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책임 피해자에 있는 현행법
개정안 내지만···바꾸기 어려워
페달 블랙박스가 유일한 돌파구

2일 오전 전날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 인도에 사고 여파로 파편이 흩어져 있다. /연합뉴스
2일 오전 전날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 인도에 사고 여파로 파편이 흩어져 있다. /연합뉴스

급발진 의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판결이 어려운 이유는 현행법에 따라 인정이 까다롭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법 개정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급발진 사고는 현행법상 피해자가 증명해야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증명이 어려워 피해 구제 실효성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지난 1일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에 이어 최근 각지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7일 서울 용산구에서 택시 운전사가 차량을 들이받아 연이어 4대가 충돌했으며 9일 부산에서는 70대 운전자가 놀이터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날 수원에선 70대 운전자의 역주행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공통점은 운전자들이 모두 급발진 주장했다는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종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6월까지 총 236건의 급발진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다만 실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제조물 책임법 제3조의2에 따르면 피해자가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해당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 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됐다는 사실 △해당 손해가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을 증명한 경우에만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급발진은 피해자가 명확히 증명할 방법이 없고 운전자 실수 또한 증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2022년에는 강릉 홍제동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아이가 사망하고 운전자였던 아이의 할머니가 형사 입건된 사건이 화제였다. 이에 소프트웨어 결함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 등을 요구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 이른바 '도현이법'이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강원 강릉에서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차량의 결함에 의한 급발진 여부를 밝힐 '재연 시험'이 지난 4월 19일 오후 강릉시 회산로에서 진행됐다. 도현 군의 아버지 이상훈씨가 재연 시험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강릉에서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차량의 결함에 의한 급발진 여부를 밝힐 '재연 시험'이 지난 4월 19일 오후 강릉시 회산로에서 진행됐다. 도현 군의 아버지 이상훈씨가 재연 시험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국민동의청원에는 해당 내용으로 청원 글이 다시 게재됐다. 청원인이자 유가족인 이씨는 "당시 사고에 대한 원인 규명을 위해 제조사인 KG모빌리티를 상대로 지난해 1월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4월 사고 발생 현장에서 주행시험을 실시, 5월에는 자동긴급제동장치(AEB)가 모닝차량 모형 앞에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공개 시험을 시행했다"며 "급발진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사고 원인 규명을 비전문가인 사고자나 경제적 약자인 유가족이 큰 비용이 드는 기술적 감정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는 현실에 울분이 터진다"고 토로했다.

잇따른 급발진 의심 사고로 22대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8일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원문에 따르면 공정위는 올해 5월 '제조물책임법 운용 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에서 급발진 문제를 해당 법으로만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통해 제조사의 기술적 조치 의무를 명시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해당 개정안은 자동차 제작·판매자 등이 차종, 용도, 승차 인원 등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페달 영상기록장치 장착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법안 시행 시기는 페달 블랙박스의 기술 개발 기간을 고려해 '법안 공포 후 3년이 지난 날'부터로 했으며 신규 제작 차량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전문가는 법안 개정은 비현실적이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자동차급발진연구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현행법은 자동차의 결함을 소비자가 밝혀야 하는 구조다. 그런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어렵다. 급발진은 40여 년 동안 발생해왔다. 법이 소비자 중심이 된다고 도움 되는 것은 없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운전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사고 이후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페달 블랙박스뿐이다. 그리고 영상 블랙박스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제일 잘 만든다. 개발은 이미 되어있지만 그동안 운전자들은 '설마 내게 급발진 사고가 생길까'하는 안일한 생각에 소비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영상은 100% 증거로 사용할 수 있으며 제조사 결함인지, 운전자의 실수인지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제기된 페달 블랙박스 설치 의무화에 대해서는 "권장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고 의무화는 하면 안 된다. 수입차 같은 경우 FTA에 어긋난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는 고령 운전자 사고를 감소시키는 장치다. 급발진 예방 장치가 아니다. 급발진 예방 장치라는 것은 해외에도, 국내에도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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