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서울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3조 규모 대출 못 갚아 결국 워크아웃 行
공사비 급등에 미착공·미분양 유동성 부족
전체 PF 대출 134조 대형 건설사도 흔들
‘PF 부실=위기 뇌관’ 1997년 악몽 상기

시공 능력 평가 16위 대형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건물을 지을 때 금융기관에 빌렸던 3조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갚지 못하면서다. 정부 규제에 따른 척박한 부동산 영업 환경,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미착공, 미분양 건이 전국적으로 증가하면서 공사비를 회수하지 못했고 이는 태영건설뿐 아니라 전체 건설업계 유동성이 메말라지고 있다.
PF 부실은 건설업뿐 아니라 자금을 빌려준 금융기관에도 위기가 전가되기 때문에 ‘PF 부실=경제 위기 뇌관’이라고 일컬어진다. 태영건설 워크아웃은 1997년 금융 위기 방아쇠를 당긴 한보건설 사태와도 비교된다. 미국 대공황과 일본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점인 부채 디플레이션 우려도 나온다.
“워크아웃으로 옥석을 잘 가려야 한다. 살릴 수 있는 프로젝트는 투자하고 부실 프로젝트는 과감히 처분해야 한다. 문제는 될성부른 프로젝트를 잘 골라 투자한다고 치더라도 워낙 부동산 경기가 위축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팔리지가 않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 변화가 없다면 워크아웃 이후에도 부도날 수 있다.”
28일 오정근 서울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부도 가능성을 열며 이같이 설명했다. 부동산 경기가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로운 상황에서 태영건설의 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경기 회복에는 이를 뒷받침할 규제 혁파가 필요조건이다.
“분양가 상한제, 초과 이익 환수제, 임대차 3법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꽁꽁 얼었고 특히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상승하는 공사비용과 임금에도 분양가가 묶여 있다 보니 수지가 맞지 않아 PF 대출을 하더라도 시공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심지어 분양도 안 됐다. 결국 건설업계 전반에 PF 대출 부실이 생겼다.”
태영건설은 3조2040억원의 PF대출을 짊어졌다. 대형 건설사도 조 단위 PF 채무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태영건설 다음으로 △현대건설 2조2630억원 △GS건설 1조7260억원 △대우건설 1조1110억원 순으로 많다.
전체 부동산 PF 시장도 그 규모가 최근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됐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말 기준 PF대출 규모는 134조3000억원으로 3년 전(2020년 말, 92조5000억원)에 비해 42조원(45%)이나 급증했다. 이에 자금을 빌려준 금융권의 타격도 불 보듯 뻔하다.
업권별로 놓고 보면 △은행이 44조2000억원 △보험사 43조3000억원 △여전사 26조원 △저축은행 9조8000억원 △증권사 6조3000억원 △상호금융사 4조7000억원 순이다. 연체율은 △증권사가 13.85%로 가장 높고 △저축은행 5.56% △여전사 4.44% △상호금융 4.18% △보험사 1.11% △은행 0.23% 순이다.
“전체 (PF 대출이) 130조가 넘는데 이 중 부실 우려 채권이 20조 정도 되는 것으로 안다. 지난 1년간 부동산 경기가 너무 안 좋았는데, 이는 굉장히 위험한 신호다. 그동안 정부가 집값이 너무 오를까 봐 제대로 된 정책을 쓰지 못했다. 서민이 타격을 입을 거라는 문재인 정부 정권 스탠스와 똑같았다. 집값은 원가 상승률에 물가 상승 수준으로 올려줘야 분양이 되고 그래야 대출을 갚을 수 있게 된다.”
美 대공황 빠뜨린 ‘부채 디플레이션’ 우려
정부·은행 물러서고 부동산 TF 해결해야
오 위원장은 ‘부채 디플레이션’ 확산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이는 건설사가 대출을 얻어 시공을 했지만 집값이 떨어질 때 은행 등 금융권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말한다. 꾼 돈만큼 재화 가치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떨어지면서 손해를 보는 것이다. 부채 디플레이션은 장기 불황의 전제조건으로 미국 대공황과 일본 30년 불황의 시작이기도 했다.

오 위원장은 시급한 시기에 정책당국이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6일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6일 이른바 ‘F4(Finance 4) 회의’를 열고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가능성을 논의한 바 있다.
“기재부와 한은 총재가 모여서 ‘태영건설 외 문제없다’라고 말할 때가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일단 뒤로 물러나고 부동산 전문가와 금융 워크아웃 전문가가 10명 내외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국 사업장에 삽도 못 뜬 현장이 많다. 전수 조사해 옥석 가리기가 시급하다.”
이미 중소형 건설사의 부도는 시작됐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폐업한 종합 건설사는 지난 4일 기준 전국 총 512곳에 달한다. 1997년 금융위기 시작이었던 한보건설 부도마저 거론된다.
재계 14위였던 한보그룹은 당시 5조 규모 빚을 지고 부도나면서 금융권 자금 경색을 초래했다. 이후 부채가 많았던 대기업, 이를테면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쌍방울, 뉴코아 등이 줄도산하며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은 국가부도를 인정하는 처지가 됐다.

“26년 전 사태까지 간다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위기 조짐은 내재돼 있다. 이때 정부와 은행 등 비전문가 말고 전문가 TF를 꾸려 수백 개 현장 실사를 나가야 한다. 그것을 토대로 옥석을 가리고 자금 공급을 해야 한다. 이후 부동산 경기가 살 수 있는 정책 변화가 있어야 한다. 만약 이 두 개가 안 되면 부도가 날 것이고 이는 연쇄 부도로 이어질 것이며, 이들에 PF 대출을 한 금융기관의 연쇄 금융위기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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