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처벌 전초전으로 전락한 국정감사
피해자 참고인 불러 CEO 책임 정조준
입법부 고발권+면책특권 결합, 준사법화
‘책임자 낙인→규제’ 루트 굳어질 조짐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모습 /연합뉴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정감사가 건설업계를 정조준하고 있다. 시공능력 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중 8곳의 대표가 증인으로 줄소환되며, 사실상 입법부의 ‘정치 재판’ 무대가 됐다는 평가다.

1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오는 13일 국토위 국감에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 김원철 서희건설 대표,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 김보현 대우건설 사장, 정경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 송치영 포스코이앤씨 사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이해욱 DL그룹 회장,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 등 국내 건설 상위권 경영진이 대거 출석한다. 업계 상징 기업인이 동시에 국감장에 서는 전례 없는 상황이다.

이들 최고경영자들의 소환 사유는 대부분 산업재해 및 건설현장 사고와 직결돼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세종~안성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포스코이앤씨 역시 광명시 신안산선 터널 붕괴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GS건설, 롯데건설도 잇단 현장 사고와 특혜 의혹으로 도마에 올랐다.

올해 국감의 두드러진 특징은 최고경영자 개인의 형사적 책임을 겨냥한 ‘전초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본격화되면서 대표이사와 이사회 차원의 안전관리 책임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결과 감장이 형사 책임 추궁의 무대로 변질되고 있다.

게다가 정당은 고발권을 갖고 있고, 국회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어떤 의혹을 제기해도 면책특권으로 보호받는다. 이는 입법부가 사실상 ‘고발권+면책특권’을 결합한 준사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구조로, 경영진 입장에서는 검찰 소환에 앞선 정치 재판이 시작되는 셈이다.

박세창 금호건설 부회장은 29일 증인으로 소환돼 오송 지하차도 참사 관련 부실시공 의혹에 대한 추궁을 받을 예정이다. 지난해 여름 참사 이후 책임 규명 절차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입법부가 이를 직접 소환 심문 형식으로 다루겠다는 포석이다.

기존 국감에서의 증인 채택은 주로 정책·감독 실패나 제도 개선을 위한 참고 차원이었으나, 올해는 ‘사고 발생’, ‘부실시공’, ‘수의계약 파기’, ‘재해 책임’ 등 법적 유죄 여부와 맞닿은 사안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사법부가 아닌 입법부가 ‘죄의 성립 여부’를 묻는 자리로 국감이 변질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토위는 산업재해뿐 아니라 정책 및 재정 관련 의혹으로도 기업들을 압박한다.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는 가덕도 신공항 수의계약 파기 논란에 대해, 류윤수 카카오모빌리티 대표는 플랫폼 택시 갈등 및 전세사기와의 연계성 논란에 대해 증인으로 출석한다. 공공 프로젝트, 민자 사업, 금융 갈등이 얽힌 복합 질의가 예고된다.

증인 명단에는 조정일 코나아이 대표(택시요금 정산), 박선순 다윈시스 대표(철도차량 납품),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열차 입찰),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대표(전세사기 경매 관련) 등 건설 외 업종 인물들도 다수 포함됐다.

재계에서는 이번 국감이 산업별 ‘책임자 낙인’ → 여론 형성 → 정책 개입 명분 확보 → 후속 규제로 이어지는 악습이 재현될 가능성을 주목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산재 예방을 중시하는 이재명 대통령을 위한  정치 이벤트를 넘어 업계 줄세우기와 숙청의 신호탄에 가깝게  느껴진다”며 “법적 판결 이전에 여론 재판이 먼저 진행되는 구조가 굳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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