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는 자율처럼 비추지만
무대는 봉인된 좌표 공간 속
허위 광고 처벌 검토 필요성

미국의 스타트업 피규어 AI가 새롭게 선 보인 빨래하는 휴머노이드 /피규어 AI
미국의 스타트업 피규어 AI가 새롭게 선 보인 빨래하는 휴머노이드 /피규어 AI

‘인간형 로봇 시연 영상’들이 대중의 눈길을 끌고 있다. 깔끔한 거실에서 로봇이 자연스럽게 빨래를 개거나 커피를 따르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들은 미래가 이미 현실이 된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영상들 대부분은 실제 기술력과는 거리가 먼 철저히 기획된 ‘무대극’에 가깝다.

23일 빅테크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Atlas)나 피규어(Figure) AI의 가정용 로봇 시연 영상은 공통적으로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촬영된다. 일정한 조도와 깔끔한 지면, 정해진 동선에서만 동작하도록 설계돼 있다.

로봇의 움직임도 즉흥적 판단이 아니라 무용수가 안무를 외우듯 사전에 입력된 프로그램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이다. 실제로는 수십 번의 리허설과 실패 끝에 성공한 단 한 번의 촬영만이 영상에 남는다. 편집의 마술이다.

모든 영상은 대부분 ‘원샷’처럼 보이도록 정교하게 편집된다. 자율보행 실패나 넘어짐은 지우고 와이어나 보조장치는 후처리로 삭제한다. 또한 음악이나 내레이션을 입혀 감성적 몰입을 유도하는 것도 흔한 수법이다. 이 때문에 관객은 마치 로봇이 스스로 주변을 인식하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당연히 연출 무대를 벗어나면 로봇의 자율능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실제 공장이나 가정 환경에서 자율작업 로봇을 투입하면 지면의 미세한 차이에도 넘어지고 센서 잡음이나 네트워크 지연으로 오작동이 잦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사람의 움직임, 장애물 변화)에는 취약하며, 결국 공장 생산 라인이나 제한된 물류 구간처럼 극도로 통제된 영역에서만 실용적으로 작동한다.

요즘 화제를 모은 피규어 AI의 ‘빨래 접기’ 시연도 같은 맥락이다. 거실처럼 보이지만 촬영용 스튜디오이며, 로봇은 환경을 인식해 즉석에서 행동한 것이 아닌 사전에 설정된 시퀀스를 재생한 티가 많이 난다. 영상에는 ‘단 한 번의 성공 컷’을 고르고 편집한 흔적이 역력하다. 로봇의 인지·계산 능력이 인간 수준에 도달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빨래 개기’는 로봇공학에서 가장 난도가 높은 영역 중 하나다. 옷은 고정된 형태가 없는 비정형 변형체(non-rigid object)이기 때문에 로봇이 이를 다루려면 천의 질감과 형태 변화를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정밀하게 조작해야 한다. 단순한 위치 추정이나 좌표 기반 경로 재생만으로는 어려우며, 환경의 미세한 변화에도 동작 안정성이 흔들린다.

또한 전 세계에서도 스탠퍼드·버클리·ETH 등 소수의 연구소에서만 시각·촉각 융합 기반의 천 접기 실험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피규어 AI는 손끝에 3g 감지 센서를 탑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전체 빨래 접기 과정에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수준의 문제다. 실제론 정해진 위치에 접힌 셔츠를 두 손으로 맞춰 누르는 고정 루틴일 가능성이 높다.

영상 속 ‘세탁기 작동’ 장면은 정교한 자율 동작이 아니라 고정된 루틴 기반의 궤적 재생(trajectory replay)에 가깝다. 세탁기의 위치, 문을 여는 각도, 내부 투입 지점이 모두 미리 설정돼 있으며, 로봇의 동작은 이에 맞춰 반복된다. 옷을 집어 드는 과정 역시 ‘잡기 → 회전 → 투입’이라는 단순한 궤적을 반복하는 수준이다.

물론 세제 투입 역시 마찬가지다. 로봇은 세탁기 투입구의 상태를 인식하지 않고, 미리 정의된 좌표에 팔을 뻗는 방식으로 동작한다. 영상에서 강조되는 ‘자연스러운 조작’은 실제로는 고정된 세트와 사전 입력된 좌표 덕분이다. 실제 환경에서는 세탁기 모델마다 문 위치와 높이가 다르고, 세제 투입구가 닫혀 있을 수도 있으며, 옷이 어느 위치에 떨어져 있을지도 예측할 수 없다. 

증권시장은 ‘기대’라는 이름으로 거품을 가장 정교하게 포장하는 무대다. 삼성자산운용은 ‘KODEX 로봇액티브 ETF’ 순자산 2000억 돌파를 자축하며 휴머노이드 상용화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있다. CJ대한통운과 로보티즈도 현장 실증을 내세워 분위기를 띄운다. 정해진 안무만 외운 로봇을 세탁기 앞에 세워놓고 AI 거품을 부추기는 모습이다.

이런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 영상은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에서 금지하는 거짓·기만적·비방적 표시·광고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특히 고정된 세트와 사전 기획을 ‘실시간 자율 동작’으로 오인하게 하는 방식은 명백히 소비자를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어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규제 대상 ‘오인성 광고’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테크업계에선 환경 변수를 실시간으로 인식·판단·대응할 수 있는 가정용 로봇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전문가는 "카메라 속도 2배, 지연 25% 감소, 시야각 60% 확대 등은 센서 하드웨어 스펙이지 로봇이 실제로 시각-행동을 통합해서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능력과는 별개"라며 "자율지능의 본질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계산과 판단’에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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