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와 SK 실체 외면, 언론 왜곡 덧씌워
대만과 한국을 몽땅 中에 포함하면 성립
‘피지컬 AI’ 서사도 GPU 세일즈 목적 포장
원자탄 비유 '지능 폭발' 개념도 허구 가득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7월 16일(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중국 국제 공급망 촉진 박람회(CISCE) 개막식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7월 16일(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중국 국제 공급망 촉진 박람회(CISCE) 개막식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말이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또다시 흔들었다. 그가 “중국 반도체 기술은 미국과 몇 나노초(10⁻⁹초, 즉 10억분의 1초) 차이에 불과하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공지능(AI) 전문가 사이에선 “기술 담론을 코미디 무대로 만든 것 아니냐”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30일 빅테크 전문가들의 반응을 종합하면, 젠슨 황 발언이 문제가 되는 건 ‘나노초’라는 시간 단위를 반도체 경쟁 설명에 끌어다 쓴 점 때문이다. 반도체 기술 격차는 본래 나노미터 공정(트랜지스터 크기), 전력 효율(와트당 성능), 메모리 대역폭(초당 데이터 전송량) 등 구체적 수치로 드러난다. 그런데 이를 포괄적 시간 개념으로 환산해 버리니 측정 가능한 사실은 흐려지고 추월 직전이란 언어적 장식만 남는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는 한국 SK하이닉스가 공급하고 완제품 생산은 대만 TSMC가 맡는다. 미국이 내세울 수 있는 건 설계 역량뿐이며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은 생산성을 잃었다. 이 구조를 놓고 보면 ‘메이드 인 아메리카 반도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젠슨 황의 모국인 대만의 TSMC는 현재 세계 반도체 생산의 최정점에 있다. 파운드리 업계에서 3나노 공정을 안정적으로 양산한 유일한 기업이며 이미 2나노 공정 테스트 라인까지 가동하고 있다. 공정 미세화의 속도와 안정성에서 삼성전자도 따라잡기 벅찰 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특히 TSMC의 강점은 단순히 ‘나노 숫자’에 있지 않다. 고성능 GPU, 모바일 칩, 서버용 CPU를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대규모 생산 능력과 초미세 공정에서의 수율 안정성, 그리고 고객 맞춤형 협업 시스템이 결합돼 있다. 엔비디아, 애플, AMD, 인텔 등 세계 빅테크가 모두 TSMC를 선택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이다.

엔비디아는 A100·H100·H200와 같은 GPU를, 애플은 아이폰의 A시리즈와 M시리즈 프로세서를, AMD는 서버용 EPYC CPU와 라데온 GPU를, 인텔조차도 그래픽 칩 아크(Arc) 일부와 데이터센터용 보조 칩 그리고 퀄컴은 삼성전자 갤럭시폰의 스냅드래곤 칩을 TSMC에 맡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와의 경쟁 구도가 존재하지만 첨단 5나노 이하 공정에서 안정적 대량 양산을 보장하는 곳은 사실상 TSMC뿐이다. 이처럼 고객사별 핵심 칩 대부분이 한 국가에서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위탁생산’ 수준을 넘어 글로벌 기술 패권의 심장부가 대만에 있음을 웅변한다.

이런 압도적 경쟁력 덕분에 TSMC는 사실상 ‘글로벌 기술 패권의 문지기’ 역할을 한다. 미국이 아무리 규제를 강화하고 중국이 자체 반도체를 육성해도 최첨단 반도체의 목줄은 여전히 대만에 걸려 있다. 젠슨 황이 ‘나노초 차이’라는 허술한 표현을 쓰는 순간, 정작 진짜 ‘나노 기술 격차’를 결정짓는 대만의 존재는 정치 논리에 은폐된다.

이런 상황에도 젠슨 황은 자신을 미국 반도체 산업의 대변자로 내세웠다. 발언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을 빠르게 추격한다”는 식으로 실상과 전혀 다른 해석이 덧붙여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로 엔비디아의 중국향 H20 칩 수출이 차단됐고, 이후 일부가 풀렸지만 중국 정부가 맞대응에 나서 대부분의 엔비디아 칩 전체의 반입을 막았다. 타격을 입은 쪽은 중국이 아니라 오히려 엔비디아였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그의 반복되는 중국 띄우기 발언이 위기감을 조성해 정치적 지원과 투자 확대를 끌어내려는 의도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미국은 엔비디아를 위한 규제 완화에 나서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 기업의 현지 생산 확대와 대만 중심의 공급망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짚고 넘어갈 건 젠슨 황의 피지컬AI ‘서사’다. 인식 AI(ANI) → 생성형 AI(AGI) → 에이전트 AI → 피지컬 AI라는 4단계 모델이다. 올해 CES 무대에서 그는 로봇,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를 ‘피지컬 AI’라 포장하며 GPU 수요가 무한히 늘어날 것처럼 홍보했다.

디지털 트윈, IoT, 엣지컴퓨팅, 센서 융합 등 온갖 용어가 동원됐고, “2030년까지 2000만 개 일자리가 대체된다”는 수치도 얹혔다. 그러나 중국이 주도하는 로봇청소기는 이미 상용화됐고 자율주행은 안전 규제에 묶여 있으며 스마트팩토리는 기존 자동화의 연장에 불과하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용 그래픽카드는 물론 스마트폰 칩까지 전세계 파운더리 반도체 물량의 70%가 대만에서 생산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DB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용 그래픽카드는 물론 스마트폰 칩까지 전세계 파운더리 반도체 물량의 70%가 대만에서 생산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DB

중국의 인공지능 활용은 경제적 측면에서의 혁신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수많은 카메라와 서버가 시민의 행동을 점수화하는 데 쓰이고 있지만 수익과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AI 자원이 시진핑 독재 유지를 위한 감시·통제 장치에 집중되면서 산업적 성과보다는 사회적 관리 기능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이번에 그가 외친 “AI는 원자폭탄보다 필수”라는 만능론 역시 허술하다. 연산력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시장·제도·생태계가 결합돼야 비로소 가치가 나온다. GPU만 늘려서는 아무런 성과도 보장되지 않는다. 즉 그의 모든 발언은 GPU 판매를 위한 재포장일 뿐이다.

젠슨 황은 본질적 AI 구조에는 접근하지 못한 채, GPU 수요를 확대하기 위한 하드웨어 중심 마케팅 서사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오픈AI 등 빅테크가 제시하는 일반인공지능(AGI) 로드맵은 지각(perception), 추론(reasoning), 기억(memory)과 학습(learning)의 통합 구조를 통해 인간 지능의 작동 원리를 단계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다.

물론 GPT-5처럼 파라미터 수가 2조8000억 개에 달하면 안정성과 표현력은 비약적으로 확장된다. 더 많은 데이터와 변수를 동시에 다루며 미세한 차이까지 감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즉 세간에서 말하는 ‘지능 폭발’(Intelligence explosion)은 이런 계산 능력의 확대를 곧바로 의식의 도약으로 착각한 허구에 불과하다. 단순히 연산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재귀적으로 진화(Recursive Evolution)하는 지능의 위상적 통합—기억, 추론, 감응을 한 궤도로 묶어내는 초지능(ASI)—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노초 차이”라는 그의 발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기술 격차를 시간 단위로 환산하고 엔비디아란 주어를 미국으로 바꾸는 순간 사실은 사라지고 허구만 남는다. 억지로 이해해주자면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 대만 TSMC와 한국 SK하이닉스를 몽땅 ‘하나의 중국’으로 묶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나노초 차이’라는 말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건 과학이 아니라 현실을 지워버린 억지에 불과하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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