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 찾기 시즌 2 인순이 사연 (상)
거친 세파에도 늘 '장군' 같던 엄마
처음 사드린 다이아반지 분실 상심
"엄마의 반지들 딸에게 물려줄 것"

"어릴 적 학교에서 매일 싸우고 왔어요. 울고 들어온 저를 볼 때마다 엄마는 맞지만 말고 때려주고 오라면서 제 등을 두드려 주셨어요. 엄마는 제게 늘 여장부였어요.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학교에 불려와서 선생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모습을 우연히 엿보게 됐어요. 어린 마음에도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악착같이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6.25 전쟁이 끝나고 4년 후 가수 인순이가 태어났다. 폐허가 된 나라에서 자란다는 건 끊임 없는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딸에게 엄마는 버팀목이 돼야 했다. 인순이 씨가 엄마를 '장군님'으로 기억하는 까닭이다. 홀로 아이를 키워가자면 거친 세상보다 더 강해야 했다.
그런데 장군님 같았던 엄마도 반지 하나에 무너졌다. 여성경제신문이 신년기획으로 시작한 '주얼리 찾기' 공모전을 보고 인순이 씨가 어머니의 사연을 가져왔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반지들을 딸 박세인 씨에게 물려줄 겸 감정도 받아보기로 했다.
지난달 2일 인순이 씨 모녀를 서울 중구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모녀의 대화를 담은 상편과 한미보석감정원에서 어머니의 반지들을 감정받은 하편으로 나눠 두 차례 연재한다. 다음은 인순이 씨 모녀와의 일문일답.

—어머니가 반지 하나에 약해지셨다는 건 어떤 사연인가요.
인순이 "1978년 가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죠. 어머니도 고생을 하셨어요. 그러다 거위의 꿈이 크게 히트하면서 살림도 펴졌어요. 어머니 생각이 났죠. 어머니도 주얼리를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 제대로 된 주얼리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당시론 큰맘 먹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해 드렸어요. 그걸 정말 잘 끼고 다니셨죠. 그런데 저희가 분당에 살 때 집에 왔다가 시장을 다녀왔는데 반지에 있던 다이아몬드가 없어졌다는 거에요. 어딘가에 걸려서 다이아몬드가 빠져버렸나 봐요. 어쩔 줄 몰라하면서 끌탕을 하는 거에요. "엄마 내가 다시 해줄 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혼자 끙끙 앓으셨죠. 엄마한테는 유일한 다이아 반지였는데 그걸 잃어버렸다는 게 엄마한테는 충격이었나 봐요.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며칠 있다가 엄마가 쓰러지셨어요. 엄마를 상상해보면 아마 며칠은 밤잠을 못 잤을 거예요. 그 강인하셨던 분도 결국 딸이 해준 반지 앞에서 약해지셨어요.
이번에 장롱 속을 뒤지다 그 반지를 꺼내 보니 엄마 생각에 먹먹해졌어요. 지금은 금지지대가 받치고 있는 큐빅이 들어간 반지이지만, 당시에 엄마에게 선물해줄 땐 큐빅 대신 다이아몬드가 있었죠."
박세인 "할머니와 관련된 기억이 저도 있어요. 지금 제가 손에 끼고 있는 이 반지도 할머니가 사주신 거에요. 그런데 이 반지, 옛날에 중학생 때 엄마 때문에 한 번 잃어버린 적이 있어요(웃음). 그때 정말 엄마에게 화가 많이 났었어요."
인순이 "맞아요. 정말 황당했어요."
박세인 "할머니가 유일하게 남겨 주신 반지인데, 엄마의 실수로 한동안 없어졌었어요. 중학교 체육 시간 때였을까요. 운동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반지가 빠질까 봐 학교에 가기 전 엄마에게 맡겨 두었어요. 그런데 집에 와보니 엄마가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거에요."
인순이 "금반지였어요. 왜 옛날 어른들은 돈 되는 선물을 해 주잖아요. 언제든지 팔 수 있는 것들. 그래서 금반지를 세인이 생일 때 맞춰 주신 거에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맡아두겠다고 하고 잃어버린 거에요."
박세인 "어디서 찾았는지 아세요? 글쎄 엄마 가방 안에 있었더라고요. 엄마가 가방에 잘 보관해 놓고 그걸 까먹은 거에요. 큰일 날 뻔했어요. 우리 모녀는 왜 자꾸 잘 잃어버리는지 모르겠어요."
인순이 "저도 다이아몬드를 결혼할 때 받았는데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고 있어요. 잃어버릴까 봐서요. 잠잘 때도 주얼리는 웬만하면 다 빼두고 자는 편이에요. 세인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꼼꼼하거나 섬세한 성격이 아니다 보니(웃음)."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주얼리와 인연이 깊을 것 같아요.
인순이 "결혼하기 전에는 꽤 사서 모았어요. 그런데 그걸 하고 갈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무대에 올라가면 정신이 없어요. 옷 갈아입고 하다 보면 잃어버리기 십상이어서 다 빼놓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됐어요.
게다가 거위의 꿈을 부르면서는 주얼리를 멀리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거위의 꿈을 부를 때 수화를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손에 반지 같은 주얼리가 많으면 오히려 보는 사람 관점에서 정신없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무대에 올라가기 전 웬만한 주얼리는 다 빼거든요. 심지어 매니큐어도 못 발랐어요.
그래서 반지보다는 귀걸이를 주로 착용했어요. 오히려 무대에 올라갈 때 주얼리를 착용하면 요즘 굉장히 어색하더라고요(웃음). 이젠 다시 좀 하고 싶어요."
—세인 씨도 주얼리는 거의 안 하는 것 같아요.
박세인 "주얼리에 관심이 없었어요. 주얼리를 갖게 된 것도 남편한테서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가 처음이었어요. 지금 끼고 있는 게 결혼 반지하고 남편이 사준 반지랑 할머니가 주신 반지밖에 없죠. 제가 산 건 거의 없어요.
사실 엄마가 해 준 다이아 귀걸이도 잃어버린 적이 있어요. 농구를 하려고 갔다가 빼서 잘 놔뒀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없어졌더라고요. 딴 건 다 있는데 딱 그 귀걸이만 없어진 걸로 봐서 누군가 가져간 거였어요. 기절하겠는 거죠.
엄마가 해준 다이아였는데 이걸 어쩌나 싶었어요. 제발 그 다이아몬드가 가짜였길 바랬는데 엄마한테 물어보니 진짜였더라고요. 그 다음부턴 더 안 하게 됐어요.
보통 여자들 마음은 남편이 뭘 해주겠다고 하면 좋아하잖아요. 귀걸이도 있고 팔찌도 있고 그런데 저는 남편에게도 그랬죠. 내가 잃어버릴 것 같으니 몸에서 빼지 않고 잘 수 있는 것만 해달라고 했어요. 귀걸이도 빼지 않을 걸로만 해요.
결혼 때도 다이아 같은 고가의 반지는 받지 않았어요. 생일 때도 다이아를 사준다고 했는데 싫다고 했어요."
인순이 "아니 무슨 소리야, 다이아를 받아야지! (웃음) 꼼꼼하거나 섬세하거나 그러지 못하는 부분이 우리 둘이 너무 닮았어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반지나 귀걸이를 물려주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고 있어요. 덜렁대는 건 둘 다 똑같아요. 오히려 사위랑 세인이 아빠가 더 꼼꼼해요."
박세인 "결혼반지 같은 주얼리는 평소엔 장롱 속에 모셔두고 있어요. 제 친구들은 결혼반지랑 패물을 하고 다니더라고요. 어떻게 그런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한 '해밀학교'를 2018년부터 운영하셨는데, 이와 관련된 근황을 여쭤보고 싶어요.
인순이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까지 6년 2개월을 군부대 강연을 다녔어요. 한 달에 한 번씩이요. 맨 처음에는 그냥 해밀학교를 운영하면서 학교에 후원해 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것을 어떻게 감사의 표시를 할까 생각하다가 시작한 거예요.해밀학교에 도움을 준 그분들도 아들이나 오빠 조카가 군대에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 나도 군부대를 가서 장병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군대에선 '관심병사'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이 있었어요. 부모와 불화가 있거나 가정사가 있어서 군대에 적응을 잘 못하는 병사를 뜻해요.

그들에게 내가 힘들었던 이야기나 내가 성공한 이야기, 또 내가 도전했던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쭉 관심병사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군부대 강연을 하고 있었는데 2016년도부터는 국군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도 입대를 받기 시작한 거예요. 탈북자도 입대를 하기 시작했고요. 이들은 모두 한국인이에요. 그러기에 군대에 가고 싶었던 거고요. 다문화 장병들에게 외모가 다르더라도 모두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꼭 심어주고 싶었어요. 이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말이죠.
해밀학교도 규모가 굉장히 커졌죠. 잘 운영되고 있어요. 제가 다문화가정 출신이라 그들의 어려움을 무엇보다 잘 알아요. 그래서 제 다음 세대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게끔 하기 위해 설립한 게 해밀학교죠. 그런데 재정문제는 어쩔 수 없나 봐요. 학교도 제법 커지고 있어서 들어가는 돈이 많은 상황이에요. 사회 자체가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는 추세라서 그래요.
입학생이 많아지는 시점에서 기부금이나 투자금으로 운영이 넉넉히 돼야 하는데 최근엔 경기가 어렵다 보니 이마저도 줄어들고 있죠. 그래서 제 개인 돈을 기부해서라도 아이들을 위해 어렵게 운영하고 있어요. 더 많은 분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관심이 절실해요."
—어머니에게 해 주었던 반지처럼 딸에게도 물려줄 주얼리가 있을까요.
인순이 "엄마가 물려주신 반지를 세인이에게 물려줘야죠.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잃어버릴까봐. (웃음) 은행 금고에 이름표 붙여서 보관해뒀다가 세인이가 잘 간수할 수 있을 때 물려줘야죠. 세인이에겐 화장대도 하나 주기로 했어요. 집에서 원래 제가 쓰던 화장대예요. 처음에 아이가 결혼했을 때 서랍장이랑 화장대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화장대를 고르더라고요.
젊었을 때는 조금 고생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뭘 주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어요. 아이들이 결혼할 때도 남자랑 여자 둘이 경제적인 부분이든 무엇이든 똑같이 시작했어요.
집도 전세를 얻어서 살고 있어요. 서로 처음부터 시작해서 돈을 모으고 그렇게 해서 나중에 큰 것을 얻었을 때의 행복감을 알아가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모아가는 재미가 있잖아요. 누군가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뿐인 딸이지만 세상은 본인이 알아서 헤쳐 나가야 하잖아요. 제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거든요. 돈은 물론 필요하지만,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않아요. 오히려 돈이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어머니가 물려주신 반지를 감정 받아보실 생각이 있나요.
인순이 "네 그러고 싶어요. 엄마가 평소에 한복을 입으시면 즐겨 끼시던 자수정 반지랑 옥가락지도 있어요. 당시엔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터라 그리 비싼 보석은 아니었을 거에요. 그걸 이제 세인에게 물려주려고 하는데 어떤 보석인지 알아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설사 가짜라고 해도 상관 없어요. 진짜든 가짜든 엄마가 분신처럼 끼던 반지이니 제겐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거죠."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반지를 딸에게 물려주면서 남기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인순이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순간 나를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엄마의 딸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고 세인도 딸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엄마가 될 것이고 딸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기억을 한다는 것.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이지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코코란 영화를 보면서 절감했어요. 살아 있는 사람이 기억해주지 않으면 영혼이 사라지잖아요. 그 영화 보고 그때 이사를 하고 잘 못 챙겼던 때인데 부랴부랴 집에 가서 막 엄마 사진 챙겨가지고 엄청 울면서 모셔 놨잖아요. 우리 엄마도 떠났지만 항상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세인이도 할머니가 지킬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박세인 "엄마 같은 사람, 할머니 같은 사람만 됐으면 좋겠어요. 반의반만이라도 그렇게 된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아요. 사실 할머니가 꿈에 자주 나오시거든요. 너무 좋게 나오세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요. 언제나 어디서나 엄마와 저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요. 저 또한 할머니 생각을 많이 해서 제가 할머니를 매 순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할머니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하편에서는 인순이 씨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반지의 감정 결과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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