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 공모전 다이아몬드상 수상작
여주 ‘정서방네’ 손녀, 김민주 님 사연
60만원 거금 주고 환갑 선물로 구입
감정 결과 천연 보석 아닌 인조 유리

경기도 여주시 ‘정서방네’ 대가족 사진. 맏딸인 이모집 마당에서 찍었다. 중앙에 외할머니와 이모, 이모 뒤에 스카프를 두른 분이 김민주 님의 엄마다. 김민주 님은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김민주
경기도 여주시 ‘정서방네’ 대가족 사진. 맏딸인 이모집 마당에서 찍었다. 중앙에 외할머니와 이모, 이모 뒤에 스카프를 두른 분이 김민주 님의 엄마다. 김민주 님은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김민주

김민주 님은 경기도 여주시의 한 시골 마을 ‘정서방네’ 외손녀입니다. 이웃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곳입니다. 김민주 님의 엄마는 정서방네 3남 2녀 중 막내딸이구요. 김민주 님의 외할아버지인 정서방의 아내, 즉 김민주 님의 외할머니는 92세입니다. 김민주님은 37세.

이번 주얼리 공모전에 92세 외할머니와 37세 김민주 님이 똑같이 생긴 초록색 반지를 낀 손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2021년 겨울, 외할아버지 장례식 후 장롱 서랍에서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반지 2개가 나왔다고 합니다. 가락지도 아니고 녹색의 굵은 알이 박힌 반지가 왜 한 쌍을 이루고 있는 걸까요? 다음은 여행과 아름다운 모든 걸 좋아하는 김민주 님(이하 나)의 사연입니다.


92세 외할머니와 37세 손녀 김민주 님이 똑같이 생긴 알이 큼직한 초록색 반지를 낀 모습과 쌍둥이 반지. /김민주, 미래보석감정원 제공
92세 외할머니와 37세 손녀 김민주 님이 똑같이 생긴 알이 큼직한 초록색 반지를 낀 모습과 쌍둥이 반지. /김민주, 미래보석감정원 제공

1930년은 다정하고 인자하신 나의 외할머니가 태어난 해다. 한국사 시간에 배운 광복을 할머니는 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맞이했다. 광복 후 3년이 지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에 꽃다운 18세의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혼례를 올리고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되었다.

외할머니는 부지런한 분이셨다. 열심히 일해 논과 밭을 사서 집안을 일으켰고, 그 무렵 막내인 우리 엄마를 낳았다. 할머니는 올해 만 92세다. 100살 가까이 산 외할머니는 자녀 3남 2녀를 두셨다. 그 자녀들이 결혼하여 11명의 외손자, 외손녀가 태어났다. 그중 일찍 결혼한 손주 덕분에 증손주까지 보셨다. 이렇게 많은 자손들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건 외할머니의 ‘고생’ 덕분이었다.

외할머니와 김민주 님 /김민주
외할머니와 김민주 님 /김민주

외할머니는 비록 가난한 농가에 시집갔으나 엄마의 희미한 기억 속엔, 엄마가 어린 시절의 외갓집은 꽤 잘 살았다고 한다. 슬프게도 잘 사는 호시절은 매우 짧았지만 말이다. 외할아버지는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파산하였고, 결국 힘들게 모은 전답을 다 날리게 되어 버렸다.

외할머니는 동네 이웃들의 논과 밭을 매고, 잡초를 뽑아주는 궂은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받은 품삯으로 외할머니는 다섯 남매를 키워 내신 것이다. 그 고생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이모와 외삼촌들이 엄마인 외할머니께 가지고 있는 감정은 아주 애틋하고 특별하다.

외할아버지는 재작년 겨울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모처럼 가족들이 다 모이게 되었고,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온 옛 사진들을 보며 과거의 추억에 잠기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그런데 혹시 다른 사진들이 더 있을까 열어본 장롱 서랍에서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반지 2개가 나왔다. 가락지도 아니고 녹색의 굵은 알이 박힌 반지가 왜 한 쌍을 이루고 있는 걸까?

평소 할머니 장롱 서랍에 보관되어 있는 쌍둥이 초록색 반지의 모습. /김민주
평소 할머니 장롱 서랍에 보관되어 있는 쌍둥이 초록색 반지의 모습. /김민주

하나는 표면에 자잘한 흠집이 나 있었지만 아직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아주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은 것처럼 닳아 있었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반지를 끼어 보았다. 곧 반지에 마음을 홀랑 빼앗겨 버렸다. 반지에 정신이 팔려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는 나에게 외할머니가 반지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 주셨다.

32년 전인 1990년. 외할머니가 환갑을 맞이한 해였다. 나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외갓집 마당에 커다란 천막을 치고, 높이 쌓은 모형 음식을 상에 올렸다. 하객들은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이날 맏딸인 이모가 큰 맘 먹고 구입한 반지와 목걸이 세트를 외할머니의 환갑 선물로 드렸다. 평생 일만 하느라 백동 반지 하나 없는 할머니를 위해.

무려 60만원짜리였다. 당시 9급 공무원 1호봉이 18만7000원이었으니, 평범한 직장인의 석 달치 월급 정도의 가격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좋은 반지가 생긴 할머니는 너무 기뻐서 매일 반지를 끼셨다고 했다. 밭일을 갈 때도 반지를 잊지 않으셨단다.

그렇게 할머니와 한몸이 된 줄 알았던 반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온 집안을 샅샅이 살피고 장독대와 우물가를 뒤져도 반지는 나오지 않았다. 잃어버린 반지도 소중했지만 무엇보다 반지를 선물한 맏딸의 마음이 상할까 할머니는 크게 걱정하셨다고 한다.

1990년 외할머니 환갑잔치날 김민주 님(중앙)과 김민주 님의 부모님(양 옆에 한복 입은 분), 김민주 님 뒤로 병풍 앞에 앉아 계신 외할머니도 보인다(왼쪽). 1988년 김민주 님이 두돌 생일상 앞에서 찍은 사진, 생일상에 있는 수수팥떡을 외할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셨다(오른쪽). /김민주
1990년 외할머니 환갑잔치날 김민주 님(중앙)과 김민주 님의 부모님(양 옆에 한복 입은 분), 김민주 님 뒤로 병풍 앞에 앉아 계신 외할머니도 보인다(왼쪽). 1988년 김민주 님이 두돌 생일상 앞에서 찍은 사진, 생일상에 있는 수수팥떡을 외할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셨다(오른쪽). /김민주

결국 할머니는 남은 목걸이를 가지고 금은방으로 가서, 펜던트를 반지로 만들어 오셨다. 할머니 손에서 변함없이 빛나고 있는 반지가 원래는 목걸이였다는 것을 이모는 상상도 못했다. 사라진 반지는 영영 외할머니 곁을 떠난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밭을 매던 외할머니는 무언가가 호미에 부딪혀 내는 날카로운 소리를 들으셨다. 조심스레 흙을 걷어 보았다. 정말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잃어버렸던 그 반지였다.

그야말로 마음 한 켠에 있던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다고 한다. 아마도 한 해 전 밭일을 하시다가 반지를 분실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바로 그 자리를, 주인을 잃은 반지가 묻혀 있던 바로 그 자리를, 외할머니의 호미가 찾아냈을까.

어쨌든 외할머니는 다시는 반지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그때부터 반지를 장롱 안 서랍에 넣어두셨다고 한다. 다시 품으로 돌아온 반지, 목걸이로 만든 반지, 2개 모두를 말이다.

다시 수십 년이 지났다. 92세인 할머니는 다시 세상에 나온 반지를 물려줄, 반지의 새 주인을 찾고 계신다. 우리 엄마가 막내인 덕분에 반지의 순번이 내게 돌아오기는 요원할 것 같다. 미련이 조금 남아 있긴 하지만, 반지 주인의 자리보다는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자리가 내 자리라서 행복하다. 할머니 사랑해요.


분실했다가 밭에서 찾은 반지(왼쪽)와 목걸이 펜던트로 만든 반지. 감정 결과, 거금을 들여 구입했던, 초록색 보석이라고 믿었던 반지는 유리 반지였다. /미래보석감정원
분실했다가 밭에서 찾은 반지(왼쪽)와 목걸이 펜던트로 만든 반지. 감정 결과, 거금을 들여 구입했던, 초록색 보석이라고 믿었던 반지는 유리 반지였다. /미래보석감정원

김민주 님의 반지는 미래보석감정원에서 감정했습니다. 2개의 반지가 접수되었는데 녹색의 메인 보석과 적색, 녹색, 무색의 보조석이 세팅되어 있는 쌍둥이처럼 똑같은 디자인의 반지였습니다. 그러나 두 반지 외관의 상태는 사뭇 달랐습니다. 한 개는 메인 보석에 아무런 손상없이 광택이 우수했고 묘안(猫眼) 효과도 잘 보이는 등 관리 상태가 좋았습니다.

묘안 효과는 일부 보석에서 나타나는 특수 현상인데 보석 내부에 다수의 미세한 침상 결정이나 내포물이 한 방향으로 배열되어 있을 때, 이들로부터 빛이 반사하여 한 방향의 빛 줄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양이의 눈(Cat’s Eye)을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샤토얀시(Chatoyancy)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외관이 심하게 마모되어 광택이 없고 묘안 효과도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옆면에 깨어진 부분이 발견되었으며 금장식도 훼손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보석학적인 특징들을 검사한 결과, 두 개의 반지 모두 메인 보석은 인조 유리(Man Made Glass)로 확인되었습니다. 인조 유리는 모조석으로서,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천연 보석처럼 사용하기 위하여 천연 보석과 외관만 유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와 같은 고가의 천연 보석 대용품으로 사용됩니다.

인위적으로 만들다 보니 천연 보석과 화학적ᆞ물리적 특성이 모두 다릅니다. 특히, 경도(외부 긁힘에 견디는 힘)가 루비나 사파이어 같은 천연 보석에 비해 상당히 약합니다. 그러다 보니 외부 마찰에 의해 표면 광택이 비교적 쉽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가격 또한 당연히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가치로 환산한다면 이 정도 크기의 천연 묘안석일 경우 수천만 원을 호가하지만, 인조 유리는 몇 만원에 구매가 가능합니다.

보조석으로는 3종류의 보석이 세팅되어 있는데 적색과 녹색은 천연 루비, 천연 에메랄드로 확인되었습니다. 반면 무색의 보조석은 큐빅 지르코니아(C.Z)로 감별되었습니다. 큐빅 지르코니아는 흔히 큐빅으로 불리는데 이것 또한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으로서 외관만 다이아몬드와 비슷할 뿐 천연의 다이아몬드와는 화학적ㆍ물리적 특성이 다릅니다. 다이아몬드의 대용품입니다. 반지 틀의 소재는 두 가지 모두 18K 도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초록색 보석 반지가 아닌 ‘정서방네’ 집안의 값진 보물이 되었다. /미래보석감정원
이제는 초록색 보석 반지가 아닌 여주 ‘정서방네’ 집안의 값진 보물이 되었다. /미래보석감정원

칠순을 넘긴 이모와 환갑을 코앞에 둔 엄마, 92세 외할머니는 지금도 한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이모도 평생 시골에서 산 분입니다. 이모는 동네 사람들이 환갑 때마다 부모님께 눈에 띄게 예쁜 보석 반지를 선물한 것을 봐오던 차에 외할머니께도 꼭 사드리고 싶었습니다. 나이 드신 분은 작은 보석을 하면 왜소해 보인다고 해서 화려한 색깔에 큰 것으로 골랐습니다.

구입한 곳은 동네에서 오래된 금은방이었고, 지금도 그 자리에는 주인은 다르지만 금은방이 그대로 있습니다. 구입 당시, 금은방 주인은 다름아닌 먼 친척. 김민주 님은 이모가 반지를 살 때, 초록색 보석이 어떤 보석인지도 잘 몰랐을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지인이 하는 금은방이라 추천해 준 물건을 그냥 믿고 샀을 거라며. 

감정 결과, 맏딸이 엄마의 환갑 선물로 산 초록색 보석이라고 믿었던 반지는 유리 반지였습니다. 실망스러운 결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 결과를 들은 김민주 님은 다음과 같이 쿨한 소감을 전해왔습니다.

“보낸 사연보다 더 큰 반전이 있는 보석 감정이었습니다. 이모가 30년 전, 동네 금은방에서 60만원이나 주고 구입한 반지와 목걸이의 보석이 인조 유리라는 감정 결과를 듣고 박장대소를 터뜨렸습니다.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친구에게 빌린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가짜인 줄 모르고, 진짜로 알고 빚을 갚기 위해 10년을 고생한 스토리)가 생각나기도 했구요.” 김민주 님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외할머니를 닮아 역시 성품이 인자한 이모는 (금은방에서) ‘모르고 그랬을 거다’ 라며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초록색 보석 반지가 아닌 우리 집안의 값진 보물입니다. 우리 가족에게 60만원보다 더 값진 추억을 주었으니, 모두가 행복한 해피 엔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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