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원의 성과 인권]
혐오 표현은 편견 확산하고 차별 강화
인간 존엄 침해하는 심각한 인권 문제

1923년 9월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 주변에 규모 7.9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불과 13초간의 지진으로 관동지방은 초토화됐어요. 지진이 멈추자 거리 곳곳에 화재가 발생했고, 두 시간 만에 도시 전체는 화마에 휩싸였습니다. 가족과 재산을 잃고 먹을 물도, 식량도 없는 상태에서 유언비어가 퍼져나갔지요. 조선총독부의 관제 언론이었던 매일신문은 1923년 9월 10일 자에 ‘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한다’는 기사를 전면에 실었습니다.

이 내용은 혼란한 민심을 틈타 점점 퍼져나가게 됩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들이 독이 든 만두를 나눠주고 있다.” “조선인들이 일본에 지진 일어나게 해달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자연재해로 인해 분노가 극에 달한 시민들에게 이 허무맹랑한 소문은 진실인 것처럼 일파만파 퍼져나갑니다. 지진과 화재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된 조선인들을 향한 무자비한 살육이 나흘 동안 벌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독립신문 특파원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희생된 조선인이 6661명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이야기죠. 이 비과학적이고 허무맹랑한 괴소문의 실체는 있는 사실이었을까요? 왜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고 사람을 죽일까요? 그것을 만들어 퍼뜨리는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혐오는 사회적 편견에 의해 또는 정치적·경제적 동원의 필요성에 의해 포퓰리즘적 성향을 띠면서 나타난다. /게티이미지뱅크 
혐오는 사회적 편견에 의해 또는 정치적·경제적 동원의 필요성에 의해 포퓰리즘적 성향을 띠면서 나타난다. /게티이미지뱅크 

이것은 전형적인 혐오 범죄입니다. 혐오는 사회적 편견에 의해 또는 정치적·경제적 동원의 필요성에 의해 포퓰리즘적 성향을 띠면서 나타납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이런 유사한 사건들이 수없이 존재합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마녀사냥식’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 등 어떤 특정 집단을 짓밟을 수 있는 등급으로 비하하고 인권의 가치를 부정하게 합니다.

혐오 표현은 인종, 나이, 성, 장애, 종교, 출신 지역 등 사람들이 가진 특징을 이유로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비하, 모욕, 위협을 가하는 행위이자 이들에 대한 편견을 확산시키며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모든 형태의 표현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선 특정 집단에 대해 ‘~충(蟲)’을 붙이기도 하고, 근거 없는 부당한 꼬리표를 붙여 그 집단을 폄하하고 차별하는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또 온라인 세계는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총성 없는 싸움터가 돼버렸습니다.

최근 읽은 동화책『감기 걸린 물고기』(박정섭 글·2016)는 잘못된 소문에 집단 전체가 휘말리면서 피해를 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바닷속의 풀숲에 배고픈 아귀 한 마리가 숨어 있습니다. 작은 물고기가 다가오자 아귀는 본 모습을 드러내고 물고기를 쫓습니다. 작은 물고기들은 떼를 지어 얼른 도망칩니다. 아귀는 배가 고픈데 작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녀서 함부로 잡아먹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물고기들을 잡아먹을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면서 어슬렁어슬렁 주변을 돌면서 말이죠.

아귀는 어떤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아먹을 계획을 세울까요? ‘겁을 줘요’ ‘숨어 있다가 잡아요’ ‘한 마리씩 꼬셔서 약을 올리게 한 후 아귀를 쫓아오게 해서 위험한 공간에 가둬요’ 등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귀가 사용한 방법은 그것보다 아주 간편했습니다. 바로 ‘나쁜 소문’을 내는 것이었어요. 물풀 사이에 숨어 있던 아귀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소문을 말하고 다닙니다.

“빨간 물고기가 감기에 걸렸어. 감기에 걸려 열이 펄펄 나서 빨간 거야”라고 말이죠. 이 말을 다른 물고기들은 믿을까요? 처음에는 “감기가 뭐야?” “말도 안 돼!” “물고기가 어떻게 감기에 걸려?”라고 반응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자 “어쩐지 빨간 게 기분이 안 좋더라고.” “우리한테 옮길지도 몰라. 이제 같은 색끼리 뭉쳐 다니자!” 그러다가 급기야 “당장 빨간 물고기를 내쫓지 않고 뭐하는 거야!”라고 소리칩니다. “당장 나가!”

빨간 물고기들은 “아니야! 우리 감기 안 걸렸어. 원래부터 빨간색이었어”라고 항변해 보지만 이미 빨간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에게는 같이 어울려선 안 되는 물고기가 돼버린 겁니다. 그래서 빨간 물고기는 물고기 집단에서 내쳐지고, 아귀는 그 순간을 기다리다가 작은 물고기를 날름 잡아먹지요.

다음 차례는 노란 물고기입니다. “얘들아, 노란 물고기도 감기에 걸려서 노란 콧물이 나온대.” 아귀는 또다시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다음엔 “파란 물고기가 감기에 걸려 으슬으슬 춥고 파랗게 질린 얼굴이 됐대.” 소문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네요. 다른 색깔의 물고기들은 줄줄이 쫓겨납니다. “아니야! 아니냐! 난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 쫓겨나는 물고기들이 힘껏 소리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어요.

그때 한 물고기가 소리칩니다. “얘들아. 이상하지 않아? 소문은 누가 내는 걸까?” “감기에 진짜 걸린 걸까?” 그런 말을 하는 물고기에게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혹시 네가 감기에 걸린 것 아냐?” “시끄러!” “나만 아니면 돼.” 이제는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은 동화 속에서 집단에서 내쳐지는 빨간 물고기, 노란 물고기, 파란 물고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이 동화의 내용은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에 대한 악의적 소문을 퍼뜨리는 내용과 흡사하다고 생각됩니다. 또 코로나19 발생 당시 ‘우한 폐렴’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그 당시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함께 아시아인이 겪은 차별이 떠오릅니다. 아시아인은 감염병을 퍼뜨리는 더러운, 역겨운 차별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죠. 사회적 재난과 같은 위기 상황에는 늘 사회적 약자(장애인, 유색인종, 여성, 어린이, 성소수자 등)들에 대한 혐오가 기승을 부립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차별 없고 편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는 여기서 아주 자유로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한국 여자를 싫어해! 왜? 이기적이어서.

나는 동성애자를 싫어해! 왜? 에이즈를 옮긴대서.

나는 무슬림을 싫어해! 왜? 테러를 일으키고 다녀서.

나는 난민을 싫어해! 왜? 우리의 세금을 낭비하고 일자리를 빼앗고 다녀서.

나는 정신질환자를 싫어해! 왜? 범죄를 저지르고 다녀서.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 혹은 집단은 학교, 직장에서 위협을 받고 공포를 느끼며 위축된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 혹은 집단은 학교, 직장에서 위협을 받고 공포를 느끼며 위축된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사회는 수많은 잘못된 편견에 근거한 혐오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혐오는 왜곡된 정보와 소문을 타고 어떤 대상을 공격합니다. 특히 현대사회는 SNS를 통해 순식간에 왜곡되고 근거 없는 정보나 소문이 퍼지게 되는 조건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집단에 대한 따돌림은 처음 아귀의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작은 목소리부터 시작됐습니다. 이 혐오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미세하게 존재할 것입니다.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 혹은 집단은 학교, 직장에서 위협을 받고 공포를 느끼며 위축된 일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나아가 다양성을 훼손하고 차별을 강화하며 나아가 앞의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증오 범죄가 나타나고 집단학살에 이르게도 합니다. 인간 존엄을 침해하는 아주 심각한 인권 문제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누구에게 혐오의 화살을 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 우리 공간이 혐오를 경계하는 문화가 되도록 여러분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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