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금리 인상에 장단기 금리차 역전
물가 오르면서 경기 침체 가능성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워싱턴 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워싱턴 AFP=연합뉴스

천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틴 미국 남부의 상록 참나무 아래에 서면 영적인 감흥이 새롭게 일어난다. 길 양편을 가로 세로로 나직이 뻗어 하늘을 가린 나무줄기는 강건하지만 친근하다. 그 나무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스페인 이끼의 수염은 부드럽고 이국적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배경이 되는 앨라배마주 그린보우에도 라이브 오크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다리에 장애가 있던 어린 포레스트는 이웃 친구 제니와 함께 오크나무 가지에 앉아 끝없이 넓게 펼쳐진 지평선을 보면서 바깥세상을 꿈꾼다.

동네 악동들의 괴롭힘에서 도망치려는 포레스트가 “달려, 달리라고!”라는 제니의 외침에 용기를 얻어, 다리를 받치던 보호장비를 벗어 던져버리고 오크나무 아래를 신나게 뛰는 장면은 마침내 그가 독립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갈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가 직면한 바깥세상은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그때가 바로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포레스트에게도 징집 영장이 날아온다. 영화는 전쟁 장면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지만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전우는 생명을 잃고 상사는 두 다리를 잃는다. 전장을 떠나 귀국한 미국의 모습은 여전히 혼돈 그 자체였다.

강력한 반전운동 속에 히피와 마약 문화가 젊은이들의 영혼을 잠식했다. 이 와중에 포레스트는 해질녘 황금빛 낙조가 눈부시게 빛나는 멕시코만 입구에서 새우잡이에 나선다. 때마침 허리케인 카르멘(Carmen)이 일대를 덮쳐 다른 배들이 난파하자 포레스트는 큰돈을 번다. 

그러나 포레스트와 달리 당시 미국의 일반 시민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과 사회복지프로그램에 대한 지출로 상승 압박을 받아 오던 물가가 1973년 10월 터진 욤 키푸르(Yom Kippur) 전쟁으로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중동전쟁에서 미국과 서방 진영이 이집트와 아랍연합에 대항해 싸우던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아랍 진영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하고 원유 금수 조처를 했다. 전 세계가 이 조치로 오일쇼크에 직면했고 국제 원유 가격은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4배가 뛰었다. 

이로 인해 경기는 극심한 침체에 빠졌고 나스닥 주가지수는 1973년 1월 고점에서 60%나 급락했다.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미국 경제를 강타했다. 1974년 인플레이션율은 12%였지만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한편,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원유와 에너지를 포함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공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자 세계 경제가 1970년대에 이어 다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의 스태그플레이션 논쟁은 주류 경제학계보다는 채권시장의 수익률 곡선(yield curves) 전망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수익률 곡선은 각기 만기가 다른 채권들이 만기가 길어짐에 따라 수익률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 수익률 곡선은 대개 우상향(upward-sloping)한다. 단기채권보다 장기채권의 수익률이 높다는 얘기다. 채권을 장기간 보유할 때 생기는 불확실성에 대한 보상(premium)이 붙기 때문이다. 채권 투자자들은 채권을 발행한 정부와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채권 수익률은 금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제는 가끔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낮아지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수익률 곡선은 우하향하는 전도된(inverted) 모양을 가지게 된다. 이 금리의 장단기 역전은 미래의 단기금리가 현재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현재 1년짜리 금리가 1%라고 가정하자. 이제 A가 TV를 사기 위해 100만원을 2년간 빌리고자 한다. A는 이 돈을 전주 B로부터 우선 1년간 빌리고 다른 전주 C로부터 1년을 더 빌리거나, 같은 전주인 D로부터 2년간 빌릴 수 있다. 

채권시장의 수익률 곡선 전망으로부터 스태그플레이션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픽사베이
채권시장의 수익률 곡선 전망으로부터 스태그플레이션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픽사베이

만약 2년짜리 금리가 연 1%인데 1년 후 오늘 C로부터 100만원을 빌릴 때 지급할 금리가 0.5%라고 예상된다면, A는 당연히 B와 C로부터 각각 1년씩 돈을 빌릴 것이다. 따라서, 전주 D가 2년간 A에게 100만원을 빌려주고자 한다면 금리는 1%와 0.5%의 평균인 연 0.75% 상당이 되어야 한다. 이 경우 2년짜리 금리가 1년짜리 금리보다 낮아져 금리 역전이 발생한다.

이처럼 미래의 단기금리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면 미래 단기금리들의 평균치인 장기금리가 현재의 단기금리보다 낮아져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다. 그런데 장단기 금리 역전은 가까운 미래의 경기침체를 예상하는 ‘위기의 카나리아’ 역할을 한다. 

미래 단기금리가 현재 단기금리보다 낮다는 것은 연준이 미래에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하는데, 연준은 대개 경기침체를 예상할 때 금리를 인하하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미국에서 장기국채와 단기국채 간 금리 역전이 발생하면 거의 예외 없이 곧이어 경기 침체가 닥쳤다.

현재는 어떨까? 미 국채 10년 만기 채권과 2년 만기 채권의 금리차(spread)는 작년 4월 1.49%에서 계속 하락해 0.2%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곧 장단기 금리 간 역전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장단기 금리차가 낮아지는 근본적 이유는 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단기금리는 오르지만 장기금리는 실물경제 상황에 더 강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실제 경기침체가 온다면 기업의 실적이 악화되어 주가가 급락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주가의 향방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연준이 금리를 올린다고 하여 반드시 경기침체가 오는 것은 아니라 주장한다.

이들이 반례로 드는 것이 1994년 채권 대학살(Great Bond Massacre) 당시의 추억이다. 물가가 오를 조짐을 보이자 그해 초부터 연준은 빠르게 금리를 올렸다. 단기금리가 1년여 기간 동안 두배로 뛰었다. 장기채 금리도 따라 오르면서 채권 시장이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결국 장기금리가 꺾이면서 장단기 금리차가 0.15%로 축소됐지만 역전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 시기 연준이 단기금리를 두 배로 올렸지만 주가는 상승기조를 유지했다. 2015년 말 이후 금리 상승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향후의 경제와 시장 상황이 1994년이나 2015년 이후와 유사한 패턴을 보일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가장 큰 차이는 인플레이션의 정도이다. 

1994년 당시 인플레이션은 3%에 미치지 않았다. 2015년 이후에는 대개 1%대 물가 상승을 보였다. 당시의 금리인상은 물가 상승을 예방하려는 선제적 금리 인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연준은 4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물가를 실제로 잡기 위해 뒤늦은 금리 인상에 나섰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4%가 넘은 상태에서 연준이 추격전 양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경우에는 예외 없이 극심한 경기침체와 주식시장의 붕괴를 맛보았다. 2000년대 중반 아프간-이라크 전쟁, 1990년대 초 걸프전쟁, 그리고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이후가 모두 그랬다.

현재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도 이들 당시와 대비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그런데도 연준의 대처가 미숙하고 뒷북치기라는 점에서 1974년 당시와 가장 닮았다.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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