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 전세계로 번져가는 공급 위기
전력 시장 하루 가동해 하루 쓰는 곳
발전 물량 부족 시 언제든 블랙 아웃

유럽 최대 항구인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선이 정박하고 있다. /로테르담 항구
유럽 최대 항구인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선이 정박하고 있다. /로테르담 항구

국제 유가는 진정세를 띠고 있지만 액화천연가스(LNG) 수급은 갈수록 비상이다. 21세기 겨울 유럽에서 얼어죽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는 가운데 LNG 가격 급등은 국내 민생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18일 에너지업계에선 정부가 검토 중인 SMP 상한제 실시를 멈추고 원가주의에 충실한 LNG 수급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유럽에서 시작된 LNG 수급 불안이 미국에 이어 한국으로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일 네덜란드 거래소에서 유럽내 거래되는 천연가스 가격은 10% 폭등해 MM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량)당 73유로까지 치솟았다. 난방 수요가 치솟는 겨울이 오기도 전에 한여름 폭서 영향으로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LNG 물량의 대부분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유럽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수요가 급증하는 난방철이 다가오며 공급 불확실성이 부쩍 높아졌다"며 "이는 시장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실제 LNG 가격 급등의 파고는 아시아까지 밀려오고 있다. 전일 아시아 액화천연가스(LNG) 9월물 스팟 가격은 전주 대비 MMBtu당 7.3% 상승한 48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천연가스 선물 가격 역시 MMBtu당 9.329달러를 기록하며 전 거래일 대비 7% 가까이 상승했다.

LNG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올겨울 난방을 위해 최대한 가스를 아껴 저장해둬야 할 판인데도 한여름 무더위에 따른 전기 발전 수요가 유럽에서 급증했다"면서 "지금까진 유럽에 한정될 것으로 봤는데 한국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국제유가 하락 국면에 거꾸로 가는 LNG
정부 SMP 상한제 카드···민간 발전 위축

글로벌 경기 침체로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란 핵합의 타결 기대감이 겹친 효과로 풀이된다. 반면 LNG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단된 유럽향(向)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공급 정상화 없이는 하향 안정화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하루치를 발전해 하루치를 쓰는 전력시장은 발전 물량이 부족하거나 당일 수요가 적정예비율을 넘어설 경우 언제든지 블랙아웃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가스공사의 안일한 LNG 수급 대책으로 올해 겨울을 버티기 힘들 것이란 우려마저 제기된 실정이다.

이와 관련 가스공사는 "수급 관리에 어려움은 있지만 수요예측 실패에서 비롯한 수급난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세계가 물량 부족을 겪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가격 급등이 세계 3위 수입국인 한국에 미칠 영향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시아 LNG스팟 가격 추이와 한국의 연도별 LNG 수입량. 지난해 국내 LNG수입량은 4594만t을 기록하면서 2020년 수입량인 4000만t 대비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SK증권, 한국가스연맹.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아시아 LNG스팟 가격 추이와 한국의 연도별 LNG 수입량. 지난해 국내 LNG수입량은 4594만t을 기록하면서 2020년 수입량인 4000만t 대비 1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SK증권, 한국가스연맹.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지난 2020년에 발표된 14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을 보면 과거(1987년∼2020년)의 발전용 LNG 물량의 연평균 증가율이 8.1%로 잡혀 있다. 반면 한국가스연맹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LNG 수입량은 4600만t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더군다나 정부가 예측한 2021년 이후 14년간의 LNG 연평균 증가율은 0.48%로 잡혀 있다. 

계획 물량과 실제 도입 물량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추가 비용 발생도 불가피해진 것이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식으로 발전용 LNG 물량을 계산한다면 나중에 모자랄 것은 너무도 명백한 것이고 결국 현물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에 민간의 직도입 물량 비중이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SMP 상한제가 민간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동절기 LNG 수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 LNG를 직도입해 발전사업을 하는 민간기업은 SK E&S, 포스코에너지, GS에너지 등이 있다. 다시 말해 규모의 경제로 수입단가를 낮춰온 이들 기업이 한전에 판매하는 도매가격에 상한을 둘 경우 수급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동절기 시작 전인 11월까지 가스공사의 LNG 재고가 만재재고(저장시설의 약 90%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난 4월부터 현물구매 등으로 물량을 확보해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초 예측에 없었던 추가적인 LNG 구입비용은 14조원대의 한전의 재정적자 심화와 전기료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노동석 서울대학교 연구위원은 "민생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가장 나쁘고 열등한 방법이란 것이 한덕수 총리의 생각"이라며 "탈원전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우량기업이었던 7개 전력회사가 모두 부실화된 지난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원가주의 정책에 더욱 충실한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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