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미의 보석상자] (49)
주얼리 공모전 출품작
서울 50대 주부 김지현 님 사연
엄마-나-딸, 3대가 이대 동문
60여년 졸업 반지의 변천사

영화 ‘타짜(감독 최동훈, 2006년)’에서 당시 36세이던 배우 김혜수(52)가 매혹적인 미모의 정마담 역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능수능란하게 도박판을 쥐고 흔드는 정마담 역할을 소화하며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연기를 선보였는데요, 김혜수의 명대사 "나 이대 나온 여자야"는 ‘타짜’가 탄생시킨 유행어입니다.
‘정마담은 정말로 이대 나온 여자였나?’라는 설전이 있을 정도로 명대사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최동훈 감독에 의해 나중에 밝혀진 팩트는 "정마담이 이대를 간 것은 맞으나, 졸업은 못 했다"였습니다. 정마담을 연기했던 김혜수의 애드립인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철저하게 대본에 나와 있는 대사였다고 합니다.
이화여자대학교(梨花女子大學校, Ewha Womans University)는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대학입니다. 136년 전인 1886년 5월 31일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사 스크랜튼이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자택에서 여학생 1명을 데리고 교육한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887년 2월 고종황제가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이화학당이라는 명칭을 하사하였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2022년 8월 기준, 총 25만17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이번 주얼리 공모전에는 알록달록한 보석이 세팅되거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주얼리뿐만 아니라 우리네 일상에서 한 번쯤은 스치고 지나갔을 법한 주얼리에 대한 사연도 있었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학교 졸업을 기념하는 반지였습니다. 김혜수의 명대사처럼 한 명이 아니라 ‘3대가 이대 나온 여자’인 가족이 있습니다. 다음은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지현 님(52, 이하 나)의 사연입니다.
친구에게 주얼리 공모전에 대해 들었습니다. 내겐 값비싼 보석이나 근사한 주얼리가 없어서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주얼리가 있습니다. 그 사연을 소개해 보라는 친구의 권유를 받고 응모합니다. 반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와 엄마, 그리고 딸은 모두 같은 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요즘 입시 경쟁이 무척 치열한데, 딸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 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문제집을 많이 사다가 스스로 풀곤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내겐 너무나 자랑스러운 딸입니다.
덕분에 딸은 대학교 입학 첫 학기 등록금이 면제되는 혜택도 받았습니다. 3대 동문 장학금입니다. 3대 동문 장학금은 흔치 않은 사례라고 합니다. 딸은 재능까지 나를 닮았는지 전공도 나와 같습니다. 나는 생활 미술과를, 딸은 디자인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엄마와 나, 딸, 이렇게 3대가 동문이다 보니 공통적으로 지니게 된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대학 졸업 반지입니다. 모두 같은 졸업 반지를 가지게 된 거죠. 14K 대학 졸업 반지 안에 우리 가족의 소중한 역사가 담겨 있는 셈입니다.
나와 딸의 반지는 디자인이 거의 같습니다. 학교를 상징하는 꽃(배꽃) 모양 안에 글자 2개가 있는데, 첫 글자는 학교 이름의 첫 자인 ‘이(梨)’입니다. 모두 동일합니다.
두번째 글자는 단과 대학별로 달라집니다. 나와 딸의 반지 두번째 글자에는 미대를 상징하는 ‘미(美)’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엄마는 문과 대학 정치외교학과를 나오셔서 마지막 글자는 ‘정(政)’으로 되어 있습니다.
엄마는 1945년생(77)으로 엄마가 대학을 다닐 때는 ‘학번’이란 개념이 없었다고 해요. 1967년경에 대학을 졸업하셨으니까 졸업한 지가 55년이나 지났습니다. 나는 1970년생(89학번)으로 졸업한 것이 올해로 30년 전입니다. 딸은 1999년생(18학번)으로 올해 여름 졸업 예정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인지 졸업 반지 모양이 달라졌습니다. 60여년 동안 졸업 반지 디자인에 몇 차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대학 졸업 후 몇 해 지나 아빠와 결혼을 하셨습니다. 아빠는 신부전증으로 2012년 저 세상에 먼저 가셨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모두 신앙심이 무척 깊었습니다. 아빠는 생전 “내가 너한테 물려줄 건 믿음 밖에 없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아빠·엄마 말씀대로 나 또한 믿음이 소중합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나는 엄마의 선한 눈매와 아빠의 깊은 믿음을 물려받았지만, 선천적으로 신장이 약합니다. 얼마 전에는 혈액 투석을 대비하여 혈관 확장 수술도 받았습니다. 오늘도 부은 얼굴이 가라앉질 않네요.
그렇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평범한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 사연을 쓰면서 반지를 다시 꺼내 봤습니다. 반지를 보면서 부모님이 내게 믿음을 물려 주셨듯이, 나도 딸이 믿음과 감사의 마음을 닮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엄마-나-딸, 삼대를 이어주고 있는 반지라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한미보석감정원에서 김지현 님의 반지를 감정했습니다. 보석감정원에서 보석이 세팅되지 않은 주얼리 제품은 감정하지 않으나 이번 공모전에서 받은 감정원 쿠폰으로 예외적으로 감정을 진행했습니다.
반지의 소재는 정치외교학과 반지는 18K이고 미대 반지는 14K였습니다. 미대 반지의 경우, 우리 전통 금속 공예 기법 중의 하나인 칠보(七寶, Enamel/에나멜) 기법으로 녹색과 흰색 바탕이 각각 입혀져 있습니다. 단, 미대 반지 2개의 디자인은 다소 다릅니다. 그러나 동일한 칠보 기법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에나멜을 입힌 경우, 시간이 오래 지나면 크랙이 생기거나 착용으로 인한 스크래치가 생길 수도 있으나 손상없이 보관 상태가 깔끔합니다. 미대 반지 2개가 10호인데 비해 정치외교학과 반지는 12호로 사이즈가 큽니다. 또한 어머님 반지는 체인과 함께 접수되었습니다. 평소에 반지로 착용하기보다 체인에 매달아 목걸이로 사용하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김지현 님은 보석 감정원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습니다. “전문 보석 감정원에서 각 반지 별로 사진이 담겨 있는 감별서 3개를 주셨습니다. 감별서가 있으니 졸업 반지가 더 귀한 물건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번 공모전으로 인해 가족과 반지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별서와 함께 졸업 반지는 가보(家寶)로 잘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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