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높은 가계대출·인플레이션, 주택가격 유지에 부정적 요인

지난달 27일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연합뉴스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한 정겨운 골목길에 눈이 내린다. 작은 금은방에는 크고 오래된 괘종시계의 침이 새벽을 가리키고 있다. 이내 시계포 주인은 아침을 열어젖히며 골목길에 쌓인 먼지를 쓸어낸다. 1980년대 서민의 애환을 그려낸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이다. 

당시 벽돌로 지어진 2층 양옥집이 옹기종기 맞대어 서 있는 골목길은 포크음악이 흐르고 된장국 내음이 저녁을 맞이하는 정겨운 공간이었다. 길 한 켠의 평상 위에는 아주머니들의 담소가 꽃을 피웠다. 지나가는 차가 딱지치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방해하는 일도 없었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흐르면서 골목은 사라지고 동네는 재개발됐다. 사람들은 높이 솟은 아파트 사이의 거리를 차로 이동하거나 총총걸음으로 발 빠르게 지나가는 삶이 일상이 됐다. 이제 동네는 정다운 삶의 장소가 아니라 평당 가격으로 재단되는 욕망의 공간이 됐다.

비정한 거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최근 아파트 가격이 너무 빠르게 상승해 왔다는 사실이다. 1988년 평당 300만원 하던 서울 아파트값은 작년 가을에 평당 4500만원을 넘어섰다. 88년 이후 33년간 15배 이상 상승했다. 

지난 5년간 서울에서 아파트 가격은 평균적으로 6억원이 올라 12억원이 되었다. 아파트값만 오른 것이 아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한국 전체 토지 가격은 국내총생산(GDP)의 5배에 이른다. 1990년대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기 직전 일본에 비견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가계의 부(wealth)가 증가해 소비가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투자를 해 부가적 수입을 얻을 수도 있다. 금융기관은 비교적 안정적인 부동산담보대출을 통해 영업이익을 늘리고 자본의 적정성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견실한 경제성장이 아니라 과도한 은행 빚의 증가에 의해 이루어졌을 때다. 버블이 붕괴되기 직전 일본의 부동산 가격 급등도 은행의 무분별한 대출에 의해 발생했다. 2000년대 중반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부동산 활황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최근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GDP 대비 107%에 이르렀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일반화된 미국도 80%가 안된다. 일본은 65%에 미치지 못한다. 이 비율은 2020년 2분기 98%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가계부채 중 73%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최근 급등한 가계대출이 주택 가격 상승의 주된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빚에 의존해 상승한 주택 가격이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급등한 자산 가격이 유지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경제가 꾸준히 성장한다면 그만큼 가계 소득도 증가하는 것이므로 높은 주택 가격을 떠받칠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 규모가 GDP를 넘어설 정도로 과도하게 높은 경우에는 금융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어, 소득 증가로 가격을 부양할 여력이 부족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확산하면서 경제성장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둘째로, 금융기관 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신규 주택 매수에 필요한 자금을 계속 공급하는 경우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집값이 5년 전 6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랐다고 하자. 매수 당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loan-to-value)이 70%였다면 4억2000만원까지 은행에서 차입해 집을 살 수 있었다. 나머지 1억8000만원의 현금이 추가로 필요했다.

10일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부동산 자금 대출 관련 현수막이 불어 있다./연합뉴스
10일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부동산 자금 대출 관련 현수막이 불어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현재는 집값이 올라 LTV가 70%라 하더라도 이 집을 사려면 3억6000만원의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집값을 잡기 위해 금융당국이 LTV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LTV가 50%로 내려간다면 6억원을 현금으로 내야 한다. 거기다 총부채상환비율(DTI, debt-to-income) 규제까지 적용되면 차입자의 연간 소득과 상환액을 반영해 대출액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LTV와 DTI와 같은 대출규제를 엄청나게 풀어 버리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게 될지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똑똑히 보여준다. 금융권은 DTI가 높아 대출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저소득층 차입자에게도 집값의 거의 95%에 달하는 돈을 대출해줬다. 

대출이 늘어날수록 금융권의 영업이익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금리가 상승하자 이들 서브프라임 모기지 차입자들이 대출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은행은 주저 없이 이 주택들을 차압(foreclosure)해 매물로 내놓았고 주택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LTV는 125%까지 치솟았고 주택 차압과 집값 하락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셋째로, 높은 수준의 집값이 상승세를 유지하려면 경제성장을 급격히 악화시킬 의외의 변수나 불확실성이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경기가 악화하면 가계 소득이 줄어 큰 규모로 늘어난 대출 원리금의 상환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넷째로, 금리의 급격한 상승이나 시중 유동성 감소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금리가 빠르게 오를 경우 변동 금리 대출의 이자 상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의 경우도 원리금 상환액수가 커져 주택에 대한 신규 매수를 위축시키게 된다.

그런데 현재 한국 경제를 둘러싼 세계 금융시장은 극도의 불확실성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 1위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은 연일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국제 원유가는 배럴당 130달러에 이르렀다.

미국 서민 가계의 생활비에 직결된 휘발유 가격도 마찬가지다. 갤런당 평균 4.15달러를 넘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문제는 원유 공급을 단기간에 증가시키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 유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상태다. 거기다 국제 물류망이 악화하면서 각종 원자재 가격과 식품 가격까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편, 이런 원자재와 상품 가격 급등이 물가가 한창 오르고 있는 상태에서 터졌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세는 두 달 전 이미 전년 대비 7%를 넘어섰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본격화하면 인플레이션율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물가가 오르면 가계의 소비지출이 줄어들어 경기가 위축된다.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 금리를 올리면 단기적으로 자산 시장과 실물 경제에 충격이 가해진다. 자산 가격 버블이 클수록 충격의 강도도 커진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급등한 주택 가격이 중장기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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