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의 시니어 입장가] (8)
호화 관혼상제에 실직 악재 겹쳐 노후자금 휘청
시어머니 생전 장례식 계기로 숨통이 트이는데···

<노후자금이 없어! (I Don't Have Any Money Left in My Retirement Account)>
일본 영화다. 노후자금은 노인 빈곤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도 노인들에게 가장 염려되는 항목이다. 중산층이라고 해 봐야 겨우 버티고 사는데 관혼상제 등 큰일이 닥치면 노후자금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슈퍼 주부 고토 아츠코는 알뜰살뜰 노후자금을 모으고 있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다. 그런데 집안 살림은 나 몰라라 하며 속 터지게 하는 남편은 사람만 좋다. 이런 집은 많다. 겉보기로는 무난한 집안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듯이. 이렇다 할 직장 없이 알바로만 전전긍긍하는 딸, 아직 대학 등록금 현재진행 중인 아들, 아츠코는 4인 가족의 가계부를 책임지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다.
그 와중에 시아버지가 죽고 장남이라고 상주가 되면서 장례식 비용부터 목돈이 들어가면서 어깨가 휜다. 검소하게 하면 좋으련만 시어머니도 남들 보는 시선이 있으니 제대로 하라고 한다. 그래서 남들 체면 때문에 돈을 크게 들여서 했는데 정작 문상객이 너무 조금 와서 큰 적자를 봤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츠코는 잘 다니던 가전제품 판매 계약직에서 해고되고, 딸의 시댁 입김에 반대도 못 하고 휩쓸려 감당 못 할 호화 결혼식을 치르지 않나, 남편 회사의 부도로 퇴직금도 못 받는 등 금전적 악재마저 줄줄이 닥친다.
게다가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씀씀이 큰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올려보내야 하는 역대급 위기까지 발생한다. 용돈을 보내는 대신 시어머니를 직접 집으로 모셔 오기로 하고 그간 보내던 생활비를 절약하며 경제난을 하나씩 풀어가는 중이다. 남편도 공사장 신호수로 나가 일하면서 몇 푼이나마 벌어온다.
문제의 시어머니는 보이스 피싱에 당하여 목돈을 날리더니 이젠 생전 장례식까지 해달라고 한다. 아츠코는 더 이상 그 비용을 못 대겠다며 처음으로 시어머니에게 반발한다. 장례식에도 안 간다고 한다.

아츠코는 편의점 알바 자리를 겨우 구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처음엔 상당히 미숙했지만, 차차 익숙해진다. 귀가해서 보니 시어머니가 목걸이를 두고 간 것을 보고 기겁하여 장례식장으로 간다. 목걸이가 시어머니가 매일 복용하는 약을 담은 약통이었다.
아츠코가 몰래 가보니 시어머니는 손님들이 많이 모인 생전 장례식에서 며느리 칭찬을 한다. 남편 잃고 우울증에 좀 사치하며 살았는데 며느리가 불러 줘서 구원받았다고 했다. 행사도 큰돈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손님들에게 부조를 넉넉히 가져오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검소하게 치르면서 생긴 100만 엔을 아츠코에게 주면서 너 자신을 위해 쓰라고 한다.
아츠코는 매번 쇼윈도를 지나치면서 사고 싶던 95만 엔짜리 명품 가방을 드디어 사서 메고 휘파람을 불며 두 팔을 높이 들고 거리를 누빈다. 갑자기 시어머니는 시누이가 모시겠다며 모시고 간다. 남편도 개업해서 잘나가는 동료가 취업 제의를 해 와서 제대로 된 연봉을 받게 된다.
아츠코 부부는 셰어 하우스로 이사 가면서 비로소 흑자 노후 인생을 누린다. 집을 팔고 가니 가계가 흑자가 된 것이다.
우리도 셰어 하우스가 가끔 뉴스에 소개되지만, 일본처럼 여러 세대가 어울려 아기자기하게 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민폐를 가장 조심하는데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은 개성이 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남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노후 자금 걱정을 하며 산다.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은 수준이란다. 노후 자금이 넉넉지 않으니 노인 취업률도 높다. 그래서 이 영화가 와 닿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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