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만성화 일본···통화완화 정책 계속
엔화 약세에 '고환율=수출호조' 공식 깨져
물가 안정 유일한 카드 한미 통화 스와프
미국 유인 없어 소극적···위기시만 한시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퍼드로의 로스앤젤레스 항만에 대형 컨테이너선이 접안해 있다.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퍼드로의 로스앤젤레스 항만에 대형 컨테이너선이 접안해 있다. /연합뉴스

멈추지 않는 인플레이션에 무역수지 악화라는 악재가 더해졌다. 특히 한화가 일본 엔화와의 통화 약세 경쟁에서도 밀리면서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도 높아졌다.

20일 외환당국 등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지난주 중 109.290까지 올라 20년래 최고를 기록했다. 달러 가치는 올해 들어 10%가 넘게 뛰었고 이달 들어서 2.5% 가까이 상승했다.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섰다. 물론 엔화, 위안화, 유로화 등 경쟁국 통화 모두 약세다.

일반적으로 수출 기업은 원달러 환율이 1000원에서 1300원으로 오르면 제품 판매가도 300원 오르면서 이익이 증가한다. 반면 수입 비중이 큰 기업은 비용이 증가해 환율 상승기 어려움을 맞는다. 무역수지는 이처럼 외국에 상품을 팔아서 번 돈과 외국의 물건을 수입하기 위해 사용한 돈의 차이를 말한다. 그런데 이번 경제 위기 상황에선 고환율이 수출 호재가 된다는 공식이 깨졌다.

19일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수출은 158억달러로 집계됐다. 반면 수입은 213억달러를 기록해 무역수지는 55억28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본격화된 지난 4월부터 에너지 수입액이 크게 늘어난 것이 원인이다. 최대 교역국인 대중 무역수지가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11억~12억 달러 적자 행진이란 것도 적자 폭을 넓힌 요인으로 분석된다.

올 7월 들어 크게 급등한 원달러 환율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6월 발표한 무역수지 적자는 24억7200만 달러였다. 그런데 추가적인 대내외적 충격 없이도 불과 10여일 만에 적자가 55억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환율 상승기 한국의 무역수지는 엔화와의 상대 가격이 좌우한다. 원화보다 엔화가 약세를 띠어야 일본보다 수출이 더 잘 돼 수지를 끌어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원화가 엔화보다 상대적인 강세를 보이면서 원엔 환율이 950원대로 내려앉은 현실이다.

또 이같은 상황이 쉽게 바뀌긴 어려워 보인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디플레이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엔화 약세,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물가 상승 압력에도 불구하고 근원물가지수는 1997년 말 고점 대비 6.5%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엔화 약세 전략에 우호적인 통화완화 정책을 계속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달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미국과 장기금리 격차가 가장 큰 나라는 일본이 된다. 일본은행은 시중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국채 무제한 매입을 통해 장기금리를 0%로 유도하는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장기 금리차는 기관투자자들의 엔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의 소재가 된다. 엔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해 차익을 얻고 난 뒤 빌린 엔화를 다시 갚는 매매 기법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일 금리차 확대가 엔화 캐리 트레이드 증가로 이어질 경우 엔화 추가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상 국내 물가 급등을 타개할 정책 수단은 환율 안정 카드 말곤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방어하는 것은 비용만 들 뿐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원엔 환율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급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일 오전 9시 기준 100엔당 원화 환율이 942원까지 떨어졌다.
원엔 환율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급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일 오전 9시 기준 100엔당 원화 환율이 942원까지 떨어졌다.

5개국만 가입된 상설스와프 체결 어려워
美 연준 위기시 한시적 통화스와프 선호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방한과 함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에 다수의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다.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 한도 내에서 원화를 맡기고 달러화를 끌어올 수 있고 환율 안정화 전략을 펼칠 공간도 생기기 때문이다. 

연준과 상설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중앙은행은 영국·일본·스위스·캐나다·유로존 다섯 곳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과 금리 역전 상태지만 통화스와프가 환율 변동성을 줄이고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는 안전판이 된다.

반면 한국은 비상설 통화스와프 국가로 구분된다. 김형태 김앤장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통화스와프 대상을 확대할 유인이 없기 때문에 경제안보·동맹강화·반도체의 미국투자 확대 카드를 제시하며 미국 정부를 지속적 설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전일 윤석열 대통령 예방에 앞서 재닛 옐런 미재무부 장관도 상설 통화스와프 체결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한 2020년 3월 19일 통화스와프가 극적으로 이뤄진 바 있는 만큼 모니터링을 하다 위기가 발생하면 한시적으로 통화스와프를 가동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의 요구사항도 많아지고 있다. 옐런 장관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 실시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동참을 재차 요청했다. 이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원유 가격상한제는 국제 유가와 소비자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설계돼야 한다"며 "도입 취지에 공감하며 동참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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