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의 은퇴와 마주 서기]
문학기행이 주는 따뜻한 의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풀꽃)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행복)
잘 있노라니 고마웠다 (안부)

문학기행 떠나는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차창 밖으로 빗물이 흘러내리고, 물찬 논에는 땅 내를 맡은 벼가 푸른 싹을 곧게 세우고 비를 맞고 있다. 설렘을 가득 싣고 버스는 서울을 벗어나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운치가 있다. 이번 송파문협 문학기행 행사는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나태주 풀꽃문학관이다. 머리가 희긋희긋해도 새로운 만남엔 가슴이 설렌다.
나태주 시인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후 지금까지 52권의 책을 발간했다 한다. 그의 대표작으로 '풀꽃'은 국민 대부분이 좋아하는 시다.
풀 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쉽고 짧아 외우기도 쉽다. 이 짧은 시에 많은 이야기와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 설렌다. 두 시간 반을 달려 나태주 시인의 공주 풀꽃문학관에 도착했다.

공주 풀꽃문학관은 일제 강점기 일본 경찰 간부가 사용하던 숙소라 한다. 이를 개조해 지자체의 지원으로 문학관을 만들었다. 아담한 크기의 기와지붕 단독주택이 정겹다. 집주변으로 조그만 화단이 빙 둘러있고 여러 꽃이 피어 있다. 문학관에 들어가는 담벼락에 시인의 주옥같은 시가 그림과 함께 새겨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기다리고 있던 시인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좁은 방에 40명이 붙어 앉아 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시인은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시인이란 평범한 사람들보다 특별한 감성이 있다고 했다. 약간은 돌아이 기질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치 조울증 환자가 최고조로 기분이 좋았다가 최저로 떨어지는 듯한 깊이 속에서 좋은 시도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신의 영역이라 했다.
풀꽃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이 두 구절은 시인의 언어이고 마지막 “너도 그렇다”는 귀신만이 아는 시어라고 했다. 시는 그만큼 어려워 자식들한테도 권유하지 않았다 한다. 풀꽃이 나오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시인이 현재 80세가 되었는데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어머니는 언제 죽을까?” 하는 자문자답에 “어머니는 내가 죽을 때 죽는다”고 했다. 공감이 간다. 육신은 죽었어도 내가 잊지 않으면 돌아가신 것이 아니란 뜻이다.

한참 이야기를 이어가던 시인이 갑자기 노래하시겠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풍금을 가지고 옛 추억의 동요를 부르자는 것이었다. '오빠 생각'과 '어머님 은혜' 등 악보를 나눠줬다. 모두가 시인의 풍금 소리에 맞춰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를 크게 불렀다. 감회가 새로웠다.
'오빠 생각'은 당시 12세이던 최순애 어린이가 오빠를 생각하며 지은 가사였다고 한다. 서울로 떠나며 비단 구도 사 오겠다던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진다는 가사였다. 노래가 끝나자 요즘 어린이들은 동요는 잘 안 부르고 어른들 노래만 부르는 풍조가 있어 마음 아프다고 이야기하셨다.

시인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고 노래도 함께 부르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잠시 후 밖으로 나와 잔디밭에 세워진 풀꽃 시비에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르르 몰려 사진 찍는다고 화단의 꽃 하나를 밟아 쓰러뜨리자, 시인은 즉시 그 쓰러진 꽃을 다른 곳에 옮겨 심으셨다. 풀꽃 하나도 아끼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제 얼마나 더 시인의 강의를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현재 살아 계시는 시인의 시 강의를 듣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시인의 시 중에서 ‘행복’을 다시 생각해 본다.
행복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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