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이상기온으로 유명 겨울 축제 취소
겨울은 움츠러드는 시기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이 풍부해지는 시기
겨울을 겨울답게 즐겨보자
겨울은 춥다. 그래 추워서 겨울이다. 겨울에 춥지 않으면 겨울답지 않다. 그래도 영하로 내려가면 추운 게 참 싫다. 1987년 1월의 겨울은 춥지 않고 따스했었다. 살아 계셨으면 백세를 훌쩍 넘기셨을 외할머니가 당시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올겨울 춥지 않아서 좋구나.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말이다.”
여기서 고생하는 사람들이란 당시에 명동 성당에서 민주화를 위해 농성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후로 세월이 한참 흘렀다. 세상도 많이 변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추운 겨울철, 축제를 찾아 떠날 여유를 가지고 있다. 겨울 축제는 엄두도 못 내었던 그때 따뜻하였던 그 겨울 이후로 이 정도의 여유를 스스로 찾아냈다.
그런데 겨울 축제가 이상하다. 올해 인제 빙어축제와 안동 암산 얼음 축제가 취소되고 평창 송어축제는 개최일이 연기되었고 홍천 꽁꽁 축제는 첫날 야외 행사를 못 열었다. 12월에 내린 많은 비와 따뜻한 날씨에 결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다. 지난 12월 11일 강원도에는 홍수특보와 대설특보가 동시에 내려진 바 있다.
8년 전 2016년에도 이상 고온으로 화천을 비롯한 평창, 인제 등의 지역 축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1월 둘째 주쯤에 다행히도 추워져서 겨울 축제를 열었었다. 인제 빙어축제는 결국 취소했었다.
겨울에 당연히 추워야 하는데 추워지지 않으니 걱정이다. 기후와 온도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해당하지만 겨울에 얼음이 얼 정도로 비 대신 눈이 올 만큼 추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다 보니 화천의 산천어축제, 평창 송어축제와 눈축제, 인제 빙어축제와 같은 대표적인 겨울 축제가 위험해지고 있다.
겨울 축제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열리고 있는데 위에 언급한 화천, 평창, 인제 등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공통점은 물고기와 얼음이다. 얼음과 눈은 겨울의 상징이고 물고기가 들어간 것은 얼음낚시를 응용한 것이다. 다만 물고기의 종이 다를 뿐이다. 그럼 겨울에는 얼어붙은 강에서 구멍 뚫고 낚시를 해야 겨울을 제대로 보낸 것인가 의문이 든다. 곳곳에 비슷한 형태의 축제가 이루어지다 보니 겨울에 강이 얼어붙지 않으면 축제가 진행되지 않는다.
겨울 하면 연상되는 키워드는 주로 눈, 눈사람, 눈싸움, 얼음, 고드름, 추위, 불, 모닥불, 따뜻함, 크리스마스, 군고구마. 대체로 이런 것이리라. 역시 추운 날씨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겨울 축제는 겨울의 특성에 맞추어서 기획될 것이니 겨울에 춥지 않을 경우에는 모든 겨울 축제와 행사는 올스톱이 되고 재앙으로 바뀌어 버린다. 올해만 겨울 축제를 할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체험 마을과 농가 입장에서는 비수기인 이맘때 지역의 겨울 축제에 상당히 의존하기 때문이다. 겨울 축제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예전 겨울은 매우 추웠다. 머리맡에 놔둔 물그릇을 아침에 보면 꽝꽝 얼어 있었다. 그럼에도 잠을 잘 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두꺼운 이불과 뜨뜻한 구들의 힘이었을 것이다. 겨울의 아랫목은 힘이 셌다. 얼마나 뜨거운지 아랫목의 장판은 달궈져서 꺼멓게 색이 변해 있었다. 반면 윗목은 차가웠다. 겨울철 안방에서는 아랫목과 윗목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서열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는 아랫목과 윗목을 오가며 뒹굴었다.
추운 겨울 아침을 이겨내는 힘은 밥이었다. 뜨끈한 국물에 밥을 먹으면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겨울 음식은 설날의 떡국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김장 김치와 동치미가 밥상 위에 오르고 군고구마와 찹쌀떡이 간식이 되었다. 찹쌀떡과 메밀묵은 저녁 9시 정도가 되면 누군가 목청 돋우며 먹으라고 외치고 다녔다. 이걸 기억하면 아재다. 원래 냉면과 소주는 겨울 음식이었다. 우리는 추운 만큼 찬 음식을 먹으며 겨울을 보냈다.
차라리 겨울은 봄보다는 먹을 것이 많았다. 바로 앞에 가을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겨울은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오는 계절이다. 설날의 설은 낯설다의 ‘설’이다. 1월 1일은 그저 하루가 바뀐 것에 불과해도 12월 31일은 작년에 해당하여 싹 잊힌다. 일부러 잊는다. 그래야 새로운 1년을 힘차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해에 다짐을 한다. 그러나 날짜가 달라졌다고 사람이 바뀌는가. 새해 다짐은 며칠 못 간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 한다. 그래도 좋다. 3일이라도 나는 변했으니까 말이다.
눈이 오면 아이들은 눈을 맞으며 눈싸움을 벌인다. 몇몇 생산적인 아이들은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든다. 자기 덩치만 한 눈사람을 만들어 길목 어귀에 놓고 눈과 코, 입을 만들어 놓으면 그럴듯하다. 그런데 지금 눈사람들이 다 사라졌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사람을 만드는 풍경이 아닌 제설작업이 TV뉴스에 오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눈을 보며 하늘에서 하얀 쓰레기가 내린다고 푸념한다. 누가? 군인들이다.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탔다. 스케이트장은 논두렁과 개천에 만들어졌다. 스케이트는 고급이고 얼음 썰매가 대중적이었다. 팽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제기차기는 겨울에 했다. 이상하게도 추운 겨울에 야외에서 놀이를 즐겼다. 제기를 여름에 차 본 적이 있는가. 못한다. 더워 죽는다. 추우니까 바깥에서 놀았고 놀이를 통해 추위를 견뎠다. 그렇게 아이들의 면역력과 체력이 단련됐다. 연날리기도 마찬가지다. 추운 날 연을 하늘로 날린다. 이것 또한 여름에 해 보시라. 눈부셔서 죽는다.
어른들은 윷놀이를 척사대회라 부르며 정월 대보름에 벌였다. 씨름대회는 겨울에 장충체육관에서 열렸고 또 마당놀이가 공연되었다. 마당놀이를 기억하는가. 원로배우 윤문식은 설날 즈음에 더 유명해지는 시즌제 연예인이었다.

겨울은 움츠러드는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들의 행동이 풍부해지는 시기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일하느라 농사짓느라 아무것도 못 하다가 비로소 숨 한번 돌리고 이것저것 해보고 먹어 보는 계절이다. 겨울에는 항상 찹쌀떡과 메밀묵, 군고구마를 먹어야 하고 떡국과 만두를 먹어야 하고 새해 인사를 하러 다니는 시즌이다.
인간의 행동이 풍부해지는 겨울을 우리는 그냥 보내지 말아야 한다. 겨울은 의식(Ceremony)의 계절이다. 겨울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의식과 세시를 챙겨보자. 겨울에 좀 따뜻해져 축제가 취소되었다고 실망 말고 스키장에 눈이 없다고 당황하지 말자. 그것 말고도 우리는 할 것이 참 많다. 농한기를 즐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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