸쳐 입어도 잘 어울린다. 이 코트 말고 다른 대안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전천후 완벽한 가을 코트다.
옷 좀 사본 분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원래 좋은 ‘기본템’을 구하는 일이 어렵고 기본에 충실한 옷일수록 오래 간다. 오히려 유행 따라 기분 따라 샀던 옷들은 몇 번 안 입고 ‘옷장에 그림’마냥 자리만 차지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은 돋보이는 매력보다는 거슬리는 요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트렌치코트도 그런 마음에서 기꺼이 값을 지불했다. 옷에 있어서 ‘거슬리지 않는 요소’는 무엇일까? 별거 있겠는가. 색상, 디자인, 소재. 이 세 가지 아니겠는가. 쇼호스트로서 다양한 패션 브랜드를 만나보니 알게 됐다. 결국 오래 사랑받고 길게 살아남는 브랜드는 ‘기본에 충실한 옷’을 만드는 브랜드라는 걸.

남색(藍色). 요즘은 ‘네이비(Navy)’라는 이름으로, 어렸을 때는 어른들로부터 ‘곤색’이라는 이름으로 익혔던 색상이다. 남색이 주는 느낌은 묘하다. 어둡고 깊은 색상이지만 푸른빛을 머금고 있어서 마냥 칙칙하지만은 않다. 세련된 색이다.
마치 책 한 권의 고요한 취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사람 만나 왁자지껄 어울리는 술자리에도 거부감이 없는 사교적인 성격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는, 소위 MBTI 성격유형검사에서 진단하는 내향적인 I 성향과 외향적인 E 성향이 반반 섞인(내가 그런 사람이다) 사람의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유독, 이 남색이 거슬리지 않고 마음에 든다.
트렌치코트는 백종원의 만능 간장처럼 아무 옷들과 버무려도 잘 어우러진다. 격식을 차린 정장에도 잘 어울리고 티셔츠, 니트, 후드티, 청바지, 면바지, 모자 등 일상적인 아이템들과도 잘 어울린다. 사실 생각해 보면, 코트 한 벌 골라봐! 했을 때 머릿속에 얼핏 떠오르는 코트 디자인만 해도 수십 가지다. 여성 의류에 비해 유독 옷의 종류도 적고 디테일도 단조로운 남성 의류지만 코트만큼은 예외인 듯하다.

흔히 ‘코트’ 하면 롱코트를 떠올린다. 기장이 허벅지 반쪽까지 떨어지는지, 무릎 아래까지 떨어지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런가 하면 상체만 가려주는 하프 코트(어렸을 때는 반코트라고 많이 불렀던 기억이 있다)부터 목을 감싸는 깃이 특징인 하이넥 코트, 깔끔한 카라에 일자 핏으로 툭 떨어지는 맥코트, 마치 봉황의 날개처럼 멋들어진 라펠과 허리끈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한 트렌치코트, 오버핏의 캐쥬얼한 코트까지. 이 외에도 코트의 세계는 더욱 무궁무진하다.
이런 수많은 코트 중에서 트렌치코트를 선택한 이유는 가을에 어울리는 가벼운 소재감 덕분이다. 트렌치코트의 유래를 찾아보면 1차 세계대전 때 군인들이 입던 외투에서 발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트렌치(Trench)가 우리말로 ‘참호’다. 그러니까 전쟁 중에 입어야 하는 옷이었기에, 물에 젖으면 무거워지는 울 같은 소재가 아닌 방수 기능이나 가벼운 소재의 옷이었어야 한다는 게 트렌치코트의 시작이었다. 그래서인지 울 소재의 도톰한 코트들이 겨울 멋쟁이 느낌이라면, 트렌치코트는 고독한 가을 남자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의 5년 지기 이 옷은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중하면서 세련된 색상, 다양한 옷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활용도, 미학적이면서 실용적인 감성까지. 내가 왜 이 옷에 애착을 가졌던 이유가 단순히 기본에 충실한 옷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생각보다 더 잘 산 가을 코트였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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