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점심시간을 다른 식으로 사용해 보니
하루의 중간 시간 재충전이 되다

월요일이다. 출근 후 자리에 앉아 부서 공유 구글 캘린더를 열어 본다. 부서원들의 주요 일정도 확인하고, 미처 다이어리에 옮겨 놓지 못한 내 일정도 체크한다. 일주일 치 회의와 면담, 외근 등 굵직한 스케줄을 정리하고 나면 그다음은 점심시간이다.
혹시 외부 인사들과 점심 약속을 잡아 놓은 게 있는지, 회사 직원들과 함께하기로 한 점심 모임이 있는지 살핀 후 비어 있는 점심 날짜가 며칠 남았는지 머릿속에 담아 둔다. 약속된 식사는 3일 정도가 좋다. 날씨와 몸의 컨디션에 따라 뭘 할지는 달라지지만, 나머지 2일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 남겨 두려 하기 때문이다.
9시에 출근해 오전 근무 후 맞이하는 한 시간의 여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오후 근무의 컨디션 즉 집중력이 달라진다. 하루의 중간쯤 되는 시간이기도 해 그 시간이 주는 만족감이 그날의 효능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점심시간은 1시간이다. 오피스타운에 근무하고 있는 터라 12시가 되면 식당들 앞에는 자리 나기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이 줄을 서 있다. 식당 안을 힐끔 들여다보며 서성이다 홀 매니저가 들어오라는 사인을 주면 서둘러 자리에 앉아 일사불란하게 메뉴를 고른다. 테이블에 음식이 놓이기가 무섭게 숟가락을 들기 시작해 식사를 마치면 사무실에서 나온 지 40분 조금 넘은 시간이 된다.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주문하면 어느덧 사무실로 돌아갈 때다. 물론 식사를 하며 함께 나온 동료와 이야기도 나누고, 사무실에서 식당으로 다시 카페로 향하며 조금 걷기도 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회사 동료들과 잠시나마 사적인 분위기로 일상의 관심사를 나누거나, 때로는 사무실 안에서 말할 수 없는 업무 관련 아쉬움을 공유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시간을 통해 동료를 이해하고 조직의 상황을 파악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은 점심시간을 평소 인사만 나누던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시간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런 시간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한때는 그러니까 회사 내 생활과 관계가 그 어떤 것보다 우선됐던 때에는 매일 점심시간을 누군가를 만나는 시간으로 사용했다. 동료, 선후배, 클라이언트 등 업무와 관계된 이들을 만나 현황을 공유하거나 후일을 도모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나를 챙기는 시간을 갖는 것이 원활한 업무를 위한 관계 챙기기만큼 중요하다. 일을 대하는 태도와 일상의 우선순위가 달라져서일 것이다. 그래서 3:2 기준으로 점심시간을 쓰려고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온전히 나를 위한 1시간을 마련하는 것으로 말이다.
식사는 집에서 샌드위치나 과일 등 간단한 음식을 싸와 시장할 때 언제든 먹는 식으로 해결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가벼운 운동화로 갈아 신고 밖으로 나선다. 근처 대형 서점에 가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해 놓은 신간 서적을 뒤적이다 오기도 하고, 청계천을 따라 조금 멀리 있는 전통시장까지 걸어가 보기도 한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아지트 같은 공간도 찾을 수 있었다. 점심시간 한 시간 콕 박혀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 말이다. 너무 북적이지 않은 조금은 외진 곳, 혼자 앉을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있으며,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회사 근처 장소다.
거기에 앉아 30~40분 책을 읽다 보면 머릿속이 맑아지는 걸 느낀다. 그래픽 노블, 에세이, 여행기, 소설 등 업무와 관계없는 주제의 책을 집에서 골라 온다. 이렇게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을 갖고 나면 마음과 그리고 몸이 든든해지는 걸 느낀다.
점심시간을 ‘두 번째 아침’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길지 않지만 어떤 것에 집중하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진심이 담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도 있고(식사는 간단히 소통은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성적 판단의 좌뇌를 잠시 끄고 창의적이며 직관적인 판단을 하는 우뇌를 활성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천천히 주위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스트레스를 낮추고 건강을 챙길 수 있다(숨을 고르고 명상을 하거나, 차를 마시는 것도 함께 해 본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매일의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직장인의 점심시간을 연구한 관련 논문(김수미, 최창식, 황성욱 「직장인의 점심 식사 결정 요인들의 상대적 중요도」 한국소통학보, vol.21, no.3, 한국소통학회, 2022, pp33-69)에 의하면 직장인들은 ‘어디서 무엇을 먹는가’보다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업무와 직장에 관한 대화보다 세상사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고 한다.
특히나 MZ세대는 이런 격의 없는 식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X세대인 나는 연구 결과처럼 상사, 협력업체 등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일과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벗어난 점심시간을 누릴 때 일과 이후의 피로도가 낮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니 점심시간을 ‘업무의 연장선’에서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1시간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보길 권한다.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게 될 테니,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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