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
이창용 "높은 생활비, 통화정책만으론 안 돼"
농산품, 생산성 低·공급 변동 多·유통비용 ↑

한국은행이 물가 수준 안정화를 위해서는 구조적 요인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보다 가격이 현저히 높은 식품과 의류 비용은 생활비 수준을 끌어올리기에 개선이 필요한데 이는 수입을 활성화하거나 유통구조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1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은행은 이날 '2024년 상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를 개최하고 이슈노트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과 시사점: 주요국 비교를 중심으로'를 발간했다.
국내 물가는 상반기 전반적으로 둔화 흐름을 보인다. 지난해 12월 3.2%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5월 2.7%로 낮아졌다. 근원인플레이션율도 2.8%에서 2.2%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의 물가 상승률이 향후에도 완만히 둔화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한국의 필수소비재 가격이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어 생활비 부담이 큰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이에 관해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생활비 수준은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높은 생활비 수준이 "인플레이션이 낮아졌지만 국민이 피부로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같은날 발간된 한은의 이슈노트를 보면 국내 물가수준은 소득수준을 고려할 때 주요 선진국의 평균 수준이지만 품목별로는 여타 국가에 비해 가격수준이 현저히 높거나 낮은 품목이 많다.
가격수준이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높은 품목으로는 의류와 신발, 식료품과 주거비가 언급됐다. 반대로 가격수준이 낮은 품목으로는 전기, 가스, 수도, 통신비용 등 공공요금이 지목됐다.
이지호 조사국장은 해당 품목의 가격 격차가 과거보다 크게 확대됐음을 지적하며 "이는 일시적 요인이 아니라 무언가 구조적인 요인이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농산물의 경우 국내 생산성이 주요국에 비해 낮은 것이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린다. 이 국장은 "생산성이 낮아질수록 품목 물가 수준이 높아진다"면서 "한국의 농산물 물가는 추세선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한은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당 경작지 면적이 매우 작고 영농규모도 영세해 노동생산성이 OECD 국가 중 27위로 하위권이었다. 게다가 농가 고령화와 이상기후에 따라 작황이 부진하고 재배지가 축소돼 2010년대 이후 과일과 채소의 생산량은 이전보다 줄었다.
이 국장은 "과일과 채소 수입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좀 낮은 것도 물가 수준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파악된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유로 지역에 비해 수입을 통한 과일과 채소의 공급 비중이 작다.
유통비용의 증가도 과채류의 가격을 밀어 올린다. 영세한 생산 농가에 비해 도·소매업체의 시장지배력이 큰 상황은 농산물 유통비용률(유통비용/소비자가격) 상승을 불렀다. 1999년 39%였던 농산물 유통비용률은 2022년 50%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생산자 측의 공급탄력성 제고가 필요하다. 이 국장은 한국과 미국의 사과 품종별 생산 비중을 비교하며 "(농산품의) 공급 품종을 다양화해서 공급탄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농산물 가격은 작황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 만큼 안정적인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입' 역시 고려할 수 있다. 이 국장은 "특정 농산물 가격이 상당 기간 급등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한시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물량을 수입할 수 있도록 수입선을 미리 확보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국산 과일과 수입 과일의 가격 변동성을 비교한 그래프를 통해 수입 과일 확대가 국산 과일 가격의 변동성을 대체로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한은이 '수입을 통한 국내 농산물 공급 및 가격 안정화'를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통화정책방향 발표에서 공급량 급변에 따른 농산물 가격 변동은 기후 이변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벌어질 일이라며 국고를 열어 국산 농산품 가격을 그때그때 보조하는 방식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던 바 있다.
당시 이 총재는 "그것(재정을 활용한 생산자 보조)이 하나의 국민의 선택이라면 그렇게 갈 수 있겠다"면서도 "그게 아니라면 수입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말했었다.
농산품 유통 구조를 개선하는 것 역시 물가 수준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국장은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효율화하자고 한 것은 산지에서 농민들이 제값을 받도록 하고 소비자는 적정가격 내에서 안정적으로 소비를 하자는 이야기"라며 이 대안이 "단체들에 따라서는 이익과 불이익이 있겠지만 농업이나 이런 쪽(생산자 측)에서는 기본적으로 가려 하는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이 국장은 의류비가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준인 것 역시 유통구조 개선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반면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인 공공요금은 단계적 인상을 통한 가격 정상화와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이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설명회는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한국은행 별관에서 개최됐으며 이창용 총재, 이지호 국장 외에도 김웅 부총재보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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