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리퀴드, SAP AI 시스템 도입
인건비 절감·경기 안정성 확보
AI는 코치 대체 아닌 보조 도구

2025년은 인공지능(AI) 시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챗GPT 열풍으로 포문을 연 AI는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일상생활을 넘어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e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북미 LCS 팀 리퀴드(Team Liquid)는 최근 SAP와 손잡고 AI 기반 전력 분석 시스템을 도입했다. SAP의 AI 어시스턴트 '쥴'은 리그오브레전드(롤) 플레이어의 방대한 데이터를 API로 끌어와 맞춤형 분석 결과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롤은 100여 개 챔피언의 상성과 전략 조합이 촘촘히 얽힌 복잡한 게임이다. 경기 시작 전 각 팀은 5개의 밴과 5개의 픽으로 치열한 수싸움을 벌인다.
예전엔 이 모든 과정이 오롯이 사람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4~5명의 코치와 분석가가 엑셀을 열고 머리를 맞대고 제한된 시간 안에 밴픽 전략을 수작업으로 짰다. 상대 팀의 선호 픽, 조합 상성, 우리 팀의 우위까지 모든 가능성을 좁혀야 했고 종이에 쓴 계산은 곧 경기의 승패를 좌우했다.

노트와 펜을 든 코치진은 수백 가지 경우의 수 속에서 단 5장의 카드를 뽑아야 했다. 하나의 밴, 하나의 픽이 곧 한 판의 흐름을 바꾸고 시즌의 운명을 바꿨다.
AI가 이 작업을 넘겨받자 게임은 달라졌다. 쥴은 "이 팀이 가장 자주 고른 챔피언은?", "최근 40경기 밴 목록은?" 같은 질문에 단 1분 만에 답한다. 선수와 코치는 마치 챗GPT에 말을 걸듯 자연어로 묻고 필요한 통계를 즉시 받아본다. 반복은 줄었고 판단은 빨라졌다.
이 시스템 도입으로 팀 리퀴드는 연간 약 2억7000만원의 인건비를 절감했고 무엇보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기 안정성'을 확보했다. 팀 리퀴드의 파트너십 매니저인 톰 발크스는 "우리 선수단이 최근 수년간 연이어 상위권을 기록하는 등 과거에 없던 안정성을 갖게 됐다"며 "아직은 부족하지만 언젠가 T1을 넘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쯤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그럼 이제 코치는 필요 없는가?" 답하자면 그렇지 않다. AI 분석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다. 발크스 역시 "게임 데이터 분석은 일정 수준까지는 도움이 되지만 그 이후는 인간적인 요인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경기력은 알고리즘이 아닌 손끝에서 나온다. 피지컬, 컨디션, 순간 판단력, 반응 속도, 대회 경험까지 모든 변수는 결국 키보드와 마우스를 쥔 선수의 손에 달려 있다. 코치진은 이 손끝의 움직임을 되짚는다. 리플레이를 돌려보며 위치 선정, 오브젝트 컨트롤, 시야 장악 같은 실전 피드백을 제공한다. 데이터가 읽지 못하는 흐름을 사람이 읽는다.

AI는 밴픽은 잡을 수 있어도 선수의 멘탈은 못 잡는다. e스포츠는 결국 멘탈 게임이다. 무수한 팀전과 협동 싸움을 뚫고 올라온 상위 1% 안에 드는 선수들이 모여 또 다른 싸움판을 만든다. 이미 실력은 증명된 이들의 진짜 승부는 그다음이다. 흔들림 없이 집중하는 자만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연패, 대회 탈락, 온라인 비난은 실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럴 때 필요한 건 AI가 아니라 사람이다. 훈련량을 조절하고, 식사와 수면을 관리하고 흐트러진 집중력을 다시 붙잡는 일. 이 모든 걸 조율하는 사람이 바로 코치다.
김정균 T1 코치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T1의 전 프로게이머 피글렛은 한 인터뷰에서 실력 상승 비결에 관해 묻자 "팀에서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코치에게 혼났기 때문에 실력이 향상됐다"고 답했다. 은퇴까지 고민했던 벵기 선수 역시 “멘탈이 무너질 때마다 코치가 잡아줬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AI가 코치를 대체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밴픽을 넘어 경기를 만드는 힘은 선수의 눈빛을 읽고 손끝의 떨림을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