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 교수 "급발진 아니라면 정상 주행 방식은 아냐"
"운전자·동승자 다툼, 충동 가속 가능성도 열어둬야"

정속 주행을 요구하는 서울 대도심 한복판에서 9명이 사망하는 차 사고가 1일 저녁 발생했다. 사고 직후 가해 차량 차주는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일부 목격자는 가해 차량이 횡단보도 앞에서 서서히 멈추는 모습을 보고 "급발진이 맞느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전문가는 "일부 장면만 보고 급발진 여부는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며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1일 오후 9시 3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검은색 대형 승용차를 운전하는 차 씨가 보행자를 쳐 9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났다.
경찰과 소방 당국 발표를 보면 사고 차량 운전자는 현재 경기도 안산 소재 버스회사에 소속된 시내버스 기사로, 40여 년 운전 경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운전자 정보 일부가 공개되자 누리꾼 사이에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 9명이 사망할 정도로 속도를 낼 수 있겠냐", "정황상 급발진 의심을 해 볼 수 있지만 공개된 CCTV 영상을 보면 마지막에 브레이크를 잡고 서서히 멈췄다. 급발진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 "부부가 동승했다고 하는데, 싸워서 홧김에 엑셀레이터를 밟은 게 아니냐"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사고 직후 브레이크 밟고 서서히 멈춘 차량... 급발진?
2일 연합뉴스TV에 보도된 사고 직후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사고를 낸 차량이 사고 직후 감속하면서 멈추고, 갑자기 다가오는 차량에 놀란 시민들이 급히 몸을 피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모습을 본 네티즌들은 일반적인 급발진 의심 사고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했다. 한 네티즌은 엑스(X)에 "브레이크 밟고 차를 세우는데 급발진?"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급발진이라기엔 차가 너무 부드럽게 멈춘다"는 반응이 나왔다.
급발진으로 의심받는 사고 차량은 통상 도로 위 가드레일이나 전봇대 같은 구조물과 부딪힌 뒤 속도가 줄어 멈추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이라는 것.
전문가는 브레이크를 밟고 정속으로 멈췄다는 것만으로 급발진을 단정하긴 이르다는 입장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급발진 상황에서 사람이나 가로등 등 물체와의 충돌에 의해서 차가 서서히 속력이 줄어들고, 이 과정에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고 있었다면 마지막에 브레이크를 밟고 정상적으로 멈추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김 교수는 "하지만 차량이 정상화돼서 속도가 줄거나 운전자가 차량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시 전환되는 경우가 급발진 상황에서 보기 어려운 사례도 많기 때문에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급발진 여부에 대해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운전자 부주의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김 교수는 "사고 위치를 보면 4차선 편도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구간이 아니다"라면서도 "운전자가 차량을 출발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J 호텔에서 사고 발생 구간까지 1km도 안 되는 구간이지만 우회전 좌회전 등 굴곡 구간이 있기 때문에 급발진이 아니라면 단순 운전자 부주의 혹은 동승자와의 다툼으로 인해 운전자가 홧김에 급가속했을 가능성 등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 운전자 부주의로 인한 단순 사고?
경찰의 검사 결과 사고 차량 운전자는 음주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사고 원인은 가해자 주장대로 급발진이거나 운전 미숙, 부주의 등 운전자 과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특히 사고 차량 운전자의 나이가 68세로 알려지면서 고령 운전자의 운전 미숙이 아니었냐는 의문도 따른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438만 명이다. 2025년에는 498만 명, 2040년에는 1316만 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률도 증가세다.
지난 2020년 3만 1072건에서 2022년 3만 4652건으로 증가했다. 이는 전체 교통사고 발생률이 감소하는 추세와 정반대 양상이다. 교통사고 관련 가해 운전자 연령대별로는 50대의 사고가 22.6%로 가장 많고, 이어 65세 이상 고령운전자 17.6%, 40대 17.2%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문가는 68세를 고령 운전자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필수 교수는 본지에 "이번 사고를 고령운전자 사고로 보면 안 된다"며 "68세에 건강했고 운송업에서 종사했을 정도로 일명 '베테랑' 운전자였기 때문"이라며 "또한 60대 연령층은 타 연령층 대비 사고 비율이 높지 않다"고 했다.
이어 "초고령화 사회인 점을 두고 볼 때 보통 75세가 넘어가야 고령 운전자로 볼 수 있다"며 "이번 사고를 볼 때 운전 미숙이나 고령 운전자의 특성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운전자의 충동적인 가속 가능성 등도 열어 둬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상자 발생할 정도로 급가속?
이번 사고는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했다. 경찰이 발표한 자세한 사고 경위를 보면 1일 오후 9시30분께 서울 지하철 시청역 교차로 인근에서 사고가 났다. 사고를 낸 제네시스 차량은 웨스틴조선호텔을 빠져나와 4차선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하며 차량 2대를 연속해서 추돌했다.
이어 인도 쪽으로 돌진해 시민들을 덮친 뒤 시청역 12번 출구 앞에 멈췄다. 200m가량 역주행 과정에서 인도에 있던 행인 등 9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김필수 교수는 서울 도심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사고라고 판단했다. 김 교수는 "사고 위치와 정황상 사상자를 낼 정도의 속력을 낼 수 있는 구간은 아니다"라며 "J 호텔에서 사고 지점까지 가려면 우회전 즉 180도 핸들을 돌려야 한다. 또한 이 구간이 4차선 편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가속하겠다고 의도하거나 급발진이 아닌 이상 설명이 어렵다"고 했다.
이어 "사고 지점에서 가해 차량 차주가 차량을 움직이기 시작한 구간으로 보면 약 200m를 일명 '풀 액셀레이터'로 질주했다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일단 급발진은 사고 차량 차주의 진술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사고 차량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하는 한편 폐쇄회로(CC)TV 및 블랙박스 영상, 목격자 진술 등을 분석, 사고 경위를 다각도로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