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에코테인먼트]
식민지 잔재, 해군기지, 그리고 벚꽃
진해의 근대 유산과 이순신의 영광
봄이면 벚꽃이 터널을 이루는 여좌천을 조용히 걸어본다. 봄이 아니어도 좋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계절보다 늦은 가을도 좋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가 생태관광엔 더 적합하다. 벚나무 사이로 들리는 물소리,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 수목 아래 스며드는 햇살까지 느껴본다. 여기는 창원시 진해구이다.
벚나무길은 진해역 뒤편에서 진해내수면 환경생태공원에 이르는 동안 장관을 보인다. 습지식물과 나무들이 조성된 이 공원은 진해군항제를 생태적으로 즐기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생태 학습과 휴식이 함께 가능하다.
벚꽃뿐 아니라 습지의 수생식물, 저수지 주변 생태계도 관찰할 수 있다. 물론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나 보이는 공간이다. 생태공원은 그곳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진해 군청 뒷산에도 조성되어 있다. 진해드림파크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다시 뒤돌아 진해역 앞으로 가 북원사거리로 간다. 진해에는 원형의 로터리가 두 개 더 있다. 중원로터리, 남원로터리이다.
북원로터리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이곳이 근대 문화 역사길의 시작점이다. 일제강점기 제국군의 군항 도시로 설계된 진해가, 해방 이후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을 상징한다. 진해는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군항이다. 그러므로 진해를 벚꽃 말고도 역사를 기억하는 도시로 기억하여야 한다.
중원로터리는 8개의 길이 교차한다. 진해 근대도시 설계 당시 중심축이다. 방사형으로 거리들이 뻗어나가고, 그 중심에는 커다란 잔디 광장이 있다. 이곳에 1912년 지어졌다는 진해우체국이 있다. 러시아 사람들이 건축했단다. 그 방향으로 더 걸으면 제황산으로 오르는 계단과 모노레일이 있다. 그 계단은 일제강점기 시절 신사로 오르는 길이다.
각도를 90도로 틀어 걸으면 일본 장옥거리가 나온다. 식민지 시절 일본풍의 2층 목조건물이다. 아래층은 상가이고 위층은 주택으로 처음부터 지었다. 지금도 아주 예스러운 인쇄소들이 영업한다.

그리고 남원로터리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여러 길로 걷다 보면 일본 장교들의 술집이었던 뾰족한 육각 집, 중공군 포로 출신이 개업했다는 중식당 원해루, 진해 군항 마을 거리들을 볼 수 있다. 원해루는 얼마 전 문을 닫았다.
가는 길에 예쁜 카페들이 있어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로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근대 문화 역사길이라 이름을 지은 만큼 백 년 전의 모습과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여 색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그러나 마음이 불편하다. 근대화, 근대 문화유산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근대화’라는 말이 자연에서 문명으로, 미개에서 진보로 발전한다는 선형적 발전 서사를 말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이는 서구 제국주의의 시간 프레임에 종속된 개념이다. 근대화는 곧 발전이라는 등식은 사실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하부 구조로 편입된 결과이지, 자주적 발전이 아니다. 하나의 나라가 제국 열강에 의해 수탈되는 과정일 뿐이다.
더구나 방금 걸었던 곳들은 조선 사람들이 살던 마을을 통째로 덜어내어 사람들을 쫓아내고 집과 땅을 빼앗아 일제의 욕망대로 지어댄 파괴와 수탈의 흔적이다.
그것을 문화유산이라고, 식민지 권력의 산물이었던 건축물, 거리, 디자인을 ‘문화유산’이라는 말로 미화하여 수탈과 억압의 아픈 흔적들을 미적 대상으로만 전환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이러한 포장이 그래도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시켜 줬다는 식의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흐른다.
마찬가지로 군산에서도 일본식 가옥과 건물, 항만, 철도, 상업시설들을 놓고 ‘군산시간여행축제’를 벌인다. 그러나 수탈과 억압의 식민지 시절의 기억을 외면한 채 그 시절의 모던 보이 낭만을 이야기하고 경제 효과만 강조되는 것이 아쉽다.
관광은 즐기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관광이란 공간을 바라보며 지나간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물론 진해와 군산이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진해는 원래 ‘진해요항부’였다. 일제가 군사적 요충지로 개발하며 항만도시로 만들었고, 벚나무도 그때 심어졌다. 해방 후 우리는 이 도시를 되찾았고, 지금은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군항의 도시가 됐다.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승전의 역사도 다시 찾아냈다.
진해는 왜 벚꽃으로 유명해졌을까? 일제강점기인 1922년 일본군은 진해에 군항을 건설하면서 벚나무를 심었다. 해방이 되자 진해 시민들은 벚나무들을 모두 뽑아내어 땔감으로 쓰거나 버렸다. 벚꽃은 일제의 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난다. 1962년 식물학자들이 진해 지역 벚나무가 토종 왕벚나무(제주 왕벚나무 계열)라는 연구를 발표했다. 또한 진해의 벚나무가 모두 일본이 심은 나무라는 인식이 오류일 수 있다는 반론도 나왔다.
마침내 2001년 일본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유전자 검사 결과 제주도 한라산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 토종 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상징이 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던 것이다.
벚나무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한 나무이다. 팔만대장경에 쓰인 목재의 60%가 벚나무이다. 임진왜란 시절 우리의 주력 무기인 활에도 벚나무 껍질이 쓰였다. 벚나무 껍질을 화피라 하는데 난중일기에 이순신 장군이 ‘화피를 받았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벚나무가 우리 것인데 무지해서 몽땅 베어버렸다는 비난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지가 아니라 일제의 잔재를 없애려는 진해 사람들의 결기이다.
진해는 그 후 제주산 왕벚나무를 가져다 벚나무 심기 운동을 전개했다. 진해 벚꽃축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일제의 잔재라고 여겼던 벚나무가 이제는 진해를 상징하는 생태 자원이 되었다. 진해 벚꽃축제는 전국에서 가장 큰 생태 축제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난 5월 창원시의회 본회의에서 이종하 창원시의원은 진해의 벚나무를 조사해 보니 무려 96%가 토종 왕벚나무가 아닌 일본산 소메이요시노 품종이라는 발표를 한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반전이 또 일어날 판이다.
진해 시내를 뒤로 하고,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수산시장 동부 회센터를 거쳐 풍호동으로 가면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가 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전파하는 연수기관이다. 이순신 장군 체험관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가끔 교육 관계로 이용하는데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다.
이순신리더십국제센터는 진해의 또 다른 생태관광의 시작점이다. 진해 바다 리더십센터에서 시작하여 진해항 부두를 따라 행암동까지 가는 길이 매우 좋다. 진해가 아름다운 바다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한참을 걸었지만 바다와 기찻길이 함께 해 지루하지 않다. 가는 길에 절벽에 지어진 행암문예마루라는 복합 문화시설은 전망이 참 좋을뿐더러 책을 읽고 싶게 하는 공간이다.

진해의 생태관광을 마무리하는 곳은 진해드림파크이다. 진해 군청 뒷산에 조성된 방대한 생태공원이다. 생태 온실과 생태탐방로, 생태숲 학습관, 진해만생태숲이 조성되어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파크골프장이 2개 있다. 바로 밑에 있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훌륭한 생태숲을 품고 있는 셈이다.
숲을 복원하고 숲 체험 시설을 지어 놓았지만 특별한 콘텐츠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다. 생태공원이라는데 그곳의 생태계를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민간이 운영하는 진해 보타닉뮤지엄은 흥미롭다. 보통 식물원에서 느낄 수 없는 재미있는 테마와 콘텐츠가 있어서 추천한다.

마침 방문한 시점이 핼러윈 축제를 앞둔 시기라서 보타닉뮤지엄은 핼러윈 귀신과 호박 인형으로 식물원의 내부와 외부를 꾸며 놓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핼러윈 축제만큼은 우리에게 남다른 기억으로 새겨져 있지 않은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이래저래 진해는 역사와 생태가 함께 하는 곳인가 보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