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에코테인먼트]
주왕산, 달기약수탕, 주산지, 백석탄포트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서 즐기는 지질 탐험
산불 피해 본 달기약수탕 돕는 것도 생태관광
아이가 소풍을 가는 날이면 김밥을 싼다. 넉넉히 석 줄을 마련해 놓고는 마을 약수터로 간다. 약수터의 물을 떠서 사이다병에 담고 설탕을 몇 숟가락 넣는다. 그리고 병 주둥이를 비닐로 꽁꽁 싸서 고무밴드로 막는다. 그걸 아이에게 주고는 신신당부한다.
“소풍 간다고 기분 신난다고 병을 마구 흔들지 마라. 약물 터진다.”
아이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소풍을 간다. 오후에 아이가 돌아왔다.
“병 터졌니?”
아이는 웃으며 대답한다.
“예. 약물이 또 터졌어요.”
이 이야기는 1970년대 청송의 소풍 가던 날의 해프닝이다. 여기서 약물은 마약이 아니다. 약물은 약수를 뜻한다. 청송읍내 사람들은 소풍 가는 날이면 근처 달기 약수터에 가서 약수를 담아 갔다고 한다. 달기 약수물은 철분이 많아 맛이 떫고 탄산이 많아 단맛 없는 사이다라고 한다. 그래서 설탕을 넣어 사이다 맛을 내었단다. 대신 탄산이 많아 구멍을 잘 막아 놓아도 손에 들고 가다 보면 잘 터졌다고 한다.
예전 청송 사람들은 약수를 약물이라고 불렀다. 오해하지 말자. 약물은 마약이 아니다. 약수(藥水)다.

달기약수는 청송의 대표적인 약수이다. 철분과 탄산이 다량 함유되어서 떫은맛이 나고 톡 쏜다. 때로는 짠맛도 느껴질 정도로 진하다. 한 곳에서만 약수가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상탕, 중탕, 하탕, 신탕, 천탕, 원탕, 성화탕, 옥탕 등 여러 곳의 약수탕에서 올라온다. 10여 개의 약수탕은 각각 맛이 달라 순례하듯이 물맛을 느끼러 다니는 재미가 있다.
달기약수의 독특한 맛은 청송의 독특한 지형에 기인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지하수 경로에 철분이 많은 암석이 많고, 이산화탄소가 지하수에 혼합되어 탄산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약수는 탄산수가 되었으니 설탕을 넣어 사이다 대용으로 마신다. 그리고 철분이 많아 맛이 무척 떫은데 그 물로 밥을 지으면 밥 색깔이 파래진다. 며칠 전 약수로 밥을 직접 지었는데 약수를 절반만 넣어도 팥밥처럼 붉은색 밥이 되었다.
청송은 달기약수탕과 주왕산이 유명하다. 주왕산은 독특한 암봉과 주상절리가 있어 산의 모습이 보통 모양새가 아니다. 백악기가 끝날 무렵이 주왕산 지역에 화산 활동이 나타나서 일대가 화산암층으로 이루어졌다. 덕분에 주왕산의 독특한 모습이 나타나고 주산지 저수지를 만들 수 있었고 달기약수탕도 만들어졌다. 또 화산 활동과 별개로 만들어진 백석탄 포트홀과 청송 얼음골과 같은 독특한 자연환경을 갖추어서 청송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받았다.

청송읍내에서 시작하여 달기약수탕을 가서 순례하듯이 탕을 찾아 물을 마시고 백숙을 먹는다. 주왕산을 향하여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세 개의 폭포 트레킹을 한다. 주산 저수지와 백석탄 포트홀에 가서 영화 같은 사진을 찍는다. 여기서 더 힘을 내어 얼음골에 가서 여름에는 겨울을 느끼고 겨울에는 여름을 느끼고 돌아온다. 그러면 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지질 중심의 생태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생태 관광이 대개 숲에 가서 꽃과 나무, 야생 동물을 경험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청송만큼은 바위와 흙을 중심으로 생태를 경험하는 곳이다. 화산암은 물을 담아 사람들에게 약수를 제공하고 약수를 이용하여 백숙집을 경영하게 했다. 화산활동이 만들어 낸 기암 단애와 주상절리, 폭포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주산지는 바닥이 물이 잘 빠지지 않는 화산 암반이라는 것을 이용해 조선 숙종 때 저수지로 조성한 곳이다.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고 충분한 농업용수를 제공하였다. 덕택에 조선 중기 소빙하기 시절 극심한 기후변화를 견디게 한 소중한 유산이다.
지금은 청송을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과 사람이 융합하여 잘 살았던 곳이다. 청송의 기후와 지형과 지질과 물은 전국 최고의 사과를 생산해 내고 그로 인해 청송 사람들이 잘 살지 않는가.
청송은 무척이나 훌륭한 생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으나 그다지 활용을 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이 있다. 청송 관광은 작명(作名)에 약하다. 작명을 요즘은 네이밍이라고 하고 브랜드라고도 부른다. 어쨌든 과거부터 이름짓기에 왜 신경을 안 썼는지 모르지만 지금 주왕산 폭포를 용추, 용연, 절구폭포라 부르는 것은 최근이다. 아주 오랫동안 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라 불렀다.
지금도 주민들은 용추나 용연보다 제1, 제2, 제3이라 부르는 것이 익숙하다. 게다가 주왕산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7개 바위는 아직도 이름이 없다. 그냥 기암 단애, 기암괴석으로 부른다.
백석탄 포트홀은 그냥 포트홀이라는 암석 종류를 그대로 이름으로 썼다.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명소의 이름을 그대로 영문인 pothole로 부르는 것은 어색하다. ‘하얀 바위가 있는 여울’이라는 백석탄에 걸맞게 포트홀을 소용돌이 구멍, 용소, 바위 항아리 같은 이름으로 바꾸면 어떨까.
백석탄 포트홀은 새벽에 물안개가 올라올 때 사진을 찍으면 매우 몽환적인 모습을 담을 수 있다. 포토존으로 으뜸이라서 이름이 무척 아쉽다.

주왕산은 예전에 수달래가 핀다고 자랑했었다. 봄에 진달래의 일종인 수달래를 찾으러 많은 사람이 갔다. 그러나 지금은 수달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기후변화 탓인지 관리 부실 탓인지 개체군이 많이 줄었다. 하나의 종이 위기를 맞을 때는 사람의 접근을 금지하여 종을 보호하고 증식 활동을 하고 종을 보호하자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청송이 택한 방법은 수달래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수달래 안내판이 사라졌다. 청송 문화관광 홈페이지에도 사라졌다. 수달래를 보러 온 사람들이 막상 수달래가 보이지 않아 실망할까 봐 그랬을까? 수달래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수달래가 주왕산을 상징하는 식물이었고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주왕산 수달래가 있다면 오히려 수달래가 사라짐을 애석해하며 환경 보호를 하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물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아쉽다. 청송군청에 간곡히 부탁한다. 청송은 생태관광의 보석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름다운 청송. 가을철이면 가히 최고의 단풍 명소인 주왕산.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청송에 올봄에 산불이 크게 났다. 달기약수탕까지 불이 번졌다. 번성하던 달기약수 백숙집의 절반이 불에 탔다. 지금 한창 복원 작업에 고생이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임시 거처에 몸을 맡기고 있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숙소 생활을 지금도 하고 있다.
청송이 소중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일부러라도 달기약수탕에 가셔서 백숙 한 마리씩 드시고 오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닭 불고기는 닭고기를 다져서 석쇠에 구운 것으로 전국 어디에도 없는 음식이라 추천한다. 어려움에 부닥친 주민들을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생태관광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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