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체류자, 의료·복지 사각지대 방치
외국인 노동자 위한 포괄적 지원 정책 시급

최근 5년 동안 한국에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1만5000여명 중 절반 가까이가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열악한 의료 환경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chat GPT
최근 5년 동안 한국에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1만5000여명 중 절반 가까이가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열악한 의료 환경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chat GPT

# 불법 체류자가 아니라 미등록 체류자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가족들을 떠나 낯선 땅에서 휴일도 없이 뼈 빠지게 일했다.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올게"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나왔지만 언어도 잘 안 통하는 타지 땅은 너무 차고 딱딱하다. 

최근 5년 동안 한국에서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 1만5000여명 중 절반 가까이가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열악한 의료 환경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에서 사망한 외국인은 1만5325명에 이르며 이 중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6771명(44.2%)에 달했다.

해마다 사망자 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2018년 2657명이었던 외국인 사망자 수는 2022년에는 3551명으로 늘었다. 차 의원은 “외국인 인력만 늘릴 게 아니라 최소한 사망 원인과 통계를 제대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5일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정영섭 이주노동자 평등연대 집행위원은 "이주 노동자들의 사망 원인 중 상당수가 과로, 고립감, 스트레스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된다"며 "위험한 작업 환경과 장시간 노동, 심리적 고립으로 인한 돌연사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사례도 산업재해로 인정되어야 한다"며 노동 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개월 이상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건강보험 당연 적용 대상이지만 비자 만료 후 복잡한 재입국 절차와 비용 부담, 열악한 근로 환경과 고용주의 비협조 등으로 인해 미등록 체류자가 증가하고 있다.

임금체불로 인한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비자가 만료되어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법적 권리를 지키려는 과정에서 체류 신분까지 위태로워지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등록 체류자는 42만3675명으로 2014년에 비해 10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비전문취업(E-9)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 중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하는 비율이 높으며 고용 당국은 올해 1~8월 사이 신규 미등록 체류자 중 약 4000명이 E-9 비자 소지자라고 밝혔다.

E-9 비자는 한국의 제조업, 건설업, 농업 등 비숙련 직종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발급되는 비자로 주로 일시적인 근로를 위해 입국한 노동자들이 해당한다.

불법 체류와 관련한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체류 신분 불안정, 임금 체불, 의료 접근성 부족 등 복지 사각지대를 포괄할 구체적인 정책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각 지자체는 비보험 외국인 노동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수원, 부산 등에서 무료 독감 접종과 주말 진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평소 의료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예방 접종과 진료를 제공해 건강관리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정영섭 위원은 "이주 노동자들이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하면서 기본적인 의료와 복지 혜택에서 소외되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며 "국적을 떠나 이주민들이 최소한의 복지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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