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공보 방식‧투표용지 개선 필요
"공직선거법 강행규정으로 바꿔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 2022년 2월 서울시 용산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작된 점자형 투표 보조 용구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난 2022년 2월 서울시 용산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관계자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제작된 점자형 투표 보조 용구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연합뉴스

# "누구를 뽑을지 정할 때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책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공보물은 이해하기 어려워요. 투표용지도 글씨만 가득해 누가 누군지 파악하기 힘드네요."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장애인이 투표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선거철마다 언급되는 장애인 유권자 투표권 사각지대가 4‧10 총선을 앞두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시각, 청각, 발달장애인은 선거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각장애인은 점자로 된 선거 공보물을 제공받을 수 있지만 매수가 제한돼 있어 비장애인과 동등한 정보를 받기에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점자 공보물이 있어도 시각장애인의 점자 문맹률은 90%에 달하는 등 한계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점자 출판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시각장애인 중 점자 사용이 가능한 비율이 9.6%, 불가능한 사람이 90.4%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선거방송에서 수어 통역사 한 명이 여러 후보자를 통역하고 있어 제대로 된 선거 정보를 제공받기 어렵다. 수어와 자막의 동시 제공이 필요함에도 공직선거법에는 수어 또는 자막 중 한 가지만 제공하면 된다고 명시돼 있어 선거 정보 접근에 한계가 있다.

발달장애인은 문자로 된 선거 공보물을 이해하기 어렵고 투표용지 또한 글자로만 채워있어 선거 후보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각 지자체에서 이뤄진 모의 투표에서 발달장애인들은 '얼굴을 안 보니까 생각하기 힘들고 투표용지에서 후보 이름만 보니 파악하기 힘들다', '글로 꽉 채워진 선거 공보물을 이해 못 해 공약이나 정책을 잘 모른다', '종이가 너무 길고 글씨가 꽉 차 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2022년 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에 대한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그림 투표용지 팻말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2년 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에 대한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그림 투표용지 팻말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2년 1월 대선을 앞두고 발달장애인들은 이해하기 쉬운 정당의 로고나 후보자 사진이 포함된 그림 투표용지 등 알기 쉬운 투표용지 제공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공직선거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본지가 국회의안정보시스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법률안' 통계를 분석한 결과 21대 국회에선 시‧청각 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선거 공보‧투표 용지 개선의 내용이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총 3건 발의됐지만 모두 계류 상태다. 법률상 시각, 발달장애인을 위한 음성으로 된 디지털 파일 공보물을 제공하도록 되어있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실천하는 후보는 소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한진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지체장애인은 투표소에 접근하기 어려운 등 물리적 접근성에 한계가 있다. 시각장애인, 지적장애인은 투표용지가 안 보이고 선거 공약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정보 접근성에 한계가 있다"며 "아직 장애인의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공직선거법에 관련 내용이 있지만 전부 임의 조항이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장애인 편의 제공 조항을 모두 강행규정으로 바꿔야 한다. 임의 조항으로 되어있으면 있으나 마나 한 것"이라며 "선거철이 아니라 평소에 개선 사항을 통과시켰어야 하는데 항상 선거철만 되면 반짝 이슈됐다가 마는 것도 문제다. 선거가 다가오는 시점에서야 문제를 의식하면 처리는 또 밀린다. 몇 년째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다"라고 제언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 노인이나 장애인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독립적인 투표법이 따로 있다. 한국은 독립된 법 제정은커녕 관련 규정마저 임의 규정으로 되어있으니 실천이 안 되는 것"이라며 "장애인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공직선거법 조항부터 강제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옥 발달장애인 성교육상담센터 되어감 박사는 "발달장애인들의 투표권 행사를 위해선 투표용지에 그림과 글이 함께 있어야 한다. 후보 이름 옆에 인물 사진을 같이 넣는 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비장애인은 보통 후보자 공약을 보고 투표하지만 발달장애인은 공약 이해부터 어렵다. 따라서 부모나 지도자 등 주변인의 도움이 필수다. 발달장애인은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다. 아직 자기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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