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에코테인먼트]
갈매기는 바닷물을 들이키며
먹이를 찾는 바다의 청소부
독도 갈매기의 DNA는 한반도

가을을 넘어 겨울로 가는 길목에 단풍이 한창인 설악산을 품은 강원도 속초로 향했다. 이번 나들이는 단풍보다는 항구 풍경이 궁금해서 나선 길이다. 속초항 인근의 ‘오징어 난전’으로 향했다. 불친절한 몇몇 상인 때문에 오징어 난전이 부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그곳은 바다 내음과 사람 사는 냄새가 섞여 묘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오징어를 썰고 양미리를 굽는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출렁이는 파도를 안주 삼고 있는데, 불청객이자 이 구역의 터줏대감인 갈매기 떼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귀여운 듯 성깔 있어 보이는 갈매기. 나는 슬그머니 손에 들고 있던 국민 과자, 새우깡 하나를 허공으로 툭 던졌다.

녀석들은 처음엔 멈칫했다. 야생의 본능으로 낯선 이를 탐색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손끝의 각도를 계산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정적은 잠시. 한 녀석이 날렵한 곡예비행으로 과자를 낚아채자, 그것은 일종의 신호탄이 되었다.

삭막한 도시를 떠나 바다를 찾은 우리에게, 갈매기와의 짧은 교감은 자연과 연결되는 가장 직관적이고 유쾌한 ‘에코테인먼트(Eco-tainment)’의 순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후 녀석들은 내 손짓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능숙하게 과자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역시나 이 녀석들 새우깡을 던지는 족족 순서대로 낚아챈다. 단순한 식탐이 아니라 고도의 두뇌 플레이를 하고 있다. 질서 있게 받아먹으니 말이다.

우리가 바닷가에서 흔히 마주치는 갈매기는 겉보기엔 멍해 보여도 동물행동학적으로 상당히 영리한 조류다. 먹이를 주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거나, 특정 장소와 시간대에 먹이가 풍부하다는 사실을 학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처음에 머뭇거리던 녀석들이 이내 적극적으로 달려든, 나의 행동이 ‘위협’이 아닌 ‘호의’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팩트 체크를 하나 하고 넘어가자. 사람들은 바다의 하얀 새를 뭉뚱그려 ‘갈매기’라 부르지만, 속초항을 지키는 이 녀석들의 정식 명칭은 괭이갈매기다. 울음소리가 고양이(괭이)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괭이갈매기는 한반도에서 사는 텃새다.

텃새인 갈매기는 괭이갈매기와 한국재갈매기가 있다. 갈매기는 종류가 총 38종이 되는데 대부분 철새이다. 그래도 한반도에서는 괭이갈매기와 한국재갈매기가 대세를 이룬다. 지금 내 앞에서 새우깡을 받아먹으며 ‘야옹’ 소리를 낼 것 같은 녀석들은 별명이 '새우깡 갈매기'인 괭이갈매기들이다.

이쯤 되면 독자 여러분은 걱정이 앞설 것이다. “전문가 양반, 사람이 먹는 짠 과자를 줘도 괜찮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허하노라.”

갈매기는 잡식성으로 물고기뿐만 아니라 바다의 음식물 찌꺼기까지 처리하는 ‘바다의 청소부’다.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눈 위에 있는 ‘염류선’이라는 특수 기관이다.

갈매기는 생존을 위해 바닷물을 마시기도 하는데, 이때 들어온 과도한 염분은 혈액을 통해 염류선으로 이동하고 농축된 소금물 형태로 콧구멍을 통해 배출된다. 짠 바닷물도 정수해 마시는 자체 정수기를 탑재한 녀석들에게 고작 과자의 염분 정도는 콧방귀(정확히는 콧물) 한 번 뀌면 해결될 일이다.

먹이를 먹을 때 바닷속으로 잠수하고는 물고기 잔해를, 바닷물을 쭉 들이키면서 흡입하기 때문에 새우깡 정도는 담백한 간식이자. 보양식이다.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받아먹는 것은 학습된 결과이다. 가장 많이 학습된 갈매기는 인천 앞바다 갈매기이다. 그러고는 속초 갈매기이다. 

일전에 삼척 장호항 인근에 가서 갈매기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곳 해안 절벽에 독도 갈매기들이 살기 때문이다. 독도 갈매기는 괭이갈매기 중 독도에 사는 괭이갈매기를 독도 갈매기라 부른다.

여기 갈매기는 새우깡에 익숙하지 않다. 몇 번을 던져줘도 잘 받아먹지 않는다. 사람들이 새우깡을 자주 던져주지 않아서 그렇다. 그래도 한 시간에 걸쳐 마냥 던져주니 어느 놈이 받아먹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차츰 여러 마리가 받아먹으면서 줄을 이어서 받아먹는다. 학습효과이다. 뭐든 훈련하면 된다. 

주문진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갈매기들 /게티이미지뱅크
주문진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갈매기들 /게티이미지뱅크

삼척 장호항의 독도 괭이갈매기는 특이하게 독도가 아닌 삼척 장호항 절벽에 산다. 그래서 독도에 사는 갈매기들의 생태를 알 수 있어 관찰을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안타까운 일이 있으니, 개체수가 잘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인근 마을에 사는 고양이들이 밤에 몰래 다가가 갈매기알들과 새끼 갈매기를 잡아먹어서이다.

고양이가 새들에게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졌지만 대책이 어렵다. 장호항 서식지에는 고양이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펜스를 두르기도 했지만 잘도 넘어 다닌다. 미국의 연구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만 연간 13억~40억 마리의 새들이 고양이에게 잡아먹힌다고 한다. 서울도 상당한 조류들의 피해가 있다.

부산의 갈매기도 제법 잘 받아먹는다. 부산하면 부산갈매기. 여기 갈매기는 붉은부리갈매기이다. 주둥이가 붉다. 그래서 언뜻 보면 피를 흘리며 다니는 것 같다. 드라큘라 갈매기라고나 할까.

갈매기와의 짜릿한 밀당을 마치고 속초 시내를 돌았다. 속초는 바다와 산, 그리고 사람의 온기가 공존하는 완벽한 생태관광지다. 설악산이 주는 압도감을 편안하게 즐기고 싶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라보라. 기암괴석 사이로 펼쳐지는 동해의 절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산에서 내려와 조금 더 고즈넉한 정취를 원한다면 설악산 자락의 상도문 돌담마을을 추천한다.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 틈바구니에는 참새나 고양이 모양의 아기자기한 스톤 아트가 숨겨져 있어, 보물찾기하듯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의 화룡점정은 역시 미식이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의 활기는 여행자의 오감을 깨운다. 고소한 기름 냄새를 따라가면 명물 닭강정과 씨앗호떡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갓 쪄낸 붉은 대게와 싱싱한 회가 기다린다.

줄이 가장 긴 매장은 술빵집이다. 술빵이 왜 이리 인기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냄새만큼은 기가 막힌다. 시장 상인들의 활기찬 외침과 여행객들의 웃음소리에 살아있는 에너지를 느낀다. 그리고 속초 곳곳에 있는 막국숫집에 가면 시원한 육수의 메밀면이 너무나 좋다.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받아먹는 것은 학습된 결과이다. 가장 많이 학습된 갈매기는 인천 앞바다 갈매기이다. 그러고는 속초 갈매기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받아먹는 것은 학습된 결과이다. 가장 많이 학습된 갈매기는 인천 앞바다 갈매기이다. 그러고는 속초 갈매기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삭막한 도시를 떠나 바다를 찾은 우리에게, 갈매기와의 짧은 교감은 자연과 연결되는 가장 직관적이고 유쾌한 ‘에코테인먼트(Eco-tainment)’의 순간이다.

콧구멍으로 염분을 뿜어내며 힘차게 날아오르는 괭이갈매기와 인사를 나누러 속초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갈매기의 영리한 눈빛과 오징어 난전의 파도 소리가 당신의 지친 일상을 위로해 줄 것이다. 그리고 갈매기를 바라보면서 같이 간 이들에게 무언가 아는 척 잘난 척하고 싶으면 넌지시 이렇게 말해보시라.

“독도 괭이갈매기를 조사해 보니까 DNA가 전부 한반도 갈매기더래. 일본에서 날아 온 갈매기는 한 마리도 없었대. 그러니까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갈매기가 증명해 주는 거야. 알지?”

또한 갈매기를 보았다고 갈매기살을 먹는 것에 주저하지 마라. 갈매기살은 돼지고기이지 갈매기 고기가 아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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