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섭의 은퇴와 마주 서기]
우리 집 식단이 달라졌어요
내가 기른 열매채소 수확
저게 저절로 클 수는 없다

                                                                          텃밭의 값진 수확물. /박종섭
텃밭의 값진 수확물 /박종섭

이른 봄부터 텃밭의 채소는 우리 집 식탁에 단골 메뉴였다. 갖가지 상추와 당귀, 쑥갓, 치커리, 깻잎 등이 식단을 풍성하게 했다. 된장국에 아욱과 근대는 필수품이었다. 구수한 된장국만큼 우리 한국인의 입맛에 맞고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식재료도 없는 것 같다.

요즘은 비닐하우스에서 계절 구분 없이 각종 채소며 과일들이 생산되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온전히 노지에서 태양 빛을 받고 자란 작물들은 그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봄에 파종하여 무더위가 찾아올 때까지 수확했던 채소는 꽃대가 올라오고 씨앗을 맺기 시작한다. 자신이 가야 할 때가 다가온 줄을 아는 것이다.

자기 종족 번식을 위해 영양분을 꽃과 씨앗을 만드는 데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무더위가 찾아오는 이쯤 되면 채소는 끝물에 가깝게 되어 농부는 가을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기 위해 밭을 갈아엎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 보면 앞으로 한두 번 더 수확하면 채소는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주렁주렁 미끈하게 잘 자란 가지 /박종섭
주렁주렁 미끈하게 잘 자란 가지 /박종섭

이제 텃밭은 그동안 커왔던 열매채소가 대신 차지한다. 꽃이 피고 손가락 마디처럼 조그맣게 열매를 달았던 가지가 저렇게 자라있다. 가지가 자라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마치 긴 고무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는 듯하다. 어쩌다 며칠만 안 가봐도 쑥쑥 커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

미끈미끈하게 쭉쭉 뻗은 가지는 부잣집 아이들 같다. 사 먹을 땐 몰랐는데 내가 직접 심어 기른 가지가 저렇게 잘 큰 걸 보면 뿌듯한 생각이 든다. 가지는 여러 가지 반찬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갓 쪄낸 가지에 양념간장을 발라 스테이크처럼 접시에 담아 한 조각씩 먹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싱싱한 고추는 식탁에 귀한 식품이다. /박종섭
싱싱한 고추는 식탁에 귀한 식품이다. /박종섭

고추도 싱싱하게 많이 열렸다. 작년에는 장맛비에 곯아떨어져 초반 한두 번 따먹고는 이내 포기해 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힘든 게 농사일이다. 적당량의 비와 태양 빛이 있어야 한다. 비가 너무 많으면 곯아떨어지고, 태양 빛만 뜨거우면 식물은 말라 버리고 만다. 농부의 노력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올해는 아삭이 고추만을 심었다. 청양고추와 한 곳에 심으니, 청양고추가 얼마나 강한지 근처에 있는 아삭이 고추가 거의 청양고추가 되어 매워서다. 아삭이 고추는 매운맛이 없고 싱겁긴 하지만 채소처럼 먹기에 좋은 것 같다.

붉게 익어가는 방울토마토 /박종섭
붉게 익어가는 방울토마토 /박종섭

방울토마토가 붉게 익었다. 토마토도 작년에는 장맛비에 초토화되어 거의 먹지 못했었다. 그래서 올해는 봄부터 미리 비닐을 씌워 수분 조절을 해줬다. 너무 많이 비가 오면 익은 토마토가 물러 터져 버리기 때문이다.

토마토를 심으면 좋은 것이 밭에 가면 익은 토마토를 따서 금방이라도 먹을 수가 있어서다. 갈증도 해소하고 또한 나무에서 바로 따 먹는 토마토의 싱싱함이 아삭아삭하는 식감과 함께 단맛이 나기 때문이다.

병아리콩 넝쿨 /박종섭
병아리콩 넝쿨 /박종섭

올해 처음 심은 병아리콩은 관심 대상이다. 몇 포기 안 되지만 포기가 무성하게 자라 열매를 맺었다. 수확할 때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콩알이 단단해지고 노랗게 익어 병아리처럼 모습이 닮아 있어야 한다.

병아리콩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섬유질 함량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비타민, 미네랄, 불포화지방산이 많고 특히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병아리콩은 이름도 재미있고 귀엽게 생겨 수확이 기대되기도 한다.

텃밭의 채소와 열매채소는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박종섭
텃밭의 채소와 열매채소는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박종섭

텃밭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것이 있다. 마트나 식료품 가게에서 채소나 과일을 사 올 때는 그 상품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다. 그냥 당연히 사다 먹는 품목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텃밭을 하며 내가 직접 씨앗을 고르고 모종을 사다 심어보니 작물 하나하나가 귀한 생명으로 달리 보였다. 씨앗에서 싹이 텄을 때의 신비함과 파랗게 새싹이 잎을 내밀고 자랄 때의 몸짓 하나가 생명의 가치를 느끼게 해줬다.

결국 그 싹이 이렇게 풍성한 열매를 달고 맛 좋은 식탁으로 왔을 때 이 모든 게 자연의 한 식구요 나 자신이 대자연 속에 한 몸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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