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주의 Good Buy]
도시를 닮은 운동, 헬스
작심과 비용 사이의 딜레마
3개월, 1년, 6개월 회원권 중
당신의 선택은?
운동을 다짐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택지가 ‘헬스장 등록’이다. 원래 헬스라 하면 새해 다짐이나 다이어트 작심, 바디프로필 촬영 등 제법 ‘큰맘’과 긴밀했는데 요즘은 스트레칭이나 자세교정, #오운완(오늘도 운동 완료) 등 비교적 ‘작은 맘’을 동기 삼는 트렌드 덕에 헬스가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스장을 몇 개월로 등록할지'는 주머니 사정과 작심의 강도에 따라 늘 고민이 된다. 아마도 한 번에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Good Buy 세 번째 이야기는 운동을 향한 의지와 지갑 형편 사이의 딜레마, 사소하지만 중대한 결정 ‘헬스장 회원권, 몇 개월로 끊을 것인가’이다.

본디 인간의 운동이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수렵, 채집, 농사 등의 근원적 노동 혹은 승리욕을 위한 본능적 스포츠로 존재해 왔다. 그러다 20세기 도시화를 겪으며 집약적이고 편의적인 형태의 '도시형 체육'으로 발전했다. 헬스도 그중 하나다.
SNS상에서 헬스를 ‘쇠질’이라고 한다. 쇠로 만든 헬스장 기구들을 반복적으로 들었다 놨다 하는 행태를 유희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가끔은, 사람들이 제한된 공간에 모여 ‘쇠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도시적인 느낌과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동시에 든다.
운동을 위한 운동, 단련을 위한 단련. 목적과 행위가 일치하는 효율적인 운동이지만 자연스러운 동기부여가 없으면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헬스는 어렵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에 사는 우리가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운동이다. 여기 우리 앞에 세 개의 선택지가 있다. 3개월 회원권, 1년 회원권, 그리고 6개월 회원권.

단기 목표 달성의 요람, 헬스장 3개월 회원권
필자의 첫 헬스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고3 수능시험을 마친 겨울이었다. 대부분의 친구가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던 그때 나는 헬스장을 등록했다. 다이어트를 위해서였다. 당시 내 몸무게는 97kg이었다. 대학 가서 ‘여자 사람’도 만나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었다. 12월, 1월, 2월. 딱 3개월 동안 열심히 운동해서 20kg 빼 보자는 ‘큰맘’을 먹고 헬스를 시작했다.
아파트 상가 헬스장 3개월 24만원. 캠퍼스 로맨스를 위한 일념으로 열심히 헬스장을 다녔고 3개월 만에 15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뿌듯한 3월을 맞이했다. 더불어 헬스장 3개월 회원권도 만료됐다. 성공적인 다이어트로 끝난 나의 첫 헬스, 재등록을 할 이유는 없었다. 목표를 이루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후 캠퍼스의 로맨스도 이루었다.
비용만 생각하면 이득, 헬스장 1년 회원권
시간이 흘러 30대가 되었다. 다이어트가 목표가 아닌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할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특별히 몸짱이 되어야겠다는 욕망도, 특별히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이 오로지 건강이라는 희미한 가치를 위해 관성처럼 등록했던 헬스장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쇠질’에 불과했다.
그런데 웃긴 건 언제나 돈이다. ‘그놈의 돈 때문에’ 그 재미없는 헬스를 1년 치 등록했다가 후회했던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왜 1년씩이나 등록을 했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헬스장 1년 회원권의 한 달 가격이 헬스장 한 달 정가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헬스장 한 달 비용이 8만~9만원 정도였는데, 1년 회원권을 끊으면 대체로 한 달에 4만~5만원 정도였다. 물론 열두 달을 곱하면 60만원이라는 제법 큰 금액이 나오지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돈 앞에서는 자가 진단보다 셈의 이득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어차피 한 번에 1년 치 끊어두면, 1년 동안 돈 걱정 안 하고 언제든지 운동할 수 있으니까 달마다 재등록하는 것보다 더 이득이잖아?’
누가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실패는 실패의 대물림이었다. 그렇게 여러 번 시도했지만 지금껏 나는 단 한 번도 헬스장 1년권을 다 채워 다녀본 적이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 지도 모른다. 흥미도 없이 막연한 약정기간을 채우려 했으니 말이다. 1년권을 끊었던 그 시절의 나는 헬스장의 기부 천사였다.
작심과 비용의 조화, 헬스장 6개월 회원권
지금은 ‘시즌제’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시즌제는 낯선 형식이었다. 시즌제는 끝이 약속된 제작 방식이다. 일정 기간 정해진 회차를 소화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성패와 상관없이 프로그램을 끝맺을 수 있다.
시즌제가 없던 시절의 프로그램은 모두 망조로 끝났지만, 시즌제가 도입된 프로그램들은 망하면 그 시즌으로 프로그램을 폐지하면 되고 프로그램이 흥하면 다음 시즌을 제작하게 된다. 시작과 끝이 명료하다는 점, 소비자가 온전히 프로그램을 소비하고 평가할 수 있을 넉넉한 시간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시즌제 프로그램은 ‘건강한’ 제작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헬스장 6개월 회원권은 이런 시즌제의 장점을 닮아있다. 필자의 20여 년 간의 드문드문 헬스 인생에서 생존력이 가장 좋았던 등록 기간은 ‘6개월’이었다.
초반에 언급한 대로 예전에는 헬스를 다룰 때 몸짱과 다이어트 등 ‘결과’에 초점을 맞췄다면, 요즘은 #오운완(오늘도 운동 완료) 트렌드나 스트레칭, 부기 빼기, 건강 등 ‘과정’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헬스를 ‘이벤트’가 아닌 ‘루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퍼지며 많은 사람들이 헬스의 가치에서 ‘꾸준함’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듯하다. 꾸준해지려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속도가 중요한데 그 지점에서 6개월 권의 장점이 두드러진다.

6개월 권은 보통 한 달 환산 가격이 6만~7만원 정도라서 보통의 헬스장 한 달 정가 8만~9만원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6개월이라는 기간이 지닌 매력이 있다. 우선, 헬스라는 운동에 흥미를 붙여볼 수 있는 적절한 기간이라는 점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6개월은 결과나 퍼포먼스에 아주 커다란 동기를 품지 않고 삶의 활력을 돋우는 의미로만 다가가도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간이다. 드라마틱하게 체중이 줄어든다든지, 좁았던 어깨가 넓어진다든지, 출렁이는 팔뚝 살과 튼실한 하체가 극적으로 얇아지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한 시간이라도 땀을 흘리면 몸의 부기가 빠지고 규칙적인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면 안색과 체형이 좋아진다.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뭔가 좋아졌는데?”라는 말을 듣게 된다. 살이 빠진 게 아니라 부기가 빠지고, 몸이 좋아진 게 아니라 몸의 균형이 좋아진 것만으로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6개월은 밀도 있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또한 반대의 경우에도 6개월은 괜찮은 선택이다. 6개월만 하고 그만두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 나름 떳떳한 마음으로 운동에 흥미를 붙여보고자 헬스장 6개월 권을 등록했지만 헬스에는 영 흥미를 붙이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6개월에 쏟아부은 매몰 비용을 따져보게 된다.
대략적인 숫자로 환산해 보면, 3개월 권을 포기했을 때 손해 보는 금액이 24만원. 6개월 권을 포기했을 때 손해 보는 금액이 42만원, 1년권을 포기했을 때 손해 보는 금액이 60만원. 그리고 등록 기간이 끝날 때까지 마음 한편에 가져야 하는 죄책감(?)까지 고려해 봤을 때 사실, 6개월 권을 포기한 값이 상대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매몰 비용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자 어떤가? 잘 쓰면 다음 시즌도 기약해 볼 수 있고 잘 못 쓰더라도 상대적으로 손해의 타격이 덜한 6개월 회원권. 20여 년의 헬스 세월을 바쳐 얻어낸 Good Buy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