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의 은퇴와 마주 서기]
어르신 교통카드로 교통비 무료
2만원에 한정식·현지 교통 해결
천년 은행나무와 마주하는 감회
몇 년 전 차를 가져와 고생한 여행길이었다. 서울 근교 여행이나 하자고 가족들과 양평 용문사를 찾았다.
그날이 공휴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이미 만차로 차를 세울 공간이 없었다. 주차 공간을 찾아 빙빙 돌다 결국 주차장에서 차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주차하고 20여 분 걸어 올라갔다. 내려올 때도 그 길을 걸어 내려왔으니 끔찍한 일이었다.
얼마 전 지인 몇 명과 기회가 되어 다시 용문사에 가게 되었다. 오고 가고 차도 밀리니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무임승차가 가능한 65세 이상 시니어들이니 쉽게 의견이 모였다.
옥수역에서 경의 중앙선을 타기로 했다. 옥수역에서 용문역까지 승용차로 1시간 5분, 전철로는 1시간 17분 걸린다.
용문역에 도착하여 용문사 입구 식당가를 검색하여 전화를 하니 차량이 용문역에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식당에서 경쟁적으로 손님 유치를 위해 약 9km 떨어진 거리를 수시로 차량 운행을 하고 있었다.
편하게 용문사 주차장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갔다. 식당차를 타고 왔으니 이 집에서 점심만 먹어주면 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1인당 2만원 하는 한정식이 큰 상 가득 나온다. 산과 들에서 채취했을 듯싶은 무공해 산채 나물과 더덕 불고기 백반이 향기를 품으며 입맛을 더한다.

역시 한국 사람은 외국 음식보다는 한정식으로 한 상 차려 먹어야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20여 가지의 갖가지 반찬과 흰쌀밥을 맛있게 먹었다. 지평 전통 막걸리 한 잔씩 따라 건배를 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서울에서 용문사까지 차를 가져갈 필요가 없었다. 갈 때도 식당차를 타고 용문사에 내려 전철을 타면 된다. 왕복 유류비도 절약되고 주차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전철을 타고 차창 밖으로 산과 들 경치를 보며 즐기면 된다.
용문사 입구에서 절까지 들어가는 길은 1.5km의 멋진 산책길로 조성되어 있다. 일주문으로 가는 길에 용문사 안내 표지가 있고 나무 그늘에 귀여운 호돌이 인형이 있어 사진에 담았다. 용문사 입구에 다다르니 숲 해설사 시간과 맞아 기왕 해설사와 함께 하기로 했다.

해설사는 배낭을 둘러메고 숲 해설을 해주겠다며 우리와 함께 길을 나섰다. 용문사 일주문을 들어서며 이 일주문은 모든 번뇌를 내려놓고 통과하라는 문이라고 소개를 해준다. 말이 나온 김에 복잡하던 바깥세상의 잡념을 조금이나마 비우고 마음을 편하게 가져 본다.
해설사는 일주문을 통과하여 숲길을 걸으며 뽕나무와 참나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여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퀴즈를 내며 맞췄다고 손수 만든 나무 피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아까 나눠주었던 돋보기로 소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들여다보라 했다. 갈라진 껍질 틈으로는 깊은 협곡이 나타났다. 단순한 소나무 껍질 틈새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해설사는 배낭에서 또 평면거울을 꺼내 눈 가까이 대보라고 하며 하늘에서 새가 내려다보는 숲과 뱀이 보는 숲속 세상을 보게 했다. 거울을 아래에 놓고 올려다보는 거울 속 하늘 정원은 너무 아름다워 일행이 모두 탄성을 질렀다. 숲 해설사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귀중한 체험을 하며 해설사와 헤어졌다.

용문사 입구에 올라 먼저 유명한 은행나무를 찾았다. 1100년 수명을 자랑하는 은행나무다. 아주 오래전 찾았을 때는 겨울이어서 그런지 앙상한 뼈대만 남아 애처로웠었다. 더구나 천년도 넘은 고목이라니 어디 은행 한 톨 열릴 것 같지도 않았다.
다시 와 보고 깜짝 놀랐다. 앙상했던 가지에 무성하게 푸른 잎을 달고 우람하게 서 있는 그 자태가 전혀 천년을 지난 고목이 아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금도 한 해 약 350㎏의 은행을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신라의 마지막 태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는 전설이 있어 그런지 마의태자 영혼이 죽지 못하고 살아있는 듯했다.

천년을 더 버틴 은행나무 앞에서 우린 인증사진을 찍으며 뭔가 좋은 기운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기껏 백 년도 어려운 삶일지언정 이 은행나무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살다 죽어야지 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계단을 타고 사천왕상을 지나 대웅전을 둘러보고 용문사를 내려왔다. 오르고 내리는 산책길 옆으로 흐르는 도랑물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제공한다. 물 흐르는 소리만 들어도 시원한 기분이 들어 여름의 무더위를 날려 보낸다.
용문사 탐방을 마치고 다시 식당차가 용문역까지 배웅을 해준다. 용문역에 도착하니 오늘이 용문 오일장 날이라 큰 장이 서 있다. 도로마다 상인들의 파라솔이 즐비하게 늘어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용문시장이 유명한 것은 산과 들에서 채취한 나물과 시골에서 재배한 농산물이다. 시장을 둘러보고 이것저것 구경도 하니 나름 재미있다.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전철 시간에 맞추어 출발했다. 지난번 차를 가지고 왔을 때를 생각해 보니 이번은 너무 편하게 왔다 가는 것 같다. 차가 밀릴 걱정 안 해도 되고 주차 걱정 안 해도 된다. 운전하느라 애쓸 것도 없고 편히 전철 좌석에 앉으면 된다. 왔다 갔다 기름값도 안 들고 단지 점심 사 먹느라 쓴 돈밖에 없다. 시니어들이 하루를 보내는 가장 행복한 방법이라고 덕담을 나누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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