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에코테인먼트]
청량리는 인문 구역, 생태 구역,
과학 구역으로 나눠진 생태 테마파크
힐링 산책길 걸으며 동네 생태관광을
(지난 회에서 이어짐)
청량리 로터리에서 시작하여 미주아파트, 동대문경찰서 사거리를 지나 홍릉갈비가 있는 홍릉 사거리.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에코테인먼트가 시작이 된다. 이 일대를 테마파크처럼 작은 테마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영휘원과 세종대왕 기념관, 김희수 아트센터, 청량사, 그리고 1957년 지어진 홍릉 부흥주택을 인문(History) 구역으로 묶고, 홍릉수목원과 홍릉을 둘러싼 숲을 생태(Eco) 구역, 카이스트와 국방연구원, 고등과학기술원 등의 연구단지를 과학(Science) 구역으로 묶어 나눌 수 있다.
인문 구역의 시작인 영휘원은 고종의 후궁이자 순종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무덤이다. 엄귀인은 숙명여대와 진명여고를 만드신 분이자 아관파천의 주역이다. 영휘원은 흙을 밟으며 산책하기 너무 좋다. 백 년간 사람의 손길을 거의 타지 않은 영휘원의 뒤 숲은 예전에 꿩을 흔히 볼 수 있었던 곳이다.

홍릉 옆의 세종대왕기념관과 수림문화재단은 매우 훌륭한 전시관이다. 세종대왕기념관은 전통 혼례식을 할 수 있어 20년 전만 해도 일대가 웨딩의 거리로도 불렸다.
부흥주택은 전쟁 후 원조 물자를 받아 지어진 대규모 주택단지이다. 50년대 후반 근대 주거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고종 황제가 홍릉을 조성하면서 수용한 땅은 이후로 공원부지로 보존이 되었다. 전쟁 이후에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울시가 땅을 매입하고 조성한 것이 부흥주택이다.
많은 집을 넣느라 골목은 매우 좁다. 그래도 당시에 첨단의 양옥집이어서 대부분 이층집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층집은 1층은 집 주인이 살고 2층은 세입자가 사는 형태로 바뀌었다. 자전거를 끌고 가기도 비좁은 골목에 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다.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어 없어지기 전에 가봐야 한다.

과학 구역에 속하는 청량리 카이스트는 한국 과학기술의 본산이다. 이 일대에 카이스트 서울캠퍼스, KIST, 한국국방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인재캠퍼스가 있다. 그것이 옆 동네로 뻗어 회기동에 서울바이오허브, 경희대학교가 있고 안암동에 고려대학교가 있다.
생태 구역의 중심은 홍릉수목원(홍릉시험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으로서 국립산림과학원이 운영한다. 산림 연구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라 수목원의 식생은 한반도 전역의 식물상을 교과서처럼 보여준다. 꽃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이른 봄에 복수초가 핀다.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여기서 찍으면 된다. 수목원 안에는 탐방 코스가 아기자기하다.
수목원 옆에는 천장산을 타고 올라가 경희대, 외대를 거쳐 의릉까지 가는 천장산 산책로가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무장애 산책로다. 수목원을 나와 카이스트로 향하면 은행나무 길이 좋다. 여기는 가을에 다시 와야 한다.
카이스트 앞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안에는 자그마한 호수가 있다. 인근에 서식하는 야생 동물의 식수원이자 서식지 역할을 한다. 청량리 생태계의 한 축이다.
홍릉초등학교로 올라가는 길에서 눈에 띄는 것이 KOOCA콘텐츠 문화 광장 앞에 있는 김일성 나무이다. 밑동에 혹이 붙어 그렇게 불린다. 홍릉초등학교에서 옆으로 빠지면 힐링 산책길이다. 가로수길 중에 영휘원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도는 코스이다.
길을 가면 높은 담벼락들 끝자락에 동대문정보화도서관이 보인다. 숲속에서 책을 읽고 싶다면 여기로 가라. 정보화도서관은 문화센터를 운영한다. 여러 강좌 중에 캘리그라피 과정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글씨만큼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도서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홍릉근린공원이다. 천장산의 한 줄기이다. 천장산은 삼각산의 여러 갈래 중 하나이며, 경희대 쪽으로 가면 고황산이라 불렀다. 주민들이 홍릉산이라 부르는 정상으로 가면 바로 청량사가 보인다.
청량리 네이밍의 원조 청량사. 만해 한용운이 쉬었다 가고 환갑잔치까지 한 비구니 고찰이다. 아주 크거나 오래된 목조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휙 둘러보면 된다.
청량사에서 홍사거리 쪽으로 내려가면 힐산책길이 종료된다. 이렇게 한 바퀴 돌았으니 출출할 것이다. 청량리 생태 테마파크에서 즐길만한 음식은 냉면이다. 청량리 시장 골목에 할머니냉면, 춘천냉면, 함흥냉면, 다미옥이 마주 보고 영업한다. 이 특징은 철저한 시장 냉면이라는 것. 시장 냉면이 아닌 정통 냉면을 먹고 싶다면 우체국 쪽의 평양냉면 본점도 좋다. 내공이 있는 집이라 추천한다.
청량리에는 더 많은 에코테인먼트 자원들이 많지만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어 이내 사라질 것이라 아쉽다. 재개발이 되면 그 안의 모든 것이 싹 밀려 버린다. 집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숲과 언더, 하천이 모두 사라진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살던 동식물들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집 마당마다 심어 놓은 나무들이 사라지고 그곳에 살던 새들과 곤충들이 집을 잃는다.
청량리에는 제비들이 많았다. 처마 밑마다 제비들이 집을 짓고 살았었다. 그러나 둥지를 지을만한 처마가 모두 사라져 제비들이 보이지 않는다. 새들이라고는 비둘기와 까마귀. 동물이라고는 길고양이들만 보인다.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에는 세대 수만큼 나무에 새집을 달았으면 좋겠다. 길고양이에게 급식을 하는 만큼 새들에게도 집을 주자.
점점 힘이 빠져가는 구도심. 고령화 시대를 상징하는 동네. 청량리는 늙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는 생태 테마파크이다. 청량리 사시는 분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동네에서 즐기는 에코테인먼트,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다들 내일 아침부터라도 동네 골목길을 걸으며 나무와 풀, 새를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 동네는 생태 박물관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