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채택 기업인만 200명 육박해
국가 행사 겹친 날 국감 출석 요구
무분별한 소환에 정치쇼 우려 커져
"정책 개선 위한 실질적 논의 필요"

최태원 SK 회장, 2025 경주 APEC CEO 서밋 의장 사진 /연합뉴스
최태원 SK 회장, 2025 경주 APEC CEO 서밋 의장 사진 /연합뉴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미국 관세 리스크, 노란봉투법 등 각종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오는 13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주요 기업인 200명이 증인으로 소환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의 과도한 소환이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다.

10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정감사 증인으로 파악된 인원은 약 370명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이 기업인이다. 무분별한 기업인 소환을 자제하자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소환 사태가 현실화라고 있다.

현재까지 채택된 기업인만 200명에 근접해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 159명을 이미 넘어섰다. 이는 2023년(95명)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아직 17개 상임위원회의 증인·참고인 명단이 완전히 확정되지 않아 최종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번 국감의 핵심 증인으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꼽힌다. 최 회장은 계열사 부당 지원 실태 점검을 이유로 정무위원회 증인으로 채택됐으며 출석일은 28일로 예정됐다. 문제는 같은 날 대한상공회의소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식 부대행사로 주관하는 'APEC CEO 서밋'이 개막한다는 점이다. 대한상의 회장인 최 회장은 해당 행사의 의장을 맡고 있다. 

특히 SK그룹은 같은 날 APEC CEO 서밋 부대행사인 '퓨처테크포럼 AI'를 주관하며 최 회장은 한국 AI 생태계 조성과 비전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할 계획이었다. 이에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기업인을 국감장에 세우는 것이 타당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리는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리는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협력사 이수기업의 노동자 집회 및 책임경영 문제로 행정안전위원회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중국 알리바바 합작법인의 소비자 정보보호 방안 관련으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각각 출석을 요구받았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정부 전산망 마비 사태와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밖에 이해욱 DL그룹 회장, 허윤홍 GS건설 대표 등 10대 건설사 중 8개사 대표도 국토교통위원회 증인 명단에 포함됐다. 

또한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김영섭 KT 대표가 정무위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출석 요구받았으며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와 홍범식 LG유플러스 대표도 과방위 증인으로 채택됐다.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와 대주주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도 정무위 출석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가 기업인을 불러 세워놓고 별다른 질의 없이 장시간 대기시키는 관행이 이어져 온 만큼 이번 '마구잡이식 소환'이 또다시 정치적 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은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버티는 시기"라며 "정책 개선을 위한 건설적인 논의보다 정치적 목적이 앞서는 국감이라면 기업은 물론 국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국정감사는 기업의 책임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 경제 위기 속에서도 혁신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현실을 이해하고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감 증인 남발에 대한 우려 속에 '기업 오너·대표의 증인 출석 최소화' 원칙을 재확인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재계 증인을 최소화하고 특히 오너급 인사의 중복 출석은 지양하겠다"며 "정쟁이 아닌 정책 중심의 국감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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