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의 Good Buy]
5년 차 쇼호스트의 쇼핑 에세이
'잘 사는 것'의 의미를 찾는 여정
180만원 맞춤 슈트, 나의 이력서

Good Buy. 직역하면 '잘 사다'라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사는 것'의 의미를 담고 싶어서 칼럼의 제목을 Good Buy라고 지었다. 사는 것(Buy)을 단순히 금전 거래로만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는 것(Buy)은 사는 것(Life)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출근길 아이스 아메리카노, 월급날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옷, 24개월 할부 혼수 가전, 10년 장롱면허 탈출 생애 첫 중고차, 3년 만의 해외여행 비행기 티켓 등. 무언가를 샀던 순간은 살아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앞으로 Good Buy를 통해 필자가 써 내려갈 이야기도 그러한 내용이고 싶다. 혹, 너무 사적인 감상으로 흐르진 않을지 걱정되지만 세계적인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쯤에서 필자를 소개해 본다. 필자는 13년 차 아나운서이자 5년 차 쇼호스트다. 말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해 지역 지상파와 케이블방송 등에서 뉴스 앵커, 시사·교양 프로그램 MC로 활동했다. 이후 방송 영역을 확장해 홈쇼핑 방송을 거쳐 현재는 라이브커머스라는 분야의 쇼호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라이브커머스란 쉽게 말해서 ‘스마트폰에서 보는 홈쇼핑'이다. 텔레비전 홈쇼핑이 극장에서 보는 영화라면, 라이브커머스는 OTT로 보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나의 밥벌이는 주로 네이버, 카카오, 지마켓, 신세계, 쿠팡 등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방송을 진행하는 일이다.
쇼호스트라는 명찰을 달고 시청자(소비자)에게 상품을 소개하고 구매를 설득하는 일을 하다 보니, 늘 '잘 사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잘 산다'는 게 뭘까?
씀씀이가 작은 친구 1에게 물어봤다. “싸게 산 게 잘 산 거 아니냐?” 씀씀이가 큰 친구 2에게 물어봤다. “잘 산 거? 세일할 때 산 거.”
많은 사람들이 비슷할 것 같다. 물건을 기준보다 저렴한 값에 샀을 때, 잘 샀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100만원 하는 가방을 20만원에 샀을 때 이런 한줄평이 나온다.
"와, 가방 정말 잘 샀다."
그러니까 '잘 샀다'의 포인트를 가방 자체의 가치보다 가방을 사기 위해 지불한 비용에 두고 있는 셈이다. 나도 공감한다. 하지만 기준이 돈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뭔가 씁쓸하다. 가방 자체의 가치를 헤아려볼 수는 없는 걸까?
칼럼의 첫 회차를 준비하면서 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을 생각했다. 물건 하나가 번개처럼 머리에 스쳤다. 바로 8년 전에 샀던 맞춤 슈트. 북촌의 어느 테일러샵에서 맞춘 네이비 컬러의 더블 슈트 셋업인데, 180만원 정도에 샀다.
그 당시 내 나이가 사회 초년생 스물아홉 살이었던 걸 감안하면 슈트 한 벌에 꽤 큰 돈을 쓴 셈이다. 실은 결혼식 예복을 알아보던 차에 '한 번 입을 턱시도보다 차라리 돈 조금 더 보태서 제대로 된 슈트 한 벌 사 두면 결혼식 이후에도 쭉 입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샀다. 동기야 어찌 됐든 주사위를 던졌고 결과는, Good Buy였다.

이 맞춤 슈트는 결혼식 때 예복으로 입었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중요한 방송이나 격식 있는 자리 등에 갈 때 고민 없이 꺼내입는 든든한 옷이 되었다. 그때로부터 8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이 맞춤 슈트는 여전히 튼튼하다. 헤진 곳도 없고 색도 그대로다. 핏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몸에 맞게 재단한 맞춤 슈트인지라 입을 때마다 몸이 편하다. 여전히 애용하는 옷이고 앞으로도 애정할 옷이다.
하지만 이 슈트가 애틋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슈트에 담긴 추억들 때문이다. 이 슈트를 입고 뉴스를 했던 기억, 홈쇼핑 방송사 면접 볼 때 입었던 기억, 중요한 방송이나 행사 때 입었던 기억 등. 어쩌면 이 슈트야말로 나의 이력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8년 전. 180만원짜리 이 맞춤 슈트를 한 100만원 정도에 샀다면, 잘 샀다고 생각했을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하지만 8년이 흐른 지금 '이 맞춤 슈트 정말 잘 샀다'고 느끼는 건 180만원이었느냐 100만원이었느냐가 아니라 내가 이 옷에 쏟은 시간과 마음의 밀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잘 산다'는 건 그 물건에 마음이 깃드는 게 아닐까. 앞으로 Good Buy로 그런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