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극복 희망수기 공모전 치매파트너부문 장려작]

지극히 평범한 저의 일상적인 주중에 토요일 단 하루만큼은 여느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일상이 시작되고 누구보다 보람차고 뿌듯하고 에너지가 샘솟는 날이다. 왜냐하면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우리 어르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치매 어르신들이 많아지는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하였고, 그로인해 점점 치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여러 치매 관련 교육을 들었다. 교육을 들으면서 호기심도 많이 생기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재능기부에 대해 알아보다가 데이케어센터 및 치매안심센터에서 시작하게 된 봉사활동이 이렇게 나의 특별한 토요일 일상이 되었다.
'오늘은 우리 어르신들과 어떤 활동을 해 볼까? 생각을 하며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릴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띠어진다. 오늘은 <인생 지도>라는 주제로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고 소개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치매의 특성상 최근 기억보다는 예전 기억의 상실이 적은 점을 감안하여 회상하는 시간을 가지며 어르신들의 기억력 향상을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예전에도 몇 차례 비슷한 활동을 시도해 보았는데 어르신들에게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 라포형성에 도움이 되어서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고 어르신들에게 적용해 보았다.
어르신들에게 우선 색 도화지와 색연필, 족자를 제공해 주었다. 어르신들은 나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오늘은 어떤 활동을 할지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나는 그 표정을 재빨리 눈치를 채고는 사전에 준비해 온 족자를 펼쳐서 보여 드리며, 정 중앙에 자신 이름을 적고, 자신에 대해 회상해 보며 마인드맵을 하도록 안내해 드렸다.
이름을 중심으로 가지치기를 하여 어르신의 나이, 띠, 여행 다녀온 곳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 예전 직업, 고향, 어릴 적 꿈, 특기, 취미, 가족관계 등에 대해 자유롭게 적도록 하자 당황한 기색이 보이셨다.
몇몇 소수의 어르신들은 색연필을 들어서 해보려고 시도하셨지만, 대다수 어르신들은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어서 바로 생각이 나지가 않는다고 호소하며 선뜻 시작하지 못하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계셨다.
글자 쓰는 것에 서툰 어르신들도 몇 분 계셨다. 내가 돌아다니면서 어르신들이 최대한 잘 회상해 낼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이렇게 시작하는 가사가 오동동 타령인가요?” “할머니들은 가수 이미자 많이 좋아하시던데, 가수 이미자 아세요?”
“저는 순대를 좋아하는데, 어르신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세요?”
“학창시절에 별명 있으셨어요? 별명이 무엇이었어요?”
<인생 지도>란 주제로 족자를 만드는 활동을 진행하면서 점점 어르신들의 표정은 봄에 개나리가 노랗게 활짝 피듯 어르신들의 얼굴에 미소와 행복함으로 가득하였다. 정말 잠깐이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간 동안 우리 어르신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에 젖어 과거의 행복한 그 시간으로 마치 추억여행을 간 듯 하셨다.
“나는 교회를 정말 열심히 다니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서 다시 태어난 다면 교회 선생님을 하고 싶어요.”
“내 고향은 평안남도야. 6·25때 남한으로 피난을 왔지.”
“내가 옛날에 국수를 참 잘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정말 행복했어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어르신 개개인이 하시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퍼즐 조각처럼 맞춰져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그 순간이었다.
오늘은 족자를 만드는 이 활동을 계기로 어르신들 서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들이었다고 모두 흡족해 하셨다. 이런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항상 나의 마음 한편에는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해를 거듭하여 연세가 드시면서 치매를 앓고 계시긴 하지만, 어르신들도 나와 같은 나이에는 꽃다운 시절을 보내고 아름답고 건강하셨을 텐데···.’
또한, 어르신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그리고 내가 학창시절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할머니, 외할머니가 너무나 그립다. 그래서 어르신들에 대한 애착이 더 남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 치매가 한번 걸리면 모든 것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들 말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 녹색 불이던 신호등이 빨간불이 깜빡깜빡하며 위기상황이 된다고 생각하며 지레 겁을 먹는 경우가 아직은 우리 사회에 비일비재하다. 그런 것을 볼 때면 정말 안타깝고 내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치매라고 과거와 현재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그 추억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닌데, 어르신의 머리 한구석엔 우리처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자그마한 그들만의 추억이 있고, 그 추억이 기억되는 머릿속의 작지만, 아름다운 공간이 있을 텐데 그 공간마저도 우리의 선입견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을 하게 된다.
비록 연세가 들어감에 따라 몸이 많이 쇠약해지고 치매로 인해 건강하지 않지만 우리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평생 느껴보지 못한 따뜻한 사랑과 정을 느끼고 인생을 배운다.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세상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어르신들이 있어서 이 세상이 아직은 밝고 행복한 것 같다. 오늘은 내일이 되면 과거가 되고, 오늘의 일은 나중에 어르신들과 나의 기억 속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젠 내가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그런 존재가 되어 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