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미의 보석상자] (53)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취업 선물
2020년 돌아가시기 전 아들에게 물려줘
감정 결과, 80년대 중반 생산된 롤렉스 정품
"아버지의 마지막 조언이자 ‘하나뿐인 향수’"

평소 주얼리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제품)으로 주얼리를 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남성들에게 인기 있는 명품 시계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 여성경제신문에서 진행하는 ‘장롱 속 주얼리와 추억’이라는 주얼리 공모전을 계기로 장롱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가죽 줄로 된 시계와 결혼반지로 보이는 반지를 착용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왼쪽)과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 /김현우, 큐타임
가죽 줄로 된 시계와 결혼반지로 보이는 반지를 착용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왼쪽)과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 /김현우, 큐타임

무심코 들여다본 장롱 안에서 아버지의 유품 하나가 나왔습니다. 바로 '롤렉스(Rolex) 시계’입니다. 롤렉스는 1908년에 설립한 스위스의 명품 시계 브랜드로 고급 시계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내 롤렉스 매장에는 몇 해 전부터 시계를 찾는 이들이 더욱 늘면서 인기 제품이 진열되는 즉시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희소성이 높아져 ‘롤렉스 매장에는 공기만 판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아버지는 굉장히 검소한 분이셨습니다. 핸드폰도 평균 3년 이상 사용했습니다. 자동차는 10년을 넘게 타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 어떤 시계일까요? 30대 직장인 김현우(31, 이하 나) 님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26년 전, 1997년 4월. 강원도 가족여행에서 아버지(당시 37세)와 찍은 사진. /김현우
26년 전, 1997년 4월. 강원도 가족여행에서 아버지(당시 37세)와 찍은 사진 /김현우

아버지, 어머니, 나. 세명이던 우리 가족은 2020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단둘이 되었습니다. 1960년 7월생이던 아버지는 2020년 6월에 간내 담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난 무렵 아버지가 나와 단둘이 저녁을 먹자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에게 시계를 주셨습니다. 바로 롤렉스 시계였습니다.

아버지는 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셨고 나에게 저축과 절약을 몸에 배게 교육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고가의 롤렉스 시계를 가지고 계셨다니… 상당히 놀랐습니다. 석 달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계에 무심했던 터라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 또한 시계의 존재를 잊고 지냈습니다.

아버지가 손수 건네주셨던 그 시계를 이번에 비로소 꺼내 보게 된 것입니다. 시계는 1980년대 중반경 할아버지께서 아들(아버지)에게 준 취업 선물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직후 임관하면서 직업 군인을 시작할 때 할아버지로부터 받았다고 합니다. 근검절약이 몸에 뱄던 아버지가 고가의 롤렉스 시계를 가지고 계셨단 점이 너무나 의아했다가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시계는 할아버지가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께 선물한, 고가의 물건이었습니다. 시계를 만지작거리다 어머니께 여쭈어봤습니다. 아버지는 언제 시계를 차셨냐고. 어머니에 의하면 아버지는 선물 받고 나서 시계를 거의 착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끔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께 “오늘은 롤렉스를 차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도 아버지는 “손목이 무거워질 것 같다. 착용할 엄두가 안 난다”면서 아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롤렉스를 찬 모습이 너무 보고 싶지만 이젠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이 아프네요.

아버지는 평소 무관심한 척하시다가도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아셨는지 오셔서 도와주셨습니다. 30년이라는 짧지만 긴 세월 동안 아버지와 지내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께 맞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나는 사춘기가 남들보다 늦게 찾아온 탓에 고등학교 1학년 때 일명 ‘양아치’ 친구들과 잠깐 어울렸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밤늦게까지 놀다 집에 들어오니 아버지가 앉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날은 내 생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생일 저녁을 같이 먹기 위해 일찍 퇴근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생일이고 뭐고 일단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아서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고 집에 늦게 들어온 겁니다. 진로와 관련해 부모님과 충돌이 있었던 때라 반항심이 컸을 때였습니다.

아버지는 “네가 무엇을 하든 이제 어른이니 관여하지 않겠지만 가족 간의 기본 선은 지키면서 살아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동의하지 않았죠. 결국 말다툼은 심해졌고 나는 신경 쓰지 말라며 방문을 세게 닫고 대화를 단절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문을 세게 닫으면서 문 옆 장식장에 있는 작은 시계가 떨어져 깨졌습니다. 아버지는 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나를 혼내셨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사과드렸고 밤새 울었습니다.

되돌아보니 그때가 너무 그립습니다. 건강하셨고 내가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할 때 항상 바른길로 인도해 주셨던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혼나고 싶어도, 혼내줄 아버지가 이제는 세상에 없어서 나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니깐요.

아버지와 단둘이 처음 술을 마셨던 날도 떠오릅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 아버지가 저녁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사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합니다.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와 술을 마시는데 소주 4잔 정도 마시니 결국 취했습니다. 집에 가는 동안 비틀거리는 나를 아버지가 업어 주셨습니다. 그날 취해서 아버지 등에 업혀 가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어릴 적에 많이 업어 주셨겠지만 다 커서 아버지의 등에 업히는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내가 아버지를 업어드렸을 때도 생각이 많이 납니다. 병을 워낙 늦게 발견해서 아버지는 4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암이 몸에 퍼지면 살이 빠지고 힘이 떨어져 걸을 수조차 없게 됩니다. 가족끼리 저녁을 먹으러 병원을 잠시 떠났던 날, 차에서 내려 식당까지 아버지를 업어서 모셔갔습니다. 뼈밖에 남지 않은 아버지가 너무 가벼웠습니다.

그런 아버지는 뒤에서 나를 꼭 감싸 안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등 뒤에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부모의 책임은 다 했다. 스스로 일어서서 목표를 이루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업으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도 슬펐던 때였습니다.

지금에야 롤렉스 시계를 꺼내 보면서 그때의 추억도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장롱 속에는 어머니의 예물 시계도 있었다. 어머니의 시계는 삼성 갤럭시 모델로 18K 옐로우 골드 소재에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세팅되어 있는 고급품이다. 시계줄에는 여의주를 문 용이 조각되어 있다. 삼성이 1983년 삼성시계를 창립하면서 시계 사업에 진출한 적이 있었는데, 한때 국산 시계 시장 1위였다. 그러나 1998년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제외됐다. /큐타임
장롱 속에는 어머니의 예물 시계도 있었다. 어머니의 시계는 삼성 갤럭시 모델로 18K 옐로우 골드 소재에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세팅된 고급품이다. 시곗줄에는 여의주를 문 용이 조각되어 있다. 삼성이 1983년 삼성 시계를 창립하면서 시계 사업에 진출한 적이 있었는데, 한때 국산 시계 시장 1위였다. 그러나 1998년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제외됐다. /큐타임

이번 주얼리 공모전 시즌 1에는 주얼리와 보석뿐만 아니라 시계에 대한 사연도 있었습니다. 과거 시계는 주얼리와 함께 결혼 예물로 빠지지 않던 품목이었죠. 그래서인지 장롱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시계에 대한 다양한 사연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 사연을 들려준 김현우 님은 필자와 함께 주얼리 공모전을 진행한 여성경제신문 기자입니다.

평소 주얼리와 시계에 관심이 없었던 김현우 님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시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주얼리란 평소 몸에 차고 다니는 물건이지만 그 나름의 추억과 의미를 새길 수 있단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김현우 님은 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이래 장롱 속에서 오랜 시간 잠잤을 시계에 대하여 여러 가지 궁금증도 생겼다고 했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현재도 사용이 가능한지 등등 말입니다. 하지만 명품 브랜드 매장이나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수리 센터에서는 정품·가품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시계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듣기 위해 중고명품 시계 판매업체인 ‘큐타임(대표 조경익)’을 지난 4월 20일 방문했습니다. 조경익 대표는 중고명품 시계 전문점 큐타임을 20년 넘게 한자리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롤렉스를 비롯한 파텍필립, 오데마피게 등 고급 명품 시계가 주요 품목입니다.

감정 결과, 1985~1986년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롤렉스 제품이었다. /큐타임
감정 결과, 1985~1986년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롤렉스 제품이었다. /큐타임

조경익 대표는 시계 다이얼 판, 본체, 브레슬릿, 잠금장치, 시계 내부 등의 부분을 세심하게 감정했습니다. 본체를 브레슬릿과 분리하여 12시 방향과 6시 방향에 새겨져 있는 모델 번호(16014)와 시리얼 번호를 확인했습니다. 롤렉스는 제작 시, 일련의 번호를 부여하여 시계에 새깁니다. 시계에 나와 있는 고유 번호로 생산 시기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계 뒷면을 열면 내부의 무브먼트에도 번호(3035)가 새겨져 있습니다.

조경익 대표의 감정 결과, 김현우 님의 시계는 1985~1986년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롤렉스 제품이었습니다. 시계의 보관 상태도 우수합니다. 케이스 표면에 미세한 스크래치가 관찰되지만 브레슬릿으로 된 시곗줄은 손목에 맞게 마디를 조정한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김현우 님 회상대로 거의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보였습니다. 다만 시계 내부는 장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아 전체적인 점검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종합적인 소견은 의심의 여지 없는 롤렉스 제품으로 보이며 1980년대 중반 당시 판매가 150만원~180만원 선이었다고 합니다.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컬렉션 /롤렉스 홈페이지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컬렉션 /롤렉스 홈페이지

시계는 롤렉스 데이트저스트(Datejust) 컬렉션입니다. 1945년에 출시된 모델로 다이얼의 3시 방향에 날짜 표시 창을 갖춘 최초의 셀프 와인딩 방수 크로노미터 손목시계입니다. 출시된 지 약 80년이 된 모델이지만 클래식한 디자인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잃지 않는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고 있는 베스트 셀러입니다.

데이트저스트는 기라성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착용했던 시계로도 유명합니다. 윈스턴 처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마틴 루서 킹의 손목시계였습니다. 데이트저스트는 지금도 인기 모델로 조경익 대표는 김현우 님의 시계를 중고가 500만원선으로 책정했습니다.

김현우 님은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세상이 그들의 존재를 알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김현우 님에게 롤렉스 시계의 의미는 ‘하나뿐인 향수’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는 점 자체가 향기는 없지만 몸에 배는 향수와 같다고 하네요. 그리고 장차 결혼하게 되면 내돈내산 주얼리를 처음으로 구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현우 님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아버지의 인생을 엿볼 수 있어서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가족의 추억과 역사를 다시 새길 수 있게 됐죠. 아버지가 저에게 롤렉스를 주면서 하신 ‘남자는 가끔 허세를 부려도 괜찮다. 인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절제만 하고 살았구나’라는 말씀이 지금에 와선 너무나 기억에 남습니다"라며. 그리고 말합니다.

"가끔은 사고 싶은 것도 사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언을 이 시계를 통해 느꼈습니다. 무언가를 아끼고 애지중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은 한 번뿐이라 가끔은 무언가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조언을 시계를 통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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