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연속 동결 3.5% 금리 열세 달째
물가·가계 빚 vs PF發 침체 우려
복합위기에 美 피벗도 ‘오락가락’

한국 기준 금리가 열세 달째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2월 금리 동결 단행 이후 가계 대출 규모가 상승하고 고물가 우려는 여전한 반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로 인한 금융 불안정으로 당국이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정책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나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는 점도 한은이 금리 정책 변화에 주저하는 요인이다.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종전 기준금리 연 3.5%를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2월과 4월, 5월, 7월, 8월, 10월, 11월에 이어 이달까지 여덟 번째 금리 동결이다.
최근 태영건설 부동산 PF 부실과 경기 침체 우려,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물가,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번 금리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모두 발언에서 “주택 매매가격은 매수 심리가 약화하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모두 하락 전환했으며, 부동산 PF 관련 리스크는 증대됐다”라고 밝혔다.
태영건설은 9조원대 부동산 PF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지난달 28일 워크아웃 신청을 했고 이날 워크아웃 여부가 결정된다. PF 부실 원인은 부동산 시장 침체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고금리 장기화도 부실에 일조한다. 조달 금리가 증가하면서 건설사의 유동성이 메마른 것이다. 돈이 시중에 돌지 못하게 해서 물가를 낮추려다가 기업이 도산 상태에 빠지게 됐다.
부동산 PF 부실 위기는 태영건설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중소 건설사는 문을 닫고 있다. 지난달 4일 기준 전국 총 512곳의 종합 건설사가 폐업했다. 중견 건설사는 물론 대형 건설사도 자유롭지 못하다. [관련 기사 : [포커스] 부채 늪 빠진 태영건설 IMF 도화선 된 한보 사태 재현 불안]

그렇다고 물가가 목표치에 도달한 것도 아니다. 1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2%를 기록하며 아직 2% 물가 목표와 격차를 보인다. 물가는 지난해 7월 2.4%까지 내렸지만 8월 유가 상승 요인으로 3.4%까지 큰 폭으로 올라선 이후 3%대 물가를 지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은은 “국내 물가는 둔화 흐름을 지속하겠지만 누적된 비용 압력의 파급 영향 등으로 둔화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당분간 3% 내외에서 등락하다가 점차 낮아질 것으로 보이며, 연간 상승률은 지난 11월 전망치(2.6%)에 대체로 부합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향후 물가 경로는 국제유가 및 농산물가격 움직임, 국내외 경기 흐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가계대출 증가도 당국이 정책 딜레마에 빠진 주요 요인이다. 지난 10일 한은이 발표한 '2023년 12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전보다 3조1000억원 증가한 1095조원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 증가 폭은 지난해 4월(2조3000억원) 이후 9개월 연속 증가세다. 다만 전월인 11월 증가 폭(5조4000억원)과 비교해 축소했다.

미국의 금리정책 경로의 불확실성도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요인 중 하나다. 12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 기간 처음으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이후 연준 관계자들의 매파적 발언에 피벗 기대는 잠잠해진 상황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금리를 인하하기에는 국제금융 역학상 부담스럽다. 환율 요동과 자금 유출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취약 업종 금리 충격 9조 지원 완비
‘금리 인하는 시기상조’ 못 박은 李
이 때문에 당분간 금융당국은 금리 인하 카드를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 총재는 “섣불리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면서 물가 상승률이 다시 높아질 수 있고 또한 현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가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보다 부동산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면서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함으로써 물가 안정을 이루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한은은 취약 업종과 지방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9조원 규모 금융중개 지원 대출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오는 2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6개월간 사전 설정 요건에 부합하는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취급 실적에 대해 한시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전체 한도의 80%(7조2000억원)를 한은 15개 지역본부에 배정하고 관할지역별 중소기업 자금 사정에 맞게 운용할 방침이다.
한은이 금리 인하보다는 고금리 장기화에 대한 부작용을 완충할 제도를 마련한 상황에서 3.5% 고금리는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 총재는 ‘금리 인하를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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