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 공모전 다이아몬드상 수상작
호주 유학서 귀국길에 처음 본 '오팔'
엄마 얼굴 떠올라 3일 알바해 선물
20여년 잊었다 친정엄마 물려줘 상봉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정유선 님은 대학원 석사 과정 중 호주 시드니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관광 명소로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인근에서 2년간 유학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그다이 마이트(G’day mate)’. 27년 전 호주 공항에 도착해서 들었던 낯선 말입니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던 정유선 님조차 ‘무슨 말이지?’ 했습니다. 알고 보니 헬로우(Hello)같은 인사말인데, 그들만의 특이한 호주식 인사였습니다. 그다이 마이트처럼 호주에서 난생 처음 알게 된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보석 '오팔'입니다. 당시 유학생들에게 선물용이나 기념품으로 꼭 사가는 인기 품목 중 하나가 호주산 오팔이었답니다. 다음은 정유선 님(이하 나)의 사연입니다.


맥도날드에서 알바로 번 120달러로 엄마께 드릴 오팔 반지를 샀다. / 픽사베이, 한미보석감정원 제공
맥도날드에서 알바로 번 120달러로 엄마께 드릴 오팔 반지를 샀다. / 픽사베이, 한미보석감정원 제공

1996년의 겨울은 유난히 포근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세는 얼음처럼 냉각되고 있었다. 전직 두 대통령의 구속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언론이 연일 시끄러웠고 이듬해에 다가올 경제 위기를 암시하듯 무역수지 적자가 최대치를 돌파하며 '명퇴', '실직'과 같은 단어들이 난무했었다.

호주에서의 짧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기다리던 나는 가족들의 선물을 사러 시내에 나갔다. 조카의 선물로 아래위로 흔들면 '매애~~ 매애~~' 소리를 내는 산양 인형을 사고, 아빠 차에 깔아드릴 양털 방석과 친구들을 위해 호주산 수분 크림까지 구매했다.

아~ 엄마…. 엄마께 드릴 선물로는 오팔 반지를 사고 싶었다. 집 근처 쇼핑몰에 주얼리 가게가 있었는데 오팔 주얼리가 많이 진열된 곳이었다. 오묘하고 다양한 색의 오팔이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게에는 40대로 보이는 한국인 여성 직원분이 있었는데 엄마 선물용으로 몇가지 제품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았던 나는 만지작거리던 반지를 내려놓고 내 낡은 캐리어 두개가 기다리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그 흔치 않은 초록색을 띠던 오팔 반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시드니 유학시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찍은 사진. 최근 친정집에서 찾았다. / 정유선
시드니 유학시절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찍은 사진. 최근 친정집에서 찾았다. / 정유선

집에 가려면 아직 3일이 남았는데 어떻게 그 반지를 살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다음날 아침 큰 길 건너에 있던 맥도날드로 갔다. 3일간 알바를 하겠다고 매니저에게 사정을 하니 운이 좋았던 건지 흔쾌히 일을 시켜 주었다. 바닥을 닦고 쓰레기통을 정리하고 흐르는 땀을 닦을 때마다 오팔 반지를 생각했다.

드디어 3일이 지나고 내 손엔 120달러가 쥐어졌다. 바로 쇼핑몰로 달려가 그 영롱한 초록빛이 나는 오팔 반지를 샀다. 그리고 무사히 귀국했다. 예상대로 엄마는 환한 웃음과 함께 기뻐하셨고 한동안 문신처럼 끼고 다니셨다. 얼마쯤 지났을까 반지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고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나는 두 딸을 키우며 손마디가 굵어졌다.

몇 년 전 암 수술과 항암 치료로 몸이 많이 허약해 지신 엄마는 체중이 40㎏도 안되게 마르셨고 작은 무게의 금붙이도 힘겨워 하셨다. 기운이 날 때마다 짐을 정리하고 오래된 목걸이, 반지를 두 명의 며느리와 딸인 나에게 나눠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초록색 반지 상자를 주시며 “이제 니가 끼면 이쁘겠다” 고 하셨다. 상자를 여는 순간 느끼한 햄버거의 냄새가 스치며 초록색 반지가 그때 그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 반지~~'. 손가락에 껴보니 그때는 많이 컸는데 이제는 딱 맞았다. 20여년 간 잊혀졌던 반지가 지금의 내 모습과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져와 큰 딸에게 보여주며 그 반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이 다음에 물려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신기하게도 이 반지를 끼고 있으면 그때의 호주, 시드니가 생각난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시내 큰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의 모습,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오페라 하우스, 총총거리며 이리저리 분주했던 하얀 비둘기들까지. 아... 그립다… 언젠가 두 딸과 함께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오늘도 엄마는 엄마의 물건을 정리하고 계신다고 한다. 이번 주말엔 엄마가 좋아하시는 대봉시를 사서 친정에 다녀와야겠다. 엄마 이제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세요. 사랑합니다~!!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나에게, 엄마는 초록색 반지 상자를 주시며 '이제 니가 끼면 이쁘겠다'며 오팔 반지를 물려주셨다. /정유선 님, 한미보석감정원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나에게, 엄마는 초록색 반지 상자를 주시며 '이제 니가 끼면 이쁘겠다'며 오팔 반지를 물려주셨다. /정유선 님, 한미보석감정원

한미보석감정원에서 정유선 님의 오팔 반지를 감정했습니다. 감정 결과, 메인 스톤은 천연 블랙 오팔입니다. 블랙 오팔 옆에 보조석으로 세팅된 것은 천연 다이아몬드 0.01캐럿, 12개 였습니다. 반지 전체는 18K 소재. 중앙의 블랙 오팔 주위와 링 부분은 옐로우 골드로 마감한 반면, 다이아몬드 장식 부분에는 화이트 골드로 마감해서 블랙 오팔을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정유선 님의 반지를 감정한 한미보석감정원 김영출 원장은 ‘블랙 오팔이 도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반지’ 라는 한 줄 평을 했습니다. 김영출 원장에 따르면, 오팔의 크기가 다소 작은 것이 아쉽지만 블랙 오팔은 호주산 오팔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높은 가치를 지니는 보석입니다. 오팔의 경우, 4대 보석이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에 비하면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비교적 크기가 큰 오팔이 대중적으로 많이 유통됩니다.

특히, 호주는 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팔이 나는 산출지로 유명합니다. 이로 인해 호주를 여행한 관광객이나 방문객이 오팔을 구입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연석이 아닌 합성석(인공적으로 만든 보석)이나 접합석(더블릿(Doublet), 트리플릿(Triplet), 윗부분에만 오팔을 얇게 붙여 놓은 것)을 구입해온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점은 주의를 요합니다만 다행히 정유선 님의 반지는 진품이었습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큰 딸이 블랙 오팔 반지를 착용한 모습. 이번 주얼리 공모전을 위해 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정유선 님
올해 대학에 입학한 큰 딸이 블랙 오팔 반지를 착용한 모습. 이번 주얼리 공모전을 위해 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정유선 님

오팔은 스톤 속에 무지개 색이 보이는 플레이 오브 컬러(Play of Color, 유색 효과)라는 특수 효과가 돋보입니다. 밝은 빛 아래에서 보석을 천천히 돌려보면 유색 효과가 뚜렷합니다. 플레이 오브 컬러의 현란함 이야말로 오팔이라는 보석의 아름다움을 절정에 이르게 합니다.

정유선 님의 블랙 오팔은 크기가 8mm x 7mm, 더블 캐보션(Double Cabochon, 위아래를 볼록하게 연마한 형태), 투명도는 TL(Translucent, 반투명)입니다. 빛이 투과하지 않을 정도의 최상급 블랙 오팔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는, 작은 불꽃 같은 파이어(Fire)가 많이 나타나는 상태까지는 못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란한 유색 효과가 관찰됩니다. 사진상으로 실물처럼 신비한 색을 구현하지는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정유선 님은 매서운 한파가 계속되던 1월말의 어느 날, 감정 쿠폰과 사연 속의 반지를 들고 종로3가에 있는 한미보석감정원으로 향했습니다. 보석감정원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박사님께서 친절하게 맞아 주었고, 반지를 맡긴 후 두시간 가량 기다렸다가 보석 감별서를 받았습니다. 정유선 님은 감정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감별서를 받고 보니 그동안 숨어 있었던 반지에 새로운 생명이 생긴 듯 가슴이 벅차 올랐다. 반지와 함께 잘 보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다이 마이트(G’day mate)’처럼 이번 공모전으로 인해 잊혀졌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선물했던, 지금은 내 손에 꼭 맞는 작은 반지의 소중함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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