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3000억 규모 신종자본증권
SK이노, GS칼텍스도 회사채 발행
관세전쟁 속 불확실성에 실탄 확충

국제유가와 원유 수요가 하락하면서 실적이 악화한 정유사들이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 대산 공장 전경 /HD현대
국제유가와 원유 수요가 하락하면서 실적이 악화한 정유사들이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 대산 공장 전경 /HD현대

글로벌 경기 침체와 미국발 관세전쟁이라는 이중 악재 속에서 국제 유가가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제품 수요 감소로 실적에 빨간불이 켜진 정유사들은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며 버티기에 나서고 있다.  

28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2일 3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당초 계획은 2500억원이었으나 시장 반응에 힘입어 500억 원을 증액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는 영구채다.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돼 자기자본 확충 수단으로 활용된다. 에쓰오일은 조달 금액 중 1500억원은 채무상환, 나머지 1500억원은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HD현대오일뱅크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지난해 12월 HD현대그룹의 대표적인 ‘재무통’인 송명준 대표를 새로운 수장으로 맞았다. 송 대표는 과거 HD현대와 HD한국조선해양 재무를 관리하며 부채비율을 안정화시킨 경험이 있는 만큼 정유4사 중에서도 부채 비율이 유독 높은 에쓰오일의 구원투구 역할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SK이노베이션도 이달 30일 대규모 회사채 발행에 나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회사채 발행 규모를 기존 40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증액했다. 연내 만기도래 회사채 규모는 오는 7월 예정된 2600억원이 전부지만 기업어음(CP) 등 차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루 앞선 29일 회사채 발행 예정인 GS칼텍스도 당초 1200억원 1600억원으로 증액 발행을 확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에쓰오일은 지난달 당초 계획인 3500억원보다 늘어난 4400억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했다. 에쓰오일은 울산 지역에 약 9조3000억원을 투자해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설비를 구축하는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기 위해서도 안정적인 자금 조달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정유업계가 자금 조달에 나서는 배경은 불확실한 시장 상황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경기 침체로 이어지면서 원유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에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있다. 여기에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도 동반 하락하며 실적 반등이 요원한 상황이다.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더 많은 석유를 파자)’을 외치며 석유 소비 증가를 기대했던 정유업계는 최근 국제 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악화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상이다. 

실제 국내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인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올해 1월 배럴당 평균 3.2달러에서 3월 평균 7.6달러까지 올랐지만 미국의 수입차 관세 25% 부과 시행 직후인 4월 4일 1.85달러로 하락했다. 

정제마진은 원유 1배럴을 공정에 투입했을 때 원료인 원유 가격과 각종 수송·운영비 등을 제외하고 남은 이익이다. 유관업계에선 정제마진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지난해 실적 부진을 겪었다. SK이노베이션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3.4% 급감한 3155억원에 그쳤고, GS칼텍스는 67.4% 감소한 5480억원을 기록했다. 에쓰오일과 HD현대오일뱅크도 각각 68.8%, 58.2% 영업이익이 줄었다.

실적 악화일로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에쓰오일이 28일 발표한 올 1분기 실적은 영업손실 215억원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경기 둔화 우려로 인해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역내 일부 정유공장의 정기보수가 연기됨에 따라 정제마진이 하락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유업계는 회사채 발행을 통해 필요 자금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안정적인 경영활동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트럼프 관세 이슈로 석유수요 침체가 우려되고 유가가 급락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불확실성에 대응해 필요 자금을 선제 조달하면서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영하기 위한 경영활동의 일환이다”고 말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는 관세, 석유수출국기구(OPEC) 증산,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당분간 변동성이 클 것”이라며 “내년까지 하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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