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이의 아취 단상(雅趣 斷想)]
4월의 사물, 떡살
수고와 정성을 가득 담아
떡에 살을 박은 절편

이번 주에도 떡집을 벌써 두 번이나 들렀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아침으로 인절미나 약식을 먹기도 하지만 하교 후 간식을 찾는 아이의 입에 과자나 초콜릿보다 좀 더 건강하고 든든한 간식을 넣어주고 싶어서이다.

가래떡, 꿀떡, 호박떡, 인절미, 영양 찰떡··· 쓰다 보니 침이 고이긴 하지만 하여튼, 아이가 질리지 않게 다양한 떡을 번갈아 사 먹이면서도 오늘은 무슨 떡을 고르지 하며 갑자기 너무 고민이 되는 순간이 올 때면 늘 찾게 되는 기본템이 있다. 

개인적으로 떡 중의 기본템이라 생각하는 절편 /프레스 모멘트
개인적으로 떡 중의 기본템이라 생각하는 절편 /프레스 모멘트

바로 절편이다. 콩이나 밤, 대추 같은 부재료가 들어가 영양분이 많다거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꿀(설탕)이 들어있어 달콤하다거나 특별한 맛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별 기대 없이 입에 넣으려는 순간 고소한 냄새로 끌어당겨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입안에 들어가고, 그다음부터는 나도 모르게 두세 덩어리는 뚝딱 먹게 되는 절편. 흰떡이면 흰떡대로, 쑥떡이면 쑥떡대로, 떡 위에 가득 발라진 참기름과 더불어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그대로 살려내는 절편은 떡 중에서도 제일 기본이 되는 떡이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떡집을 자주 가다 보니 좀 아쉬운 게 생겼다. 예전에는 꽃무늬, 줄무늬, 복(福) 자가 새겨진 무늬, 격자무늬, 만자(卍) 무늬 절편도 꽤 볼 수 있었는데 요새는 거의 줄무늬나 단순한 모양의 꽃무늬 정도가 다인 것 같다. 

선, 원, 꽃,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의 떡살 /국가유산청
선, 원, 꽃, 당초문, 초화문, 물고기, 나비, 칠보문, 귀갑문, 구름문, 연화문 등 다채로운 문양의 떡살 /국가유산청

언제부터 떡의 무늬를 그렇게 신경 쓰고 먹었냐고 물으면 딱히 대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집 안 한구석에 놓여있던 떡살이나 다식판을 보고 자란 영향이 아닐까 싶다. 나무로 만들어진 떡살과 다식판을 손끝으로 짚어 조각된 무늬가 찍혔을 때의 문양을 상상해 보면서 왠지 모를 다정함과 수고스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 오래된 기억을 다시 떠올린 건 지난 2023년 10월이었다. 육아와 살림의 허들을 겨우겨우 넘어가며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자아를 향한 질문들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던 시기, 남편은 회사에서 파주로 워크숍을 다녀오더니 내가 좋아할 만한 곳에 다녀왔다며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사실 아이들을 데리고 조금이라도 멀리 외출할라치면 여벌 옷에 기저귀 등 챙겨야 할 아이들 짐, 이유식, 아이들 낮잠 시간 등을 고려하는 게 부담스럽고 힘들었던 나는 가까운 놀이터나 도서관 같은 곳이 아니면 엄두를 잘 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차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파주까지 가야 한다니 출발 전부터 이미 피곤했지만 어떤 곳이기에 남편이 나를 떠올렸을까 싶어 궁금했다. 

개방형 수장고인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내 떡살 전시 전경 /프레스 모멘트
개방형 수장고인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내 떡살 전시 전경 /프레스 모멘트

그리고 얼마 있다가 가족이 다 함께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에 방문했고 개방형 수장고 형태로 전시된 한국의 유물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여기서 보았던 떡살, 소반, 표주박, 광주리 등이 올해 달력에 모두 그려져 있으니 남편은 희미하다 못해 사라질 지경인 내가 안개를 헤치고 다시 길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문을 열어준 셈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떡살을 보았을 때 어린 시절 눈과 손으로 떡살을 보고 만지며 좋아했던 기억을 떠올렸고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레터프레스로 찍어내고 싶다는 생각에 작은 탄성을 질렀다. 

개방형 수장고인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내 전시된 떡살(상세) /프레스 모멘트
개방형 수장고인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내 전시된 떡살(상세) /프레스 모멘트

수장고에서 본 떡살만 해도 그 종류가 어마어마했다. 그 이후 떡살 무늬의 종류와 그 의미에 대해 찾은 것들을 쓰려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내가 찾아낸 것들은 사막의 모래알 한 줌 정도 되려나. 심심하고 아무 개성도 없을 법한 절편의 표면에 떡살을 눌러 여러 가지 무늬를 찍어내는 걸 ‘살을 박는다’라고 표현하는데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무늬가 달랐다.

화려한 꽃무늬는 잔칫상을 차릴 때, 오래 살고 복되며 건강하고 편안하길 기원하는 수복강녕(壽福康寧) 문자문은 사돈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떡을 보낼 때, 다산과 복을 기원하는 석류문이나 포도문, 그리고 부부의 금실과 기쁨·장수의 의미를 가진 나비문은 혼례식 때 사용했다. 지방에 따라 사용하는 떡살 무늬도 조금씩 달라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는 빗살무늬 같은 단조로운 문양을 쓴 반면, 해안지방에서는 물고기문, 물결문, 새우문을 절편에 새겼다. 

절편과 떡살 /위키백과
절편과 떡살 /위키백과

이 중에 제일 멋있게 느껴진 건 기념으로 선물하는 떡에 문양 외에 선물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겨 넣기도 했다는 거다. ‘이 떡 내가 주는 거야, 맛있게 먹어.’ 무늬만으로도 누구 집안 떡인지 알았다고 하니 요새 말 같아서는 정말 떡에 플렉스하는 느낌이랄까. 

절편 만드는 과정을 나름 상상해 본다. 떡을 쪄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을 참기름을 발라 얼른 입에 넣어 배를 채워도 모자랄 판에 우리네 조상들은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는 문양을 고안하여 나뭇조각을 잘하는 사람에게 떡살을 만들어달라고 미리 주문했을 것이다.

조각가는 그에 맞는 나무를 고르고 실수로 선이 나가지 않게 정성을 들여 한참 동안 문양판을 조각했을 것이다. 떡살을 전해 받은 여성들은 떡을 쪄서 떡살로 수고스럽게 눌러가며 살을 박아 예쁘고 아름답게 떡을 만들어 상에 올리거나 선물하고 나누어 먹었을 것이다. 

그 바탕에는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있으니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좋은 일을 축하하며 다 같이 맛있게 먹고 좋은 일이 더 많이 있길 바라는 길상(吉祥; 운수가 좋을 조짐)과 기복(祈福; 복을 빎)의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2025년 프레스 모멘트 4월 달력 밑그림과 달력/프레스 모멘트
2025년 프레스 모멘트 4월 달력 밑그림과 달력/프레스 모멘트

내가 만든 달력을 떡에 살을 박는 수고와 정성스러움에 감히 비교할까 싶으면서도 좋은 의미의 무늬를 골라 떡살 그림을 그리고 레터프레스로 한 장 한 장 찍어내면서 이 달력을 보는 사람들에게 한 달 혹은 일 년 동안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옛사람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금방 먹을 떡에도 소를(살을) 박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밟아야 할 순서는 밟아야 하며 갖추어야 할 격식은 갖추어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여기에서의 순서와 격식은 결국 수고와 정성스러운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더 다양한 종류의 문양이 찍힌 절편을 먹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어본다.

2025년 프레스 모멘트 4월 달력과 떡살 /room805_cobe 인스타그램
2025년 프레스 모멘트 4월 달력과 떡살 /room805_kobe 인스타그램

여성경제신문 최진이 레터프레스 작업자·프레스 모멘트 대표 press.pressmomen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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