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사랑]
과도한 간섭과 통제는 사랑 아닌 폭력
안전한 연애 학습은 국영수 만큼 중요

며칠 전 동네 미장원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데 옆에 계신 분과 미용사의 대화는 뉴스의 내용만큼 충격이었다. 미용사는 ‘뉴스에서 수능 만점 의대생이 마트에서 흉기를 구입해 여자 친구를 살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고 말했고, 살해 이유가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말해서였다’라고 “쯧쯧” 하면서 말했다.

앞에 앉아 계신 손님이 “아~~ 수능 만점의 남자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고 비위를 좀 맞춰 주지 왜 ‘틱틱거려서’ 의사 마누라 되는 자기 복을 걷어차는지 몰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화난 마음을 쓸어내리며 숨진 피해자를 생각했다.

연인 관계에서 살해됐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연인 관계에서 살해됐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연인 관계에서 살해됐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지난 4월에는 20대 여성이 남자 친구에게 폭행당해 입원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는데, 이들 간에 데이트 폭력 신고가 무려 열한 차례 있었다는 사실 또한 놀랍다. 열한 번 신고했지만 폭력의 늪에서 손을 잡아준 것은 가해자였다. 이렇듯 제대로 신고와 보호조차 이뤄지지 않는 교제 폭력의 지속적 발생을 줄이기 위해선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데이트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는 통념이 있다. 그중 첫째는 ‘피해자가 당할 만한 짓을 했을 것이다’이다. 이 말은 아이 또는 부인에게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아야지’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집안의 가장은 아내와 자식을 매로 다스려 올바른 가정으로 이끌 수 있다는 강력한 힘을 부과했다. 또 이 통념은 가해자가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린다. 유행가 가사의 ‘너는 내 여자니까~~’가 떠오른다. 그래서 피해자는 ‘내가 잘하면 저 사람이 변할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하고, 그것은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가 된다.

또 하나의 통념은 ‘저 사람은 때리지만 않으면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해자는 자신의 폭력을 포장하려고 한다. 다정한 말과 선물로 그것을 무마하려고 한다. 그러나 폭력은 얼마나 자주 폭력을 휘둘렀느냐, 혹은 얼마나 가벼운 폭력이었느냐를 떠나서 그냥 폭력일 뿐이다.

연인 간의 폭력 문제에서 또 다른 잘못된 생각은 폭력을 사소하게 본다는 것이다.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사건 신고를 했을 때 ‘경찰에 신고했지만 잘 받아주지 않았다’ 혹은 ‘전과가 없으니 그냥 무혐의 처리됐다’ ‘좋은 게 좋은 거니 합의해라’ ‘사과하고 끝내라’⋯같이 가볍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교제 폭력을 사소한 문제로 보는 시선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일상화된 폭력을 적극적으로 대항해 봐야 아무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친밀한 관계에서의 교제 폭력은 가해자·피해자를 분리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별 통보를 했을 때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 적극적인 대항이 힘들고, 고통 속에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처벌하더라도 보복에 대한 불안감으로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해서 구속 수사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1~2% 남짓이라 하니 법으로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듯싶다. 실제 2022년 7월 데이트 폭력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발의됐으나 통과되지 않은 실정이다. 그 강력한 처벌과 함께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우리는 태어나 학교에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연인을 만나 데이트한 후 헤어지고, 또 결혼하기도 하면서 생을 이어 간다. 누군가를 만나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무척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연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연인 관계가 된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고 또 말하고 싶고, 만지고 싶어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안전하게 이뤄져야 한다. 국·영·수 점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하게 서로를 지키면서 관계를 이어가는 기술, 신뢰가 바탕이 되는 관계를 맺고 때로는 안전하게 헤어지는 기술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 과도한 간섭이나 통제가 사랑이 아니고 폭력이라는 것을 교육을 통해 알 수 있어야 하고, 평등한 관계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싫다고 할 때는 그것 또한 수용해야 함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영어 단어보다 훨씬 중요한 학습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