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극복 희망수기 공모전 치매파트너부문 장려작]

 

1978년 7월 대학을 졸업하고 2018년 6월 은퇴하기까지 토목기술자로 살아온 40년간의 세월보다 은퇴 후 2년의 세월의 무게가 더 무겁고 보람되게 느낀다면 누가 믿겠는가?

넉넉지 않은 1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여느 가장들처럼 가족을 위하여 오로지 열심히 일만 하며 살다 보니, 한편으로는 저 자신에게 참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살았나, 후회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사실 은퇴 이후에도 큰 차이 없이 똑같이 하루하루를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직 건강한 신체와 건전한 정신이 있으니 무엇을 하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것이라 자신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은퇴하고 나니 크게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남은 시간과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제 생각과 의지와는 달리 육십 중반의 나이에 일자리나 배움의 기회를 얻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우선 제가 무엇을 수강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제 나이에 맞게, 또한 장차 제 문제이기도 한 ‘치매야 가라’ 수업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습니다. 제 아버지도 치매로 3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던 것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수업을 시작으로 심리상담, 수화, 그림 심리학, 사진 심리, 시와 수필 등을 차례로 신청하여 매일매일 즐겁게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어느새 제 나이와 성별 따위는 상관없이 함께 공부하는 동료이자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한국 열린사이버대학교 통합치유과에 편입하여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한 ‘치매야 가라’ 강의 덕분에 ‘인지행동 심리전문가’ 1,2급 자격증을 습득하여 ‘인지야 놀자’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중랑구 치매안심센터에서 2019년 1월부터 매주 하루씩 인지치료 강사와 치매파트너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이버대학교 학생으로 매월 월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미술치료, 음악치료 봉사자로 배우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고 순간순간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당황도 하였지만 저보다 적은 나이의 치매 내담자들을 보며 많은 연민과 열심히 도와주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친해져서 저를 보면 손바닥을 마주치는 60대 초반의 전직 은행원, 수줍은 듯 손을 내밀며 웃음 짓는 50대 후반의 여자분, 더구나 이분은 팔순의 친정어머니가 매일 데리고 오셔서 저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건축엔지니어 출신인 60대 초반, 본인이 치매환자인지 모르시면서 오신 분, 90대 어르신, 한 반에 10명 정도의 내담자들과 씨름을 하고 나면 기운도 빠지고 힘도 들지만 고맙다고 웃으시는 그 모습에 다시 수업하게 됩니다. 매주 기다리는 그분들이 보고 싶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1년 동안의 자원봉사 시간이 360시간을 넘어 구청에서 자원봉사 메달을 수령하였습니다. 항상 처음 봉사하는 후배들에게 봉사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고 또한 나의 마음이 힐링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1년 동안 하루도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하였다는 게 나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여주고 싶습니다.

점점 봉사 범위가 센터에서의 미술, 음악, 인지치료뿐만 아니라 치매어르신 가족 방문, 치매 가족 치유까지 담당하게 되어 ‘치매 전문 봉사단’의 단장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치매기억친구 리더로서 작년에는 100여 명의 기억친구를 배출하였으며 서울시 생명 지킴 활동가로서 준사례 관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강동구 천호3동에 거주하는 치매독거노인을 만나고 왔습니다. 작년 9월에 제2기 치매공공후견인 교육을 이수하여 금년 7월부터 후견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4살 많은 70대 초반의 남자분이 처음과는 달리 문을 열어 반갑게 맞이합니다.

강동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위촉장을 받고 회의 시 독거노인이 매우 날카롭고 남을 믿지 않고, 말도 적어서 조금은 힘이 들 것이라는 말에 많은 걱정을 하였습니다. 치매안심센터 담당자와 같이 만난 첫 번째 만남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많은 대화도 하고 저 역시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5번째 만남의 오늘은 저를 만나서 즐겁고 기다려진다는 말에 보람을 느낍니다. 항상 식사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좋아하는 빵과 우유를 같이 먹고 나서는 내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10여 명의 내담자와 인지 치료봉사 때와는 달리 내가 한 사람을 직접 돌보아 준다는데 보람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돌아오는 길에 4살 아래인 내가 먼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내년이면 70이 되는 내가 얼마나 더 봉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지? 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 보기도 하지만, 내가 이 시간에 활동을 안 하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반문하여 봅니다. 은퇴 후 처음 수강한 교육이 치매 관련 교육이 되고 또 여기까지 왔지만 보람되고 제2의 인생이 치매로부터 시작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40년의 세월을 2년의 시간과 비교한다면 시간의 길이보다는 제가 느끼는 무게는 2년의 세월이 더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제가 생각하고 결정하고 사는 인생이라 더욱 보람된 인생이라 하겠지요. 치매안심센터로 복지관으로 정신없이 다니고 또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외되고 어려운 그들을 위하여 남은 인생을 소진하겠습니다.

저 촛불같이, 남을 위하여 자기 몸을 아낌없이 불태우는 촛불같이 내가 가지고 있는 열정을 다 소진하고 봉사하겠습니다. 끝으로 여기까지 오게끔 도와주신 중랑구보건소와 중랑구 치매안심센터 직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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