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긴급도입' 대상 치료제 한정적
관세·부가세로 가격 상승 환자 부담↑
국가 면세 정책·공급 안정화 논의 필요

국내 희귀질환 환자들이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해외 직구에 의존하고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치료제인 만큼 임시방편이 아닌 국가 차원의 세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희귀질환 환자들이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해외 직구에 의존하고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치료제인 만큼 임시방편이 아닌 국가 차원의 세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희귀질환 환자들이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해외 직구에 의존하고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치료제인 만큼 임시방편이 아닌 국가 차원의 세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에서 시판되지 않는 희귀질환 치료제 일부는 환자 개인이 직접 해외에서 구매하고 있다. 정부가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일부 치료제를 공급하고 있지만 대상이 제한적이다. 센터를 통한 구매도 관세·부가세 부담으로 가격이 크게 오르는 실정이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국내에서 공급이 중단된 희귀질환 치료제를 수입해 제공하는 기관이다. 환자나 병원이 센터를 통해 약을 신청하면 센터가 해외 제약사나 공급망을 통해 들여오는 방식이다. 지난해 4분기에는 긴급도입 보험 등재 의약품 17개, 비보험(미등재) 의약품 48개 품목이 공급됐다.

다만 센터를 통해서도 구할 수 없는 약이 많다는 점이 국내 희귀질환 치료제 공급 문제 중 하나로 꼽힌다. 정진향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총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희귀질환으로 등록된 질환만 1300개가 넘는데 국내에서 공급이 끊긴 치료제 중 센터를 통해서도 도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환자들이 해외 직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약 7만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페닐케톤뇨증(PKU) 환자 중 비정형 환자들은 특정 치료제를 평생 먹어야 한다.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해 체내 단백질 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질환으로 음식으로 섭취한 단백질이 분해되지 않으면 독소가 쌓여 신경 손상, 지능 저하, 근육 경련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비정형 PKU 환자 보호자인 이혜숙 씨(가명·57)는 “자녀가 필수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치료제 공급이 중단되면서 해외 직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씨의 자녀는 코발라, 5HTP(트립토판), 퍼킨정 등 세 가지 약을 필수적으로 먹어야 하지만 이 중 5HTP는 현재 국내 공급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그는 “30년 동안 꾸준히 복용해 온 5HTP 치료제가 갑자기 수입이 막혀 약을 구할 수 없게 됐다. 일부에서 다이어트 목적으로 복용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식약처에서 수입을 차단했고 의료보험 적용도 중단됐다. 하지만 환자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 치료제”라며 “이 약을 먹지 않으면 경련이 일어난다. 온몸이 경직되고 간질처럼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난다. 하루에도 여러 번 약을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도 식약처 허가가 나지 않아 취급이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씨는 “이제 아마존 등 해외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약을 구해야만 하는데 이런 절차가 익숙하지 않은 보호자·환자들에게는 쉽지 않다”며 “정부가 대체 약도 없이 무작정 공급을 끊어놓고 환자들에게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 것이 화가 난다. 평생 복용해야 하는 필수 약을 의료보험 없이 개인이 직구로 구해야 하는 현실이 가혹하다”라고 말했다.

센터를 통해 치료제를 구할 수 있더라도 관세·부가세가 부과되면서 가격이 크게 뛰는 점도 환자 부담이 가중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진향 총장은 “센터를 통한 수입 의약품에도 관세와 부가세가 붙어 부담이 크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치료제라면 부가세만 1000만원, 여기에 관세까지 더해져 최종 비용이 1억2000만~1억3000만원까지 늘어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수입되는 모든 의약품에는 기본적으로 관세와 부가세가 부과된다. 다만 과거 코로나 치료제나 신종플루 치료제처럼 긴급 도입이 필요한 경우 기재부에서 한시적으로 부가세 면제를 해준 사례가 있었다”라며 “하지만 희귀질환 치료제는 이러한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세금 부담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센터가 제약사에서 직접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도매상을 통해 약을 들여오다 보니 유통 과정에서 가격이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관세·부가세까지 그대로 붙으면서 결국 환자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며 “일부 희귀질환 환자들은 건강보험 급여도 받지 못한 채 비싼 약값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최소한 국가 차원에서 면세 지원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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