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가자지구 휴전 협상 기대 증가에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中 수요 둔화로
국제유가·정제마진 하반기에도 안갯속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정유사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2분기 정제마진 약세로 직전 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급감한 정유사들은 3분기 회복을 기대했으나 예상과 다른 추이로 흘러가고 있어서다.
22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가자지구 휴전 협상으로 중동지역 긴장이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글로벌 수요 둔화가 예상되면서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전거래일보다 0.75% 하락한 배럴당 73.82달러에 거래됐다.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도 0.44% 하락한 배럴당 77.32달러를 기록했다.
국제유가 하락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는 가자지구 휴전 협상이 추진되자 공급 둔화 우려가 주춤한 점을 들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리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휴전의 긴급성을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한 관계자는 “중동 긴장이 고조될 경우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정권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쏠릴 수 있다”며 “이에 바이든과 해리스는 가자지구 휴전 여부를 미국 대선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거시경제 지표가 하강곡선을 그리자 아시아 지역 수요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부담도 국제유가 하락에 영향을 줬다. 이에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8월 월간 보고서에서 1년만에 원유 수요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자 정제마진도 타격을 입고 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 제품 가격에서 운영비용과 유가 등 원자재 비용을 뺀 수치로 정유업계 실적을 좌우하는 지표다.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지난 1분기 7.3달러 수준에서 올해 2분기에는 배럴당 3.5달러로 급락했으며, 현재는 8달러 선으로 회복한 뒤 소폭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정유사들은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통상 2, 3분기는 자동차 수요가 늘어나 휘발유, 경유 정제마진이 상승하는 ‘드라이빙 시즌’으로 정유업계의 성수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올해 2분기엔 휘발유 마진이 급격히 줄어들며 2분기 전체 정제마진 약세에 영향을 미쳤다. 3분기 역시 휘발유 마진 약세가 지속되고 있어 정제마진 하락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분기 정제마진 급락에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의 올해 2분기 실적은 1분기 대비 급감한 바 있다. 정유 4사 중 3사가 2분기 적자 전환했고, 4개사의 정유 부문 총 영업이익은 1분기 1조3617억원에서 2분기 영업손실 58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2분기 실적발표 당시 정유사들은 3분기 정제마진 회복을 예상했다. SK이노베이션은 "하반기에는 정제마진이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으며 에쓰오일 역시 "3분기 아시아 정제마진은 여름 성수기 기간 중 이동용 연료 수요 중심으로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흐름에 3분기 큰 반등을 노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석유 제품의 수급 상황이 쉽사리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정유사의 높은 가동률과 중국 경기 침체로 인해 내수에서 소비되지 못한 잉여 물량이 많아 공급 과잉 속에서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잉여 석유 제품은 아시아의 도매 시장격인 싱가포르 시장으로 가게 되는데, 싱가포르 시장은 직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좀더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팔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시아 시장 내 석유제품 공급이 늘고, 정제마진도 낮아져 국내 정유사에 불리하다.
미국의 공급 증가도 부정적인 요인 중 하나다. 업계에서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유가 안정 차원에서 미국 내 정유사의 가동을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 내수 생산량이 증가하면 수입을 줄이기 때문에 미국으로 수출되던 휘발유를 다른 곳으로 수출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공급이 늘어 정제마진도 악화된다.
국내 수요도 뚜렷한 증대 요인이 없다. 드라이빙 시즌도 통상 5월부터 시작되지만 올해는 6월부터 시작됐다. 특히 올해는 해외여행에 휴가철 여행객들이 쏠리면서 국내 이동에 사용되는 휘발유와 경유 소비는 크게 늘지 않은 반면 항공유 소비가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유사들의 3분기 실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주가도 약세다. 에쓰오일은 지난 6개월간 17.94% 하락했다. 지난 21일 에쓰오일 주가는 6만2200원으로 지난 4월 이스라엘과 이란의 확전 우려에 52주 최고가(8만4500원)를 기록했을 때와 비교하면 26.51% 내렸다. GS칼텍스의 지주사인 GS 주가도 6개월 새 8.92% 떨어졌다.
정경희 키움증권 연구원은 여성경제신문에 “보통 2~3분기는 휘발유 강세 시기이지만 올해는 2분기에 이어 3분기도 휘발유 마진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EV 시장 침투, 경질유 증산, 연비개선, 주요 소비국 인구구조 변화 등이 작용한 구조적 변화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 역시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화 전망이 유지되고 정제마진도 하락하고 있다”며 “공급 차질보다는 수요 감소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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