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의 Good Buy]
품절대란 ‘레어템’ 후지 X100V 카메라
‘사야만 낫는 병’을 치료하기 위한
좌충우돌 카메라 구매기
사고 싶은 충동보다
사고하는 시간의 중요성

평온했던 일상에 이따금 찾아오는 급성 질병들이 있다. 출근길 월요병, 명절 시댁 화병, 그리고 '사야만 낫는 병'. 이 병에 걸리면 하루에도 백 스물두 번 스마트폰을 열어보며 내내 그리워하는데, 시름시름 앓는(?) 그 모습이 마치 학창 시절 상사병 같다. 그러나 처방은 의외로 간단하다. 돈을 쓰면 된다. 결제 후 내 소유가 되는 순간, 마법처럼 낫는다.
이 병의 원인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플레이스테이션,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의 전자제품부터 나이키 운동화, 프라다 가방 등 패션제품까지 다양한 데서 발병한다. (생각보다 물욕이 없어) 안온한 날을 보내던 필자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계기로 '사야만 낫는 병'이 찾아왔다. 병의 근원은 후지필름의 X100V(엑스 백 브이)라는 모델의 하이엔드 컴팩트 디지털카메라였다.

'사야만 낫는 병'은 지독하다. 신발 안에 들어간 작은 돌마냥, 평상시에는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그 물건이 떠올라 마음을 어지럽힌다. 게다가 이 병의 대상이 구하기 힘든, 소위 '레어템'이라면 그 고통은 더 커진다. 필자에게 후지 X100V가 딱 그랬다.
X100V은 인기가 많았다. 2020년 출시될 때만 해도 120만원대 정도에서 구매할 수 있던 해당 모델이 2022년에는 공홈가가 160만원대로 올랐다. 그마저도 후지필름의 공급 물량 조절 정책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원자잿값 상승 등의 이슈로 인해 후지 X100V 모델의 품귀현상이 심해졌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틈새시장을 노린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프리미엄 리셀가가 붙어 250만원까지 치솟았다. 정말이지, 갖고 싶어 애간장이 녹는 수준이 아니라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이었다.

품귀현상 때문에 구할 방법도, 카메라 전문 매장에 걸어둔 대기 번호의 기약도 끝을 알 수 없던 이 카메라를 구하기 위해 필자는 일본까지 가서 도쿄의 카메라 매장들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곳에도 X100V는 없었다. 아쉬워하던 내게 점원은 "X100V의 후속 모델이 머잖아 나온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이미 내 심장은 X100V로 뛰고 있었다. 도쿄까지 갔지만, 안타깝게도 '사야만 낫는 병'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도대체 후지X100V의 매력이 뭐길래. 무엇이 나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았던 걸까?
첫째, 후지필름 특유의 클래식한 필름 카메라 색감이 너무나 좋았다. 가수의 매력은 목소리고, 요리사의 매력은 음식이며, 카메라의 매력은 단연 '사진'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X100V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추억 보정 능력이다. 디지털카메라이지만 필름 카메라의 감성을 사진에 담아주는데 그 아련함이 마치, 살아본 적 없는 80년대와 만나본 적 없는 첫사랑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둘째, 실버와 블랙의 조화가 돋보이는 레트로한 디자인에 반했다. 사실, 이 카메라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진(?)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 카메라를 '들고 다닐 내 모습'을 상상하며 설렜던 것 같다. 나의 상상 속에 후지X100V는 단순한 '카메라'가 아니라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콤팩트한 사이즈와 아날로그 감성의 그립감이 신의 한 수였다. 아무리 성능이 좋고 예쁘다 한들, 써야 보배다. 자주 쓰려면 실용적인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세상에! X100V는 '그것까지' 갖추었다. 가방은 물론, 심지어 겨울 코트 주머니에도 들어가는 크기. 들고 다니기에 무겁지 않은 무게감. 여기에 아날로그 손맛까지. 마치 수동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처럼 손가락에 가해지는 미세한 힘 조절은 아날로그 감성의 완벽한 재현이었다. 스마트폰으로 터치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비견할 수 없는 '한 장의 정성'. 그 아날로그 손맛만 아니었더라도 후지 X100V를 쉽게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깊은 병을 앓았으니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가 있나. 낙담한 마음을 담아 올린 sns. 그게 반전의 기회가 되었다. 알고 지내던 사진작가님이 낙담한 나를 위해 당신이 손품을 팔아보시겠다고 답장을 주셨다. 작가님이 알고 있는 커뮤니티 등을 활용해 상태가 좋은 중고 물품을 찾아주셨다. 역시 약은 약사에게, 카메라는 사진작가에게··· 진작 물어볼걸. 오래 아등바등했던 기다림이 무색하게, 제법 손쉽게 후지X100V를 품게 되었다. 물론 기분은 좋았다. '사야만 낫는 병'도 비로소 나았다.

참고로 '사야만 낫는 병'을 해소한 사람들은 대개 두 반응 중 하나다. "갖고 보니 별거 아니네"와 "갖고 보니 이건 나의 운명이었군." 필자의 경우는? 다행히 후자였다.
후지 X100V 카메라를 산 지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여전히 애지중지 잘 쓰는 나를 보며, '이 카메라, 잘 샀구나' 느낀다. 아무래도 (자의 반 타의 반) '사야만 하는 병'을 앓았던 시기가 길었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일종의 새옹지마였던 셈이다.
기다림이 길었던 탓에 '사고 싶어' 안달 난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내가 이 물건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사고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100만원이 훌쩍 넘는 큰돈을 썼음에도 후회하지 않았다. 누가 장고 끝에 악수라 했던가. 역시, 심사숙고가 답이다.
필자가 살면서 또 언젠가 이 '급성 질병'을 앓는 날이 올 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극복할 자신이 있다. 그 병에 걸릴 때면 X100V의 성공 사례를 떠올릴 것이다. 후지 X100V 카메라는 Good Buy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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