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부터 2022년까지 대사관 근무
유일한 정통 미국 디저트 외길 인생
한국과 달리 경력보단 능력 인정해줘

미국 대사관에서 45년 간 디저트를 요리 한 유란자 씨. /김현우 기자
미국 대사관에서 45년 간 디저트를 요리 한 유란자 씨. /김현우 기자

"내 손을 거쳐간 디저트, 미국 대통령 7명 입으로 들어갔다."

지미 카터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무려 45년을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한 디저트 요리사가 있다. 

28일 여성경제신문 '더우먼'은 서울 종로구에서 '더크림' 베이커리 가게를 운영하는 유란자 씨를 만났다. 그는 1977년부터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올해 퇴임해 민간인으로 돌아왔다. 

그는 45년의 세월 동안 미국 대사관에서 베이커리 등 디저트 요리를 담당했다. 자타공인 '미국보다 더 미국의 디저트 맛을 느낄 수 있다'는 미국 디저트 전문가다. 그가 지켜본 미국 대통령만 해도 7명에 달한다.

이들 모두 내한 당시 티 파티(Tea Party)에서 유란자 씨가 만든 디저트와 에피타이저를 맛봤다. 뿐만 아니라 미 대사관을 찾은 유명 인사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유란자 씨를 만나 그 일화를 들어봤다. 

미국의 제 41대 조지 부시 대통령과 유정자씨(왼쪽 첫 번째)가 찍은 사진. /김현우 기자
미국의 제 41대 조지 부시 대통령과 유란자 씨(왼쪽 첫 번째)가 함께 찍은 사진. /김현우 기자

— 미국 대사관에선 어떻게 일하게 되었는지

"공고가 떠서 지원했다. 사실 그 전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취미 삼아 디저트를 만들다 우연히 미국 대사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 45년을 한 곳에서 일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일하다 보니 그렇게 됐더라. 1977년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미국 대통령이 '지미 카터'였다. 방한했을 때 봤다."

— 디저트 요리사였다고

"그렇다. 미국 대사관 내에는 메인 쿡(주식) 요리사가 있고, 디저트 요리사도 있다. 메인 음식이 나간 후 제공되는 빵 등 간단한 디저트를 만들었다."

1993년 취임한 미국 제42대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유란자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찍은 사진. /김현우 기자
1993년 취임한 미국 제42대 빌 클린턴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유란자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찍은 사진. /김현우 기자

— 레시피는 본인이 직접 연구했는지

"대체로 직접 만든 것도 있지만, 한국으로 발령받은 미국 대사의 영부인이 레시피를 공유해주는 경우도 있다. 미국 현지에서 대사 가족이 좋아했던 디저트 레시피를 직접 적어서 주방으로 가져온다. 그 레시피를 토대로 디저트를 만들었다." 

— 대사관 디저트는 재료부터 다를 것 같다.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디저트와 차별점은

"미국 대사관 내에서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미군 부대에서 가져온다. 한국에서 재료를 사지 않는다. 용산 미군 기지에서 대사관으로 재료를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고, 내가 직접 가서 장을 봐오기도 했다. 한국에서 만드는 서양 디저트와 차별점은 쿠키로 예를 들면 미국 본토의 쿠키가 조금 더 쫄깃하다. 밀가루를 적게 사용하고 오트밀을 많이 넣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그 반대다." 

미 대사관 관저에 미국 대통령 티 파티(Tea Party)에 올라가는 에피타이저. 유란자 씨가 직접 만들었다. /더크림
미 대사관 관저에 미국 대통령 티 파티(Tea Party)에 올라가는 에피타이저. 유란자 씨가 직접 만들었다. /더크림

— 역대 미국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많다. 재밌는 일화가 있는지

"사실 의외로 특별히 생각나는 일화는 없다. 주로 대사관에서 대사와 직원들과 지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대부분 1박 2일, 혹은 2박 3일 정도의 짧은 시간 한국에 머물러서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 그래도 우리가 몰랐던 미국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라도 부탁한다

"한 가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을 기점으로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묵는 숙소가 달라졌다. 이유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연관되어 있다. 부시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덕수궁 근처에 있는 대사관 관저를 미국 대통령 숙소로 썼다. 그런데 주변에 고층 빌딩이 많아지면서 보안을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부턴 호텔에서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때부터 미국 대통령을 직접 볼 기회가 줄어 아쉬웠다." 

— 45년을 한 곳에서 근무했는데, 미국에 가서 인생 2막을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것 같다

"당연히 미국으로 이민을 가 생활하는 것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한국이 내 고국이고 내가 미국 대사관에서 익힌 디저트 레시피를 좀 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공유했으면 했다. 그래서 은퇴 후 지금의 베이커리 가게를 차리게 되었고 다행히도 많은 분이 사랑해주고 계신다."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 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유란자 씨(오른쪽 세 번째)와 찍은 사진. /김현우 기자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 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유란자 씨(오른쪽 세 번째)와 찍은 사진. /김현우 기자

— 여성으로서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더구나 가정까지 있는데 말이다.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처음에는 영어로 된 레시피를 보고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고 경력이 쌓이게 되면서 내 일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또 미국 사람들 인식이랄까 그들의 사고방식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조금 다르게 한 가지 일을 오랜 시간 한 것에 대해 리스펙(존경)을 많이 해줬다.

우리나라에서는 벌써 은퇴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나이보다 경력을 더 높은 가치로 생각해줬다. 따라서 나 역시 더 자부심을 느끼고 일을 했던 것 같다. 지난번 대사를 지낸 해리슨 대사는 직원 파티 때마다 45년 경력을 자랑스러워해 줘서 나를 꼭 언급해주었다. 직원들 앞에서 대표로 대사와 케이크 컷팅도 같이 했을 정도로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었다."

—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지금 하는 매장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여태까지 배우고 만든 오리지널 미국 디저트와 브런치를 많은 사람이 미국에까지 가지 않고도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

유란자 씨가 올해 은퇴할 때 미국 대사관에서 기증한 감사패. /김현우 기자
유란자 씨가 올해 은퇴할 때 미국 대사관에서 기증한 감사패.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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